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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벨파스트 연차총회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

  • 등록 2018.02.02 10:39:04


윤 성 식 교수(연세대학교)


벨파스트시(Belfast city)는 영국이 자랑하는 유람선 타이타닉(Titanic)호가 건조된 유서 깊은 도시다. 아일랜드섬 북단에 인구 약 33만명이 사는 아름다운 항구다. 소위 종교전쟁이라는 불리는 영토분쟁으로 기독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과거 대영제국의 영화와 명성을 찾기 어렵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최대의 유람선을 제작했을 정도로 번창했던 고장이다. 유럽의 여러 도시가 그러하듯 조선업이 사양산업으로 기울면서 이 도시의 활력도 함께 쇠락의 운명을 같이했다. 지난 가을 끝자락, 2017년 IDF 연차총회가 바로 이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EU 국가 중 유기농업의 선두 주자를 자처하는 아일랜드공화국과 인접한 이 항구를 런던 대신 개최지로 선택한 영국인들의 속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새로운 기대와 소망을 안고 무술년 새해가 떠올랐다. 지난해 내 삶이 그린 이런저런 궤적들을 돌이켜 보며 올해는 무엇인가 잘못된 태도를 고쳐 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초부터 유난히 날씨가 매섭다. 북극권을 맴돌던 제트기류가 하강하면서 한파가 북반구를 덮쳤다는 기상대의 설명이다. 북미에서는 혹독한 한파로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었다는 뉴스도 들린다. 매년 겨울이 시작되면 국내 축산업계는 바짝 긴장한다. 겨울철과 더불어 축산농가에 찾아오는 반갑잖은 불청객 때문이다. 이번 겨울 벌써 몇 차례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감염이 확진되었다. 국내 축산업계의 겨울나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롭다. 축산업은 선진국형 농업이라지만 유감스럽게도 국내 낙농산업은 지난 10여년에 걸쳐 해를 거듭할수록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통계수치를 보면 그러한 추세가 한 눈에 잡힌다. 원유생산 기반인 젖소 사육농가와 사육두수가 모두 감소하고 있다. 년간 원유생산량도 2년전 230만톤에서 작년에는 약 205만톤으로 감소했다. 수급조절 방안으로 착유우 도태를 포함해 일련의 원유생산조절정책을 펼친 결과다. 살아있는 생명을 도태시키는 것은 낙농가에게는 가슴 아픈 고통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축산농가의 고령화, 탈 농촌에 따른 도시화, 축산 분뇨나 무허가 축사에 대한 규제 강화, 구제역과 같은 전염병 발생, 안티우유(anti-milk) 선동 등으로 인해 국내 낙농산업은 활로가 안 보이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올해는 80년 낙농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80년 낙농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 낙농연맹에 가입한 50여 회원국의 농가, 단체, 기업,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18 IDF World Dairy Summit(세계낙농정상회의)이 오는 10월 대전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 낙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국제적 낙농행사가 열리는 거다. 한국조직위원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2017년 개최지인 영국 벨파스트에 다녀왔다. 그 행사에 참석하면서 비로소 유럽인들이 요즘 공들이고 있는 낙농현안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기낙농(organic dairy farming)”이 그들이 추구하는 핵심 키워드(key word)이고, 그 이슈의 세계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벌써 유기낙농산업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고, 실제로 거래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일반 우유의 소비는 지난 15년 동안 조금씩 감소하는 반면, 유기농 우유의 소비량은 약 5만톤에서 지난해 16만톤으로 약 3배나 증가했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유기농 우유 생산자 단체를 결성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비오레’와 영국 엄스코(OMSCO)는 대표적인 유기농 우유 생산자 단체다. 엄스코의 2015년도 집유량은 영국 유기농 우유 총집유량의 60%에 해당하는 2억8천만 리터에 달할 정도다. 그들은 공동집유 뿐만 아니라 가공과 유통 업무까지 스스로 해결하면서 유기농 유제품은 해외시장으로 수출한다. 유럽 낙농 선진국들이 이처럼 유기농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국내 낙농산업도 그들을 벤치마킹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생산과 소비를 통합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급을 조절, 관리하는 지휘부, 이른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요컨대, 낙농은 목장에서 단순히 우유를 생산, 판매하는 관행이 아니라 생산자가 가치를 만들어 내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가치사슬(value chain)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가치사슬이란 고객에게 가치를 주기 위해 기업이 벌이는 생산과정 외에도 기업 활동을 통해 소비자의 욕구가 충족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가공업체도 원유생산자인 낙농가와 수시로 정보를 공유하고 지속적으로 소비자 대중의 정보를 파악하는 업무가 확대되어야 한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블럭체인, 인공지능(AI)이 형성하는 초연결 플랫폼을 통해 소비와 생산을 직접 연결하고, 생산과 소비의 프로세스들 간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소비와 생산을 결합하는 작업이 미래 낙농을 좌우하는 관건이라고 한다. 젖소가 생산하는 우유는 타 농산물과 다른 독특한 품질과 생산 특성이 있으므로 생산과 소비를 통합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급을 조절, 관리하는 지휘부, 이른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고비용화, 고령화, 노동력 부족 등으로 인해 외국에 비해 낙농산업의 상대적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다. 예견되는 산업의 침체를 방지하고 위기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해 생산과 소비의 조절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농업분야는 농·축·수산물 생산량을 증대하는 것보다 수확, 저장, 가공, 유통, 소비에 이르는 푸드체인(food chain)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업무가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센서, 자동화, 네트워크 기술이 융합된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을 도입한다면 국내산 원유의 품질 및 생산성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다.
국내 낙농산업이 발전하려면 국내산 원유의 안정적 생산과 소비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인구절벽 시대를 맞이해 우유소비 감소는 예정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산 원유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해 안일하게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우리 낙농업계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길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자. 정부에서 추진하는 전국적 원유수급관리체계를 투명하고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모든 낙농주체들이 협력해야 한다. 각자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 놓아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우유 생산량과 소비량을 투명하고도 합리적으로 관리, 운영하는 표준거래원칙이 정착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북유럽의 어둡고 긴 겨울이 시작되던 지난 가을 방문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시에서 어깨너머로 영국과 유럽이 지향하는 낙농업의 장래를 보았다. 국내 낙농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지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책무이고, 국가의 생명줄 인 농업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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