김동균 상지대 명예교수(한국가축사양표준제정위원회 위원) 조사료 허실량, 급여 간격·형태·시설환경 등 영향 생산·이용과정 합리화…품질보존 최선책 찾아야 8-1. 들판에서 소 입 까지 일어나는 일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현상을 의미한다. 조사료도 이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즉, 조사료가 수확되면, 수분함량이 높을수록 지구 중력에 의한 세포 내용물의 흘러나옴과 미생물의 영양성분의 쪼개기로 양분 보존성이 떨어진다. 그러면 수분이 낮은 상태인 건초는 어떤가? 변질되지 않도록 온·습도가 잘 유지되는 공간에 둔다면 매년 5%정도의 영양소가 감소된다. 먹음직스러운 색채를 자랑하던 푸른 건초의 표면은 소위 ‘풍화작용’으로 색깔이 누렇게 변하면서 성장을 촉진하는 보약 성분인 캐로틴이 사라짐은 물론 영양소를 지니고 있던 건초의 무게도 가벼워진다. 아무리 잘 보관하려고 애써도 자연은 건초 영양소의 5%의 세금을 매년 걷어간다. 고로 들판에서 만들어 진 조사료 양분이 소의 뱃속까지 전달되려면 여러 고비를 거쳐 양도 적어지고 품질도 떨어진다. 조사료는 수분이 많은 형태일수록 수확작업에서 사라지는 비중은 적지만 저장과정에서 사라지는 영양분의 분량이 많
김 동 균 상지대 명예교수(한국가축사양표준제정위원회 위원) 원인 찾아 최소화…이용효율 증진의 첫 걸음 7-1. 조사료 사용시 숨겨진 현실적 문제 조사료는, 에너지 농도는 비교적 적고(TDN 70이하) 섬유소의 함량이 높으며(CF 18%이상) 대체로 단백질은 낮은(CP 20%이하) 물질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대부분의 조사료가 포함되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사료로 쓰이고 있는 물질은 2천종이 넘기 때문에 그 다양한 성질을 영양소 함량 숫자로 획정하기 어렵다. 심하게 말하면, 영양소를 지닌 물자 중 짐승이 섭취할 수 있는 재료는 모두 사료가 될 수 있으므로 비정규사료에는 동물배설물, 오폐수찌꺼기, 구더기 및 파리, 지렁이 등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료를 분류하는 기준을 정하기까지 오랜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결국 국제 사료구분번호(IFN)체계가 사료를 8개 그룹으로 나누면서 학술적으로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구분해도 늘 예외는 있게 마련이어서 분류기준을 넘나드는 사료들이 적대표적인 예로, 잘 익은 옥수수 자루가 달린 corn silage는 사일리지류(3번)로 분류되어 있으나 에너지사료(4번)의 한계를 침투하여 농후사료의 상당부분을 대체하는 성
김 동 균 상지대 명예교수(한국가축사양표준제정위원회 위원) 통계상 면적만 늘어나…부실초지 전락 사례 속출 5-1. 한국전쟁과 소 산업기반의 재생과정 며칠 전, 70년대 중반에 해병 장교로 근무했던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했다. 2008년 대기업 대리 진급자(현재 40대) 정신교육을 시켰을 때 당시 수강생의 대부분이 6.25라는 단어조차 몰랐다는 점, 그리고 그 전쟁 통에 수백만의 인명이 사라지고 나라가 초토화 된 사실을 거의 몰랐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나라의 기반이 철저히 붕괴되면서 전국의 대가축 역시 군인들의 비상식량으로 잡아먹혀 전쟁 직후 한우는 39만두(1950년 통계) 남아있던 것조차 얼마나 감소되었는지 파악이 안 될 정도였고, 그나마 통계 잡기 쉬웠던 젖소는 237두(1951년)만 살아남았지만 자체 증식으로 강산이 한 번 변할 1960년에도 866두에 불과했다. 한우 사육기반은 전쟁 직후 우리 민족의 식생활이 곡식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까닭에 식량 확보가 시급하여 농가마다 논밭을 경작하려고 1~2두씩 보유하는 바람에 1958년에 100만두를 넘어섰다. 이 시기의 한국 농업인구가 총 인구의 8할이었음을 요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까? 한우
김동균 상지대 명예교수 한국가축사양표준제정위원회 위원 측정 분석장비 데이터 의미 통합적 판단 한계점 1. 정확한 자의 효과 우리는 어려서부터 내내 ‘거짓말은 나쁘다.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지내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사술(詐術)을 발휘하는 소질은 사회의 사연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사회를 발전시켰으며, 진위를 가리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공익을 위한 기관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보다는 월등히 순박할 것으로 생각되는 원시사회에도 사기술이 유행한 증거가 있었으니, 3만5천년전 원시인의 유적에서 사기꾼을 가려내는 점장이의 주술재료가 발견된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제일 손쉬운 사기는 물건의 크기나 무게를 속이는 일이다. 속이지 않는다는 증거로 자나 저울을 썼으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지역을 옮기면서 다른 도량형 기구를 사용하면 남들은 척도로 쟀으니 진실이라고 믿는다. 중국에서는 바로 이러한 수법으로 탐관오리들이 중앙정부가 주는 양곡을 체계적으로 빼먹음으로써 마지막 받아먹어야 할 백성의 식량이 절대 부족해 무수한 아사자를 속출시켰다. 이에 황제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조치를 취했다. 도량형 기구들을
김동균 상지대 명예교수(한국가축사양표준제정위원회 위원) “축산, 조사료 급여를 계기로 시작” 학설 설득력 1. 축산의 탄생 배경(지혜론) 사람의 생활에서 다른 동물의 흔적을 지우기란 불가능하다. 당장 매일 만지는 지갑은 남의 살갗이 아닌가? 인류사에 공헌이 가장 큰 짐승을 기르는 ‘초식축산’을 시작한 동기를 인류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인류의 진화과정과 먹이의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화석인류들은 축산을 모른 채 사냥으로 먹이를 구했다. 체구가 작은 것들은 구하기 쉬웠겠지만, 자주 사냥해야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인의 직계조상이 몇 차례의 빙하기를 넘긴 유적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먹이는, 초기에는 순록을 비롯한 중간 크기의 사슴이나 산양 멧돼지 등이 주류를 이루다가 차츰 들소, 말, 심지어 곰, 맘모스까지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큰 먹이 구하기’도 약점이 있었다. 즉, 모든 죽은 동물의 몸 덩어리는 시간이 여러 날 지나면 부패해 맛도 없고 먹기도 불편하며 먹고 나면 배탈이 난다는 점을 터득했다. 그런 까닭에 죽은 동물체는 빨리 먹어치워야 하며, 운 좋게 생포해 온 것은 두었다가 잡아먹어도 신선하다는 점을 곧 이어 알게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