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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단>생존과 환경, 무엇이 중한가?

  • 등록 2018.02.14 09:55:17


남 성 우 박사(前 농협대학교 총장)


무허가축사 적법화는 생존의 문제다.
세종대왕은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고 했다. 우리나라 축산농가는 12만여호, 그들은 백성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축산식품을 생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축산업은 농업생산액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축산물 수입의 급증으로 미래는 어둡다.
그런데 설상가상, 환경규제 강화로 인해 축산농가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가축분뇨관리와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에 따라 3월25일부터는 정부가 무(미)허가축사의 사용중지 또는 폐쇄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축산농가들은 “무허가축사 적법화를 기한 내에 완료하기가 사실상 어려우니 가축분뇨법을 개정해 시행을 3년만 연기해 달라. 또 법 시행 이전에 사용해오던 기존의 가축사육시설은 기득권을 인정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1. 가축사육시설의 사용중지나 폐쇄는 축산농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무허가축사를 가진 농가가 6만여 호나 된다고 하니 축산농가의 절반이 생활터전을 잃게 된다. 농장에서 일하는 고용근로자를 합하면 줄잡아 30여만 명의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다. 가축분뇨 냄새 등으로 인한 주민들의 생활불편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는 개선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국민의 ‘생존문제’와 ‘생활불편’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생존’ 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2. 축산업의 육성 발전을 담당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의 ‘축산법’에서는 축사를 ‘가축사육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는데, 환경부 소관의 ‘가축분뇨법’에서는 축사를 ‘가축분뇨배출시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축산농가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오직 환경규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규제법인 셈이다. 축산법 등 관련법의 상위법 행세를 하며 ‘법 위의 법’으로 군림하고 있는 가축분뇨법의 소관부처를 농림축산식품부로 이관해 축산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마땅하다. 가축분뇨문제는 공동자원화시설을 확충하는 등 유기질비료 자원화에 초점을 맞춰 풀어나가는 것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다.
3. 법은 사회적 통념상 이해당사자의 대다수가 지킬 수 있고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져 대다수가 지킬 수 없는 법은 결국 악법(惡法)인 것이다. 혹자는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악법은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규제를 시행하는 가축분뇨법은 악법이므로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4. 축산관련 규제 수준이 지자체마다 다른 것은 잘못된 제도 탓이다. 중앙정부가 가축사육제한 거리 권고안을 제시했지만, 지자체는 조례만 제정하면 마음대로 제한 강도를 높일 수 있다. 무허가축사 적법화 사례를 보더라도 천차만별이다. 비슷한 여건의 축사시설에 대해서도 지자체에 따라 적법화 ‘가능’ 또는 ‘불가능’으로 정반대의 결정이 내려진다. 중앙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서 더 나아가 지나치게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중앙정부는 권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령으로 딱 부러지게 정해 놓고, 지자체는 법 집행만 하도록 해 과도한 자의적 결정을 제한해야 한다.
5. 지자체는 기존의 축산농가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분뇨 냄새 등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에는 공통점이 있다. 당초 축산시설을 설치할 때는 주위에 민가가 없었고 시·군의 허가도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농장 인근이 개발되면서 주택이 들어서고, 그 주민들이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고 민원을 제기한다. 게다가 집단민원까지 내어 괴롭히니 급기야 지자체는 가축사육제한 조례를 강화해 축산농가를 압박하게 됐다. 그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모양새다. 지자체는 기존 축산농가의 기득권을 인정해야 한다. 축산업 등록·허가를 받은 기존의 축산농가에게 또 다른 잣대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분명하게 잘못된 행정이다.
6. 정부는 축산농가가 이주할 수 있는 공영축산단지를 조성해야 한다. 현재 지자체의 가축사육제한 거리를 지키면서 축산시설을 설치할 장소는 마땅치 않다. 축산이 아예 발붙일 곳이 없는 지역도 많다. 수년전 공영축산단지를 조성하는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추진했으나 희망 지자체가 없어서 추진도 해보지 못한 적이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일부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제부터라도 지자체별로 공영축산단지를 조성, 분양해 입지제한지역의 축산농가가 입주할 수 있도록 추진하자. 간척지에 축산단지를 조성하여 친환경적으로 관리한다면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바로 간척지 축산의 선진국인 네덜란드가 성공모델이다.
7. 개정된 법으로 소급적용을 하는 것은 분명하게 부당한 일이다. 가축분뇨법의 소관부처인 환경부는 2015년 3월25일 법 개정 시 적용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배출시설을 ‘설치하려는 자’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을 ‘설치 및 운영 중인 자’로 확대해 기존 농가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 버렸다. 법을 이해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소급 적용하는 것은 과잉규제를 금지한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8. 입지제한지역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그 지역에서 축산을 해왔으나, 후에 도입된 제도에 의해 범법자가 되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당농가는 우선 적법화 조치를 통해 구제해줘야 한다. 예를 들자면 새롭게 문화재보호지역, 수변지역, 학교환경정화지역 등으로 지정되면서 입지제한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경우에는 기존의 축산시설을 적법화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 소급해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잘못이다.
9. 지역별로 축산인이 중심이 되어 ‘지역축산발전기금’을 조성,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과거에는 도축장에서 가축을 도축할 때 거두는 지방세인 도축세가 있었으므로 자연히 지자체도 축산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연간 약 600여억 원에 달하는 도축세가 폐지됐다. 당시 지자체의 강력한 반발에 대해 중앙정부는 교부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도축세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후 교부금은 지급되지 않았고 도축세만 폐지된 결과가 됐다. 축산분야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도 자연히 줄어들었고 FMD, AI 등으로 인한 방역비와 막대한 보상비는 시·군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이제 지자체별로 축산인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축산발전기금을 조성해 축산안정과 지역발전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한다면 축산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엄동설한,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다. 한파를 무릅쓰고 아스팔트 위에 천막을 친 축산지도자들의 절박한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축산단체장들이 삭발을 하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돌입했다는 소식에 마음까지 얼어붙는다. 전국의 축산인 모두 하나같은 마음, 생존이 위협받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참담한 심정일 게다. 무허가축사 현안이 축산인들의 염원대로 해결돼 얼어붙은 마음에도 봄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