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동일 기자]
자타공인 전국 상위 1% 농가들 한자리…정례 모임 계획
“한우산업 최대호황 반면 위기 그림자 크다” 인식 공유
새 시장 창출·한우 문화 선도…한우산업 변화 시발점 다짐
대한민국 1%로 꼽히는 엘리트 한우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뭘까.
지난 11일 대전광역시 농협대전지역본부 대회의실에서는 ‘한우농가 공부모임 牛步千里(우보천리)21’이 열리면서 이 모임이 업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날 모인 한우농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에서 상위 1%로 꼽히는 최고의 농가들이라는 점이다.
이 모임을 추진한 민승규 석좌교수(한경대·전 농식품부 차관)는 “지금의 한우산업이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이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 위기의 그림자 또한 짙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오늘 여기 모인 한우농가들은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로 꼽힌다. 여기에서 그 길을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농협경제지주 김태환 축산경제 대표이사는 “이미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농가들이 모여 무엇을 더 배우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실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한우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자급률 하락, 가짜고기 위기, 소비 감소 등 수입 개방의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우려된다”며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함께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오늘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칭) ‘우보천리 21’은 전국의 한우농가 중 총 21개 농가를 선발해 1년간 진행하게 되며, 매월 1회 이상의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이날 모임에 자리를 함께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유쾌한 반란’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데 이어 민승규 석좌교수는 ‘한우농가 공부모임 우보천리 21’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이날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유쾌한 반란(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오늘의 강연의 핵심은 나의 경험에 비춰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 세 가지 질문은 바로 ‘남이 낸 문제’, ‘내가 낸 문제’, ‘사회가 낸 문제’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인 ‘남이 낸 문제’다.
나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판자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정 형편 때문에 상고에 진학했다. 대학진학 대신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선택해야 했다. 주어진 여건 때문에 주어진 여건에 따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야간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했고,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응시해 합격하면서 그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다. 공직자로서 일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게 된 기회가 됐다.
주어진 환경은 나의 의지와는 별개다. 그 환경에 순응하고 살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조직 내에서 남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나를 보는 시선은 일종의 부러움이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하고 있던 일과 공부에 회의감이 들었다. 머릿속에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남이 하고 싶은 일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 때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결심했다.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하면서 내가 하는 일과 공부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사라졌다.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목표만을 향해 살았다면 아마도 지금과는 달라진 모습이 됐을 것이다.
세 번째 질문은 사회가 낸 문제다. 여기서 사회는 좀 더 작은 개념의 사회를 말한다.
직급이 높아지면서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내가 바라본 대한민국은 쟁점이 많고 구조적 문제도 많았다. 더 많은 기회와 더 고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했다.
한국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사회 각지에서 남녀노소, 도시와 농촌, 어촌 등을 다니면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소통하고 있다. 그들은 비즈니스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나의 반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여기 자리를 함께한 한우인들도 환경과 자신, 사회를 깨는 유쾌한 반란을 함께 해주시길 기대한다.
■한우농가 공부모임 우보천리 21(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전 농식품부 차관)
오늘 우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핵심은 좋은 자극을 주고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우선 모임의 이름을 ‘우보천리 21’이라고 정했다. 첫 마음으로 새로 시작 하자는 마음으로 한우산업을 혁신하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의 한우산업 최대의 호황이라고 하지만 반면 위기의 그림자 또한 크고 짙다.
쇠고기 소비가 늘었지만 수입량이 급증하면서 자급률은 낮아지고 있다. 수입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또한, 소득이 3만 불을 넘어가면 쇠고기 소비는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 또한 이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식물성 원료로 만든 대체육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우산업에 있어 매우 위협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우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젠 미래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 번쯤 과거를 돌아봐야 할 때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평원을 달리다가 말에서 내려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고,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
세계적인 언론에서도 한우의 품질에 대해 명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랜 역사 위에 우리의 땀과 노력을 쌓아온 결과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 우리 앞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보천리 21’은 뛰어난 인적자원과 슬기로운 지혜를 배양하며, 신기술과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함과 동시에 한우의 문화적 우수성을 발굴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품격있는 한우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임이 될 것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 구성원들 모두는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시길 바란다.
물음표는 씨앗이며, 느낌표는 꽃이라는 말이 있다.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꽃이 필수가 없다.
오늘은 대한민국 한우산업을 바꾸는 그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 스스로를 뛰어넘자는 생각으로 가슴이 뛰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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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위기에 대비하는 한우고수들의 자세
한우농가 중 최고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실제로 이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한우전문기자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정부에서 선정하는 한우 명인, 한우능력평가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백화점에 별도의 브랜드로 매우 비싼 가격에 한우고기를 공급하는 농가, 여러 마리의 종모우를 배출한 유명 육종농가까지 참석자들의 이력은 화려했다.
평소라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강연을 하는 입장이었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날 그들은 차분히 책상에 앉아 어느 교육현장보다 진지한 자세로 교육에 임했고, 강연자의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한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쌓은 그들이 이처럼 진지한 자세로 교육에 임하도록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의와 모든 교육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가 오늘날 그들을 고수의 반열에 올려놨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또 하나 강하게 느껴진 것은 머지않아 다가올 한우산업의 위기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위기가 오고 있음에 대해 강연자와 참석자 모두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으며,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고민이 가득해 보였다. 그것이 이날 그들을 진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닥쳐올 위기에 대해 걱정하고 미리 대비하는 한우 고수들에게 나는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건국 이래 한우업계 최고의 호황이라고 말하는 지금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 한우 고수가 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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