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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7>讓畔而耕<양반이경> : 농부가 서로 경계선을 양보하면서 밭을 간다

  • 등록 2020.01.08 11:04:39


전중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1. 프롤로그

2018년, 세계를 시끄럽게 했던 ‘중미의 카라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 향하는 수많은 이민자 행렬과 이를 막기 위한 미국의 국경지대 병력투입 등등 연일 세계의 이목이 중미의 카라반에 집중되었다. 이 중미의 카라반 진원지는 온두라스였다. 중미의 카라반은 ‘마약과 폭력을 피해 안전하게 미국으로 가자’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온두라스의 산 페드로 술라(온두라스 제2의 도시)에서 약 200여명이 모여 출발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치안불안 등 중미지역 국가들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과테말라로 확산되어 카라반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었다. 

온두라스는 공적개발원조(ODA) 업무로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만났던 온두라스 관계자들과 농업인들의 순수함과 친근함이 기억에 남는다.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인해 약속시간보다 몇 시간 늦게 현장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던 농업인들은 괜찮다고 힘들지 않았다면서 너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불평하는 사람이 없는 그 곳이 온두라스였다. 가난하지만 항상 행복한 웃음을 짓던 온두라스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중미의 카라반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금은 비록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 사람들이 탈출하는 대표적인 중미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만났던 온두라스의 사람들은 순수했고 항상 상대방을 배려했다. 현재의 우리는 온두라스를 포함한 중남미의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만큼 주변의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는지 혹은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온두라스는 우리나라와 1962년에 수교를 맺었으며 수도는 테구시갈파이다. 국토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1/10에 불과하며 인구는 약 8백90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이지만 농경지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2배에 해당하는 농업국이다. 주요 생산물은 바나나, 커피, 사탕수수, 카카오이며 국내에도 온두라스 커피가 많이 수입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은 약 238억 달러이며, 1인당 GDP는 약 2천500달러로 중미의 극빈 국가이다. 현재 온두라스에는 약 300여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보다 훨씬 많은 교민들이 온두라스에 거주했으나 과테말라에서의 의류사업이 더 활성화되면서 많은 교민들이 과테말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온두라스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에 ‘침대축구’로 유명해졌다. 사실 온두라스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과거 1970년도 멕시코 월드컵 예선전 경기를 치르면서 엘살바도르와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이니 그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온두라스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생각난다. 카카오 생산과 관련한 담당자의 업무현황을 보고받고 농장을 방문해 현장점검을 하는 것이 주요업무였다. 공항까지의 이동시간, 비행시간, 환승과 대기 시간 등을 합해서 거의 40시간 만에 도미니카 공화국에 도착해서 그 곳 업무를 마치고 다시 이동해 온두라스의 산페드로 술라에 도착했다. 일행 모두는 더위와 시차로 녹초가 되어 있었으나, 도착 당일부터 계획된 일정을 남김없이 소화해야 했다. 우연히도 도착한 당일이 온두라스 독립기념일이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온두라스 담당자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어 ‘오늘 온두라스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신 혼자일거다’라며 농담 섞인 격려의 말을 했지만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독립기념일은 온두라스의 가장 큰 국경일 중의 하나이며, 휴일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성향을 감안할 때 담당자가 공항에 나타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되더라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역시나 카카오 농장을 향하는 동안 독립을 축하하는 행렬들로 차량이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덜커덕거리며 4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오지(奧地)에는 남루한 복장의 농업인들 한 무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의 농가들은 숲속 깊은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외지 사람들은 찾을 수도 없으며 전화도 없어 따로 연락이 안 된다고 한다. 이처럼 한자리에 모두 모인 것은 지역대표가 며칠 동안 농가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모임일정을 통보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온두라스 담당자는 우리에게 농업인들 한 명 한 명을 소개하고 인사말들을 주고받았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인사를 모두 마치고나서야 드디어 업무현황을 설명했다. 담당자가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것은 농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었는데 설문지에는 달랑 질문 대여섯 문항이 전부였다. 더군다나 겨우 대여섯 개 질문의 설문지를 작성하는데 농가 한 곳당 반나절 혹은 하루가 소요된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다.   

마침 설문조사를 할 농가가 있으니 직접 보여주겠단다. 일행 모두 말은 못했지만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설문조사 한 개의 문항을 가지고 질문과 답변이 1시간째 이어지는데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하는가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난데없이 얘기에 끼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누군가가 말한 내용을 다시 반복해서 얘기하기 일쑤였다. 한사람이 일어나서 ‘요약하자면…’하면서 앞서 논의된 내용들을 요약(?)하고 자리에 앉으면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다시 말해서...’하면서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등 같은 주제의 내용을 몇 번씩 반복해서 얘기했다. 옆에서 통역을 해주던 통역사도 지쳤는지 ‘아까 했던 말 다시 반복합니다.’, ‘좀 전에 했던 말입니다.’라고 통역을 마치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내고는 다음에 다시 와서 나머지 설문조사를 해야 한단다. 여기서 몇 시간을 기다리던 대부분의 농업인들은 자신의 설문조사는 시작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도 연신 웃으며 ‘만나서 반가웠고 또 만나자’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누구는 산길로 사라졌고 누구는 비포장도로의 먼지를 일으키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어쨌든 한 마디씩은 했으니 다들 만족스러운 하루였던 것 같았다. 그렇게 현장점검 일정을 마치고 온두라스 담당자와 따로 이야기를 했다. “농업인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설문조사 진행이 효율적이지 못한 것 같다. 설문시간을 단축하고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조사하는 게 어떠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담당자는 “당신의 말도 맞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설문지 내용 외의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웃어보였다. 그 이후로 우리 일행 중 누구도 그 설문방식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온두라스 방문 당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신성기 주 온두라스 대한민국 대사님과 대사관 직원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3. 에필로그

온두라스는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중미에서도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할 정도의 극빈 국가이다. 그리고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게으른 국민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온두라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고 소통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면서도 늘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고 존중했다. 양반이경(讓畔而耕)은 농부가 서로 경계선을 양보하면서 밭을 간다라는 뜻이다. 이는 순수함과 더불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의미한다.

우리는 토론회 등에서 상대를 비방하거나 자신의 주장만을 고수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으며 이런 토론문화의 개선을 요구하는 사회 각층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동물복지를 포함한 축산분야도 마찬가지로 대립이 첨예한 사안들이 있으며 이는 언제든지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뇌관으로 늘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문제의 사안들은 폭발의 위험성이 있는 뇌관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한 해도 우리 모두가 양반이경의 자세를 견지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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