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김성진 소장(아태반추동물연구소)
ICT와 동행하는 동물복지 ③
며칠 동안 굶주렸다. 새벽부터 일어나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사냥도구를 집는다. 곰 부족 구성원은 모두 비장한 눈빛이다. 이들은 재빨리 어미곰을 쫓아 동작이 허술해진 순간을 포착해 일격을 가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단번에 쓰러질 곰이 아니다. 곰 부족 사냥꾼들은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가까스로 어미곰을 쓰러뜨렸다.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으나 이제 식구들을 먹일 거리가 생겼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곰 부족은 아기곰들을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쓰러진 어미곰을 마을로 당장 데려가지도 않는다. 대신 말린 풀대에 불을 붙여 곰 입에 물려주고 한동안 서있다. 그날, 사냥한 곰고기는 부족의 소중한 식량이 되었다. 먹고 남은 뼈는 땅에 묻어주는데 묻는 동안 사람들은 곰에게 왜 곰을 죽여야 했는지 설명하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굶주리지 않고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감사를 전한다. 이들은 먹기 위한 일 이외의 곰사냥은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곰을 보호하고 의미 없이 곰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 아메리카 곰 부족 인디언의 이야기다.
인류학자들은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던 고대 인류도 동물과의 관계를 이와 같이 동등하게 맺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동등하다는 건 어떤 뜻일까? 고대에는 사람이 살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사람이 사냥 당할 수도 있는 입장이라는 뜻이다.
인류, 생태계 절대적 소비자로 군림
세월이 흘렀다. 인류는 여전히 사냥을 하지만 식량을 생산하는 축이 농경과 목축으로 바뀌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사냥을 해야만 얻을 수 있었던 단백질은 이제 마법을 부리듯이 가축을 번식하고 길러내면서 예전보다 쉽게 구했다. 그리고 21세기 현대 인류는 가축을 대량생산하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사람은 생태계에서 절대적인 소비자로서 더 이상 동물에게 먹히지 않는다. 길들여진 가축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신의 영역에 들어온 지 오래다. 그로 인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먹고 먹히는 동등한 관계에서 있었던 최소한의 경외심은 사람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동물에게 감사할 줄 알았던 인류는 직업이 분업화되어 누군가가 기르고 누군가가 도축한 고깃덩어리를 시장에서 사면 그만인 시대를 살게 되면서 점점 감사에 무감각해진 듯하다.
채식주의, 인류 양심적 의식의 잔재
같은 맥락에서 보면 현대사회에 널리 대두되고 보편화되고 있는 동물권리와 채식주의 운동은 동물을 바라보는 현대인류의 인식전환에 반하여 펼쳐진 양심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수백만년 동안 전해 내려온 고대 인류의 양심적 인식이 우리의 유전자에 그대로 남았을 것이고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는, 아니 적어도 축산학과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라면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채식주의를 경계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넓은 공감과 포용으로 끌어안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의 생애 전 과정에 있어 동물성 단백질의 영양학적 필요성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축산업이 필요하다는 대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산업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성장은 산업의 질적 성숙이다. 나이가 들고 몸이 큰 만큼 정신도 성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대를 사는 인류가 고대 인류처럼 동물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배려할 수는 없을까? 만약 이러한 일을 해낸다면 축산업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를 향한 지속 가능한 빛을 볼 것이다.
ICT, 동물윤리·탄소중립 실현 효과
현대를 사는 축산 관련자들이 주도적으로 축산물에 동물윤리를 전달할 방법이 없을까? 다시 말해 우리가 동물자원을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감사하고, 보답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로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이 신체 생리적인 인간 본성을 지키면서 보다 자연스러운 양심을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러한 인식전환체계를 구축할 현대적 도구로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ICT)을 꼽아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2편의 논단을 거쳐 ICT와 동행하는 동물복지의 이점을 생산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정보통신기술은 소,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을 생산할 때 환경, 시스템, 운영관리, 동물의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면서 철저한 정밀사양관리를 지향하는 도구이다. 즉 ICT는 농민에게 가축 생산성과 건강은 물론 동물복지와 탄소중립을 실현할 직간접적인 효과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솔루션이다. 재미난 점은 ICT 기술의 확장성이 생산자뿐만 아니라 모든 유통체인, 즉 소비자에게도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ICT를 기반으로 가축정밀사양을 실현하고 있는 생산자가 가축을 길러온 어떤 형태의 농장 기록데이터를 생산이력제처럼 소비자들과 공유한다면 소비자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 과거 축산물의 가치는 등급과 숙성도 등으로 표현되는 맛, 그리고 위생 정도였다. 특히 맛은 현재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축산물의 중요 요소가 맛으로 충분할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먹을거리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맛 뿐만 아니라 건강, 친환경, 동물윤리까지 고려한다.
대한민국 축산업이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하면 소비자들이 갖는 축산물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가축정밀사양이 적용된 가축사육 정보가 일정수준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유된다면 축산업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해소됨은 물론 소비자들이 믿고 선택하는 소비를 스스로 장려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축산물에 대해 깊고 지속적인 신뢰를 주게 된다.
인간-동물 공존·상생의 가치 창출
지금은 대한민국 축산업이 여러 방면에서 힘들 때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우리는 스스로 적극적인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최대한 머리를 모아 함께 살아갈 길을 도모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축산업 관계자와 농가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산업적 가치 성숙을 농가와 관계자들이 주도하자. 소비자 수요 수준을 조사하여 수준에 맞는 가치를 개발하고 제공하자. IC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생산 기록체계를 구축하자. 이러한 혁신적인 체계는 농가 스스로 자부심을 품고 자신 있게 축산물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한편 소비자에게는 가치 소비의 기회를 늘려줄 것이다. 가축은 오랜 시간 인간의 조력자로 살아왔다. 우리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ICT라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가축은 인류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동물’이라는 패러다임에 소비자의 동참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면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과 동물의 지속가능한 상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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