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 시작하며
우리가 살아오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 번씩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TV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서 ‘진화론’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진화론’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보편적이고 확고부동한 학설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정작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국내에서는 ‘종(種)의 기원’ 저자, ‘자연선택설’을 주장한 학자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하여 해외에서는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항상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는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이 생물학계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 외에 다른 많은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동물복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찰스 다윈은 위대한 선각자(先覺者)로 여겨지는데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는데 있어 동물복지적인 자세를 유지했으며 동물행동학적인 분석을 수행한 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학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며 동물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위대한 학자이기에 우리는 찰스 다윈에 대해 다시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
찰스 다윈은 1809년에 부유한 집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설 공부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찰스 다윈은 의사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에든버러 대학 의학과에 입학했으나 자퇴했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과에 입학했으나 역시 신학보다는 곤충학, 식물학, 박물학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1831년, 우연한 기회에 존 스티븐스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해군측량선인 비글호를 탑승하게 되면서 5년간의 역사적인 항해를 떠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군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다니며 수많은 동식물들을 수집하고 관찰했으며 향후 이 자료들이 진화론을 주장하는 기초자료가 되었다. 다윈은 영국으로 귀국한 이후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했으며, 관찰기록을 정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때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에 서식하는 핀치 새들이 먹이에 따라 부리모양이 각기 다르게 진화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후 약 20년이 지난 1858년까지 찰스 다윈은 자료정리 등의 이유로 진화론에 대해 발표하지 않았으나, 앨프레드 월리스가 다윈과 같은 견해의 논문을 발표하고자 함을 알고서 서둘러 논문을 정리하여 월리스와 공동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찰스 다윈의 연구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이후에도 따개비, 지렁이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수행했다.
특히 1872년에 출간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이라는 책은 인간과 동물 모두 선천적으로 감정(感情)을 가지고 태어나며 감정표현 방식에는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이가 들면서 다윈은 여러 질병들로 인하여 몸이 쇠약해졌으며 런던 외곽에서 요양생활을 해야만 했으나 늘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찰스 다윈은 그의 나이 73세가 되던 1882년, 다윈의 연구를 도왔던 조수이자 사랑하는 아내 에마의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
# 마치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찰스 다윈의 거북이로 유명한 헤리엇(거북이 이름)이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세계의 다양한 생태계를 연구하던 1835년, 갈라파고스에서 육지거북을 잡아서 영국으로 데려왔고 이후에 비글호 함장이었던 해군 장교에게 헤리엇을 선물했다. 이 해군 장교는 1843년 호주로 부임하면서 헤리엇을 데려갔는데 그 곳에서 살 던 헤리엇은 2006년에 호주 퀸즐랜드 동물원에서 176세로 숨졌다. 헤리엇이 실제로 다윈의 연구대상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일부에서는 다윈이 진화론을 쓰는데 헤리엇이 큰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물론 진실을 알고 있는 헤리엇은 아쉽게도 14년 전에 죽었으니 이제는 도저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우리가 접하는 많은 이론과 학설들이 찰스 다윈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세분화된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다윈의 주장이 너무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기도 하거니와 해석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학은 물론이며 심지어 인문학, 경제학에서도 찰스 다윈을 인용할 정도이니 과연 위대한 학자 중의 한 명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19세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것은 큰 도전이고 모험이었을 것이며, 이런 도전정신이야말로 여전히 우리들이 찰스 다윈을 찾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