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곽 춘 욱 고문(벤코코리아(주), 전북대 겸임교수)
‘자화상’의 대표적인 인물하면 네델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마 그것은 그의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기법과 그가 살아온 인생이 특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인생에서 10년(1880∼1890) 동안에 그린 많은 그의 작품들 중 『귀를 자른 자화상』은 그의 정신적인 절망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폐쇄적이고 염세적으로 세상을 살다가 심각하게 갈등의 세계를 겪고 결국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반 고흐!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피카소(1881∼1973) 역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반 고흐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그림을 그렸고, 인생 또한 장수하며 화려하게 살았던 화가이다. 이렇듯 두 사람은 세계적인 화가로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자화상을 보면 전혀 다름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다. 즉, 자화상에는 그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한 인생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도 축산인으로서 자화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미 축산물이 양질의 먹거리로 위상이 정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산업 자체가 불안정하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축산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요인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고집해오던 개고기 보신탕이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시점임데도 불구하고.
‘종의 기원’에서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주창했듯이 살아남는 개체는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것이 아니다. 오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개체라고 했듯이 우리 역시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실제 작금의 축산환경은 복잡한 사항들이 얽혀 있어 감히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축분뇨에 의한 환경문제,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으로 대체되는 비건문제, 갈수록 증가하는 수입축산물에 의한 국내 자급률 저하, 축산인들의 노령화 및 생산원가 상승 등등.
이렇듯 복잡미묘한 환경에서 우리는 좀 더 발 빠른 움직임으로 우리 스스로를 자리잡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에는 반드시 합리(合理), 객관(客觀), 효율(效率)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구태(舊態)한 것을 고집하는 것도, 남이 보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 고집하는 것도, 가성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아가려는 것도 모두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자고로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지만 알면서도 행(行)하지 않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보다 못하다. 즉, 어느 한편에서는 축산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투영되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에 의한 반대급부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제일은 역시 축분뇨에 의한 악취 및 환경문제,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재래적인 방식으로 조악한 환경에서 가축들이 밀사되는 모습들이 일반 소비자에게 투영된 결과이리라.
이제는 친환경축산과 동물복지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이다. 우리 축산인 스스로가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양방법을 고수한다면 이 역시 잘못 그려지는 자화상으로 소비자에게 각인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극히 일부의 잘못된 소행이 소비자에게는 전체적인 모습인 양 소수가 다수를 그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조악한 축사시설이나 환경에서 밀사를 하거나, 폐사체나 축분뇨를 임시방편으로 적당하게 처리하거나, 방역소홀로 자신의 농장은 물론 주변까지 오염시키는 일 등이 지금도 만연하고 있음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는 몰라도 각 가정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동물들이 길거리에 버려져 야생하거나 심지어 자동차에 치여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배운다는 것은 배움을 응용하여 더 나는 곳으로 나아가 효율이 개선됨에 의의가 있다. 배우고 익힌 것을 실제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배우지 않음만 못하다. 책을 읽고, 교육을 받고, 선진지 견학을 하는 것 등은 이러한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요 방법이다. 배운 대로 행하지 않고 역행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는 전체가 비판을 받는 것이다. 마치 어느 자동차가 역주행을 하면 기존의 정상적인 운행을 망가트리고 더 나아가 파괴적인 대형사고를 몰고 오듯이.
우리의 자화상은 우리가 잘 그리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각종 매체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요행수를 바랄 수가 없다. 순간 눈속임을 잘 했다고 안심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우리 스스로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을 잘못 그리는 결과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심한 상처로 남아 자신은 물론 관계자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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