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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내가 만든 우유정원

  • 등록 2017.11.29 10:57:10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몇 년 전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라냐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오랜 비행의 피곤함이 채 가시지 않은 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한층 우수를 자극하는 거리를 느릿느릿 걷고 있는데 귀여운 젖소캐릭터를 그려 놓은 우유자판기를 만났다. 공병 자판기에서 병을 산 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니 뽀얀 우유가 쏟아졌다. 병을 가져오는 사람들은 그 병을 이용하면 된다. 일행이 신기하게 그 광경을 보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그 우유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단박에 활기가 돌았다. 1리터에 1유로(1천300원 정도)니 한국보다는 우유 값이 쌌지만 국민소득이나 경제사정을 감안한다면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농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화제는 금방 우리나라에서 이런 우유자판기가 가능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팩에 담긴 우유도 아니고 생우유가 나오는 자판기가 가능할까? 결론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우리나라는 생활공간 사이사이로 편의점도 많아 우유를 사기 쉬운 구조이므로 큰 필요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자판기는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이미 명물이 되고 있다.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서비스·상품기획론을 공부할 때의 일이다. 여러 가지 이론을 배우고 그 이론을 적용해 상품을 기획하는 과제에서 우유를 소재로 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교수님이나 동료학생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관심이 뜨거웠는데 오랜 만에 파일을 들춰보니 그 이름이 ‘우유정원’으로 되어 있다.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유명한 드라마 때문에 유행했던 밀루유떼(체코어로 ‘사랑해’)로 사업제목을 정할 것인지(우유 사랑이나 밀크를 연상시키는 단어이므로) 설왕설래하다 ‘All about Milk - 우유정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모양이다. 자신들의 과제를 제치고 이 과제에 이름을 붙여 보겠다고 웃고 떠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획 의도는 낙농자조금을 활용해 우유에 대한 모든 것을 접하면서 먹고 즐기고 배우며 쇼핑도 할 수 있는 상시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함이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 즐길 수 있는 우유를 소재로 한 도심 속 공간을 마련해 매일 만나는 친구처럼 우유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우유를 매개로 한 도심의 명소로서 100년을 이어갈 공간(아마도 세계최초?)을 개척하자는 원대한 포부도 담고 있었다.
사업장 구성은 세 파트로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로 나누어진다. 첫째, 먹을거리 공간은 모든 음식에는 우유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육우고기와 친환경 농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 우유를 이용한 각종 차와 커피, 아이스크림, 요구르트를 파는 ‘밀크카페’, 여러 가지 와인상식이나 치즈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국내산 치즈와 와인을 파는 ‘와인 바’로 구성된다. 와인을 가져와서 마시는 것이나 연령대를 고려한 공간 나눔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둘째, 볼거리 공간은 각국의 우유프로모션 활동이나 우유이야기를 다룬 동영상이나 사진 전시 공간의 ‘글로벌 밀크프랜즈’, 낙농의 역사를 아기자기하게 다룬 ‘작은 박물관’, 국내 체험장의 현황을 알려주는 키오스크를 설치해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 주는 ‘목장으로 가요’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셋째, 즐길 거리는 세계의 젖소 관련 캐릭터를 모아 놓은 공간으로 포토존이 마련 된 ‘무무빌리지’, 우유 도깨비 방망이라고 쓰인 ‘밀크코티지’(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건 아마도 퀴즈를 맞히면 사은품을 주는 코너가 아닌가 싶다.), 캐릭터 상품이나 목장형 유가공품을 판매하는 ‘쇼핑 공간’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브랜드데이’를 주기적으로 열어 우수업체의 제품을 소개 및 판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뉴욕 첼시마켓의 로니부룩 목장 직영점 밀크바와 브루클린 밀크바, 도쿄 이케부로역 밀크바, 롯본기힐스의 마토야마 밀크바 등을 참고 자료로 덧붙여 놓았다. 과제답게 상품구체화 전략(4P mix)과 3c분석, 소비자욕구 분석 등이 추가되어 있고, 가격책정 등은 주변상권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정하되 우유홍보가 주된 목적이므로 현상유지의 성격만 띠면 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요소를 다룬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핵심은 도심 속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접근하기 쉬운 도심 한 복판에 여러 층짜리 건물을 확보해 자연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휴식공간을 마련해 주면서 우유와 친해 질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것인데 이게 불가능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격하게 동조하는 분위기다. 기획이유에도 밝혔다시피 대부분의 우유행사가 이벤트성을 띠고 있어 한시적인데다 목장체험은 큰맘 먹고 찾아가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해 보자는 취지다. 여기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우유에 대한 모든 것을 한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게 모아보자는 이야기다. 단 도심 한복판에다! 그래서 매일 매일 사람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보자는, 바로 그 이야기다. 사람도 자꾸 봐야 정이 들고 더 보고 싶은 법이다. 이런 공간을 통해 목장체험이 더 활발해 지고 우유는 감성과 맛, 영양까지를 망라하는 음식의 총아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나간 걸까.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음식이 접근 가능하고 몸에 좋다는 식품이 널려있는 시대에 영양우위의 논리나 부정적인 의견을 대처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신나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고 감성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쇼핑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고 배우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몰링(malling)이 대세다. one-stop, omni channel shopping(옴니 채널 쇼핑)은 소비자들이 점점 편의성과 감성을 추구하는 시대적인 산물이다. 모름지기 제2의 식량이라는 우유에게 이런 공간 하나 마련해 주는 것은 꿈으로 그쳐야만 할 일인가. 다소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행복했던 우유정원 만들기, 오래 되었어도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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