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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1>記問之學

  • 등록 2018.10.11 18:28:00


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1. 프롤로그
최근 들어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10여 년 전, 요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박사 후 연수과정(Post-Doc.)을 밟고 있을 때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UBC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州)의 밴쿠버에 위치한 종합대학으로 영화 ‘나비효과’를 촬영할 정도로 아름다운 캠퍼스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아름다운 환경만큼이나 수학, 화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역량을 과시하며 노벨상 수상자와 캐나다 총리를 배출하는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내가 연구하는 동물복지 분야에 있어서도 유명세가 대단한 곳인데 그 이유는 동물복지의 세계적인 거장인 David Fraser 교수님이 동물복지 프로그램(Animal welfare program)의 수장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동물복지프로그램은 David Fraser 교수님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연구를 하고 계시는데 전문기술진 등을 포함하면 멤버수가 수 십 명에 달한다. 동물복지를 포함한 관련 연구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방문 연구자들과의 미팅이 거의 매주 한 번 이상 개최되었다. 이 미팅은 각자 가져온 점심 도시락을 먹으면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방문 연구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는 영국, 프랑스, 인도, 브라질 등 방문한 연구자들의 국적이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미팅의 백미는 연구내용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이제 갓 학위를 마친 초보 연구자들이나 수십 년 간 연구에 매진한 석학들이 격식 없이 본인이 알고 있는 과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을 이어간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참석자 모두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상대방의 주장을 존중한다는 점이었다.


2. 찰스 다윈이 누구인지 아는가?
처음 얼마동안은 낯선 환경에 위축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도 이런 멤버들 중의 한 명이야’라는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무렵 연구원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는 중 David Fraser 교수님께서 ‘찰스 다윈이 누구인지 아는가?’라는 질문을 하셨다. 나를 포함한 연구원들은 ‘갑자기 찰스 다윈에 대해 왜 물어보시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교수님의 얼굴을 주시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각종 동식물들을 연구하고 진화론과 자연선택설을 주장한 식물학자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동물복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동물행동학을 수학하고 이를 활용한다. 왜냐하면 동물복지는 동물의 감정과 상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동물의 행동과 발성음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바로 이 동물행동학이 찰스 다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 핀치 새의 부리모양이 먹이에 따라 각기 다르게 진화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일련의 연구과정이 동물행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도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한 사람 중 한 명이나, 학술적 의미에서 찰스 다윈이 동물행동학의 원조가 되는데 누구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보다 찰스 다윈을 선택하겠다는 학자도 있으니 찰스 다윈이 정말 위대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처럼 찰스 다윈이 남긴 위대한 업적과 동물행동학에 끼친 많은 영향을 깨닫지 못한 채 동물행동을 연구하고 동물복지를 개선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눈에는 그런 우리들이 모습이 마치 불빛 없이 어두운 밤길을 나서는 사람들처럼 위태롭게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전문가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거장의 눈에 비친 우리는 여전히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학문적으로 미숙한 신진 연구자들이었던 것이다. 학문의 원류(源流)도 모르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어 하던 노(老) 교수님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에 대한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 교수님은 2010년에 한국을 방문해서 동물복지에 대해 강연을 하셨다.)


3. 에필로그
최근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동물복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이 등장하였으며, 방송에서는 동물의 행동 일부만 보고도 동물의 상태를 척척 알아맞히는 전문가들도 나타났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채식을 해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고, 가축을 기르는 것 자체가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동물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와 동시에 동물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혹은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남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혹은 ‘그렇게 생각이 되니까’라는 식의 접근은 매우 위험하다. 기문지학(記問之學)이라 함은 비단 학문적 깊이의 부족함을 꾸짖는 것뿐만 아니라 무책임함을 나무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축의 동물복지 개선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체적인 해결방안이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누구나 동물복지를 주장할 수 있으나, 그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책임이 따른다. 적어도 본인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알맞은 지식을 갖추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만 기문지학(記問之學)의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