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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ISO/IDF 분석회의 그 후…

  • 등록 2018.05.16 11:08:14


윤성식 교수(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더블린(Dublin)의 날씨는 유난히 변덕스러웠다. 북유럽 겨울의 춥고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자취를 감추는 절기라서인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우산을 펴고 강변을 걷다가 보면 어느새 한 무리의 햇볕이 머물곤 했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현수막이 심하게 펄렁거릴 정도로 리피강을 타고 부는 바람이 이방인의 얇은 옷깃을 파고들었다. 엘리엇(T.S. Eliot)의 황무지에 나오는 표현처럼 잔인한 4월. 이처럼 변덕이 심한 기후조건을 이겨내고 칠백여년 간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오늘의 아일랜드로 발전해 가는 그들의 영혼이 참으로 강인해 보였다. 하루에도 비는 여러 차례 성가실 정도로 어른거렸지만 장마철에 내리는 장대비가 아니라 그저 땅을 촉촉이 적시는 마치 스프링쿨러 같은 실비였다. 일조량이 적어 채소나 과일, 경종작물은 키우기 어려울지 몰라도 기후가 서늘하고 강우량이 충분하고 나지막한 구릉지에는 목초가 무성하니 조방형 낙농업의 입지조건으로는 이상적인 환경처럼 보였다. 그래서 “아! 목동아(Oh! Danny Boy)”라는 민요가 여기서 불리어지기 시작했나 보다…
Bord Bia(보드비아)는 게일어로 식품청(Irish food board)이라는 뜻을 가진 정부기관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점처럼 박혀있는 체가스(Teagasc)와 더불어 유기농, 친환경낙농산업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낙농가들에게는 우유의 생산을 기업에는 제품 판매를 컨설팅해주는 게 직원들의 주요 업무다. 그들은 요즘 들어 부쩍 세계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보드비아 1층의 “생각하는 집(Thinking House)”이라는 간판이 붙은 공간에 들어가니 세계 각국의 낙농제품 포장용기들이 진열대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자국산 유제품을 해외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상대국가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며 한국산 김치제품 포장지를 들어 보였다. 필자를 안내한 David Kennedy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드비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청년. 공무원인지 유가공회사의 영업부 직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기업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현대는 기술경제 시대이고 경제적 풍요는 자연을 훼손한 댓가라는 다소 시니컬한 경제학적 견해가 있다. 생각해 보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비좁은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부지런히 살았고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국토를 산업용 부지로 개발했다. 이러한 자연 파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예전에 비하면 주리고 강팍한 살림 형편이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그 부작용 또한 골치 아플 정도로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바로 먹거리 문제다. 요즈음은 제초제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축산물을 생산하기 어렵다 보니 농축산물이나 가공식품에 농약이나 항균제, 살충제의 잔류량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안전성이 확보된 농산물의 생산이 더없이 중요하고, 식품안전이 식품기업의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몇 해 전 불량식품은 우리사회의 4대 악(惡)으로 지목되었고, 그것의 추방이 전 정권의 국정과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돈 좀 있는 소비자들은 유기농, 친환경식품으로 식단을 꾸민다. 소득이 늘어났으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식품은 의식있는 소비자들로 부터 하루아침에 퇴출되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정부는 항생제 남용을 막기 위해 2011년부터 가축사료에 대해 항생제 첨가를 전면 금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발표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중 항생제 잔류기준 위반율은 오히려 그 전보다 2.6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산물, 축산물의 생산 유통에 항생제, 항균제의 사용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지난해부터 식약처는 농약에 대해 포지티브리스트체계(PLS: positive list system)를 전격 시행하기로 했다. FTA 시대에 식품의 국경이 허물어진지 오래고, 식량자급율은 약 50%, 곡물자급율은 24% 정도에 불과하니 먹거리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한다. 병, 해충의 방제에 사용되는 농약의 종류는 국가마다 다르고 잔류 허용기준도 차이가 있다. 정부가 수입 농산물의 농약 잔류량을 관리하다 보면 고민스런 일이지만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농약의 품목과 기준을 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포지티브리스트체계란 식품의 원료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잔류기준을 초과해 농약이 존재할 경우 식품의 가공, 유통을 금지하고, 잔류기준이이 미설정된 것은 인체 건강을 해치지 않는 농도인 대략 0.01 ppm을 초과할 경우 유통을 금지하는 제도이다. 미국은 등록되지 않은 농약에 대해 불검출(zero tolerance)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웃 일본은 200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각종 농수축산물의 생산단계에서 사용되는 식품잔류가능성이 있는 농약, 사료첨가물, 동물용의약품이 규제 대상이다. 우리나라도 포지티브리스트제도 하에서 불원간 국내산 원유(raw milk)에 대한 농약류(항생제, 항균제, 살충제, 농약 등)의 사용이 더 엄격하게 관리될 것이다. 법적으로 관리되는 농약류의 품목이 늘어나면 현행 원유의 검사비를 지불하는 유가공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견된다. 우유에 함유된 수많은 각종 물질의 잔류량을 검사하는 것은 분석방법의 효능성, 정확성, 편리성, 신속성이 전제조건이다. 우유 중 잔류량을 희소농도(ppm 또는 ppb)까지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검사법의 채택, 분석장비의 선정도 이 제도의 전면적 시행과 맞물려 고려해야 할 주요 검토사항 중 하나로 판단된다. 소비자 대중을 보호하고 식품안전을 제고하는 일은 불가피하겠지만 외국산 고가장비나 분석용 킷트(kit)를 구입해 많은 시료를 분석해야 한다면 그 검사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업체로서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요컨대 값싸고 신속하게 분석할 수 있는 국산 장비나 검사용 킷트의 개발과 함께 이 제도의 전면적 시행을 조화시키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ISO/IDF Joint Analytical Week”는 지난 4월 필자가 참석한 국제회의다. 유럽에서도 낙농제품의 농약류 분석법 및 분석 장비의 선정이 첨예한 관심사가 되었기에 수백 명이나 모이는 국제회의가 되었다고 본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온 천지가 그린색 초지가 펼쳐진 나라. 청정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있는 원조 녹색(Origin Green) 아일랜드는 오염되지 않은 친환경유제품을 생산해 세계시장을 노크 중이다. 목장에서 생산된 우유를 원료로 사용해 만드는 20여개 유제품에 들어있을 수 있는 항생물질을 비롯한 농약류의 잔류를 걱정하면서 우리는 국내 낙농산업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보드비아 회의실에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선 대형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이 땅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게 아니라 후손들로부터 빌려 온 것이다. 언젠가는 자손들에게 돌려줄 것이다. 그 때도 과거 우리가 본 것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이 의미하는 것이다.(We did not inherit this world from our parents, we borrowed it from our children. One day we will return it  to them. When we do, it should be every bit as beautiful as it was when we found it. That’s what sustainability me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