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수 애그스카우터 대표(농업경제학 박사)
[축산신문]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추진을 빌미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막대한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가 순식간에 우크라이나를 함락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거셌으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토지는 체르노젬(Chernozem)이라는 점토질 흑토여서 봄과 가을에는 토양이 진흙탕으로 변하고 길이 없어지는 현상인 라스푸티차(Rasputitsa)가 발생한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고,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소전쟁에서도 독일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 줬던 전례를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가 답습한 꼴이 됐다.
러시아가 쏘아올린 미사일로 인해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는 세계 대표적인 농업 대국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이 막혔으며 세계는 곡물 가격의 폭등과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위기를 겪었다. 우크라이나는 호밀과 해바라기씨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으며 보리는 세계 3위, 옥수수는 세계 4위, 대두는 세계 7위 수출국이다. NATO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튀르키예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22년 7월 22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흑해 곡물 협정이 체결됐다. 러시아가 2023년 7월 18일 흑해 곡물 협정을 파기하기까지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흑해를 통해 수출됐으며 폭등했던 곡물 가격도 하향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흑해 곡물 협정을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와 연결되는 도로, 철도 및 항구를 개방하여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도왔으며 우크라이나는 흑해에서의 곡물 수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인도주의적 회랑(흑해 우회 항로)’을 설정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를 포함한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군은 점령하고 있으며 이를 경계로 우크라이나군과 지리멸렬한 전투를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신속하게 끝낼 것이라고 수차례 밝힌 바 있으며 집권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을 중재하고 있다. 종전에 대한 구도가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나 러시아는 명목 없는 전쟁에 그치질 않길 바라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지역을 러시아 연방으로 편입시키길 원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이를 허용하는 선에서 평화 협상이 맺어지는 시나리오가 구상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의 영토 20%를 러시아에 내어주는 셈이 되어 불리한 협상에 임하지 않겠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셔틀 외교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중재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속셈은 따로 있다. 미국은 풍부한 러시아의 에너지와 우크라이나의 광물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하며 이들 국가로부터 막대한 이권을 챙기려 하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협정이 이루어져 정상 간의 서명만을 남겨 놓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2년 2월 24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의 기간 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직접피해액은 1천760억 달러, 손실액은 5천888억 달러, 복구비용은 5천236억 달러로 추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복구 및 인프라 재건 사업을 미국이 주도할 기세다. 농업의 경우 직접피해액은 112억 달러, 손실액은 727억 달러, 복구비용은 555억 달러로 예상되며 농업 부문에 대한 재건 및 인프라 구축 사업도 미국이 앞장서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지원금을 준 나라는 미국이며 그 뒤를 독일, 영국, 일본, 캐나다 등이 잇고 있으나 미국의 지원이 압도적이었으며 전후 재건 프로젝트를 미국이 가져가는 것은 당연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원 금액 순위에서 20위 밖에 있으며 우리 기업이 전후 복구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상공회의소(UCCI) 사절단이 방한해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희망했다. 식량 및 사료 자원을 거의 전적으로 수입해 오고 있는 우리에게 농업 강국인 우크라이나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나 해외농업개발 특히 식량안보를 위한 해외 기지 구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생산자 단계의 업스트림에서부터 수출 단계의 다운스트림에 이르기까지 저장 및 유통 시설을 갖춰야 하며 수출 전초기지에는 대규모 터미널을 구축해놓아야만 한다.
농식품 산업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올해 농식품부 예산은 겨우 88억 원으로 책정됐으며 그마저 2024년에 비해 9.3% 깎였다. 민간의 해외농업 진출 및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소요될 것이며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해외 식량 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지원이 쉽지 않다. 국제 곡물 사업을 구축하고 최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소수의 국내 기업이 있으나 세계적인 곡물 메이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수준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우크라이나 농업 부문 재건 및 인프라 구축 사업에 참여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건 포스코인터내서널이 2019년 12월부터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주에 곡물 수출 터미널을 가동하고 있다는 점이며 현재 전쟁으로 인한 피해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뿐만 아니라 많은 국내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농업 부문 재건을 토대로 한 해외농업개발에 참여로써 우리의 식량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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