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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전후방 산업 동반 성장…농가경제 넘어 지역경제 발전 기여


남성우 박사(전 농협대학교 총장)


생산주기 짧아 현금 순환 빨라…농업 생산액 40% 육박 고소득 창출

고도성장 불구 反축산 정서 확산도…친환경·청정화 구현 매진해야



돌이켜보면 1960년대의 우리나라 농촌은 참으로 가난했다. 당시 농업인구가 전체 인구의 60%가 넘었으니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농업구조를 보면 주식인 쌀 생산이 농촌소득 중에서 가장 중요했고, 밭작물은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 등 식량작물과 무, 배추, 고추, 마늘 등 채소류 그리고 사과, 배, 포도 등 과일류가 주종이었으나 생산량은 자급하기에도 부족했다. 


60년대 말 “농업소득 높이자”…축산 장려

당시 축산은 부업축산으로 축산업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영세했다. 한우는 농사를 짓기 위한 ‘일소’로 대농에서나 한 마리씩 길렀고, 돼지도 어미돼지 한두 마리를 키우면서 새끼돼지를 장에 내다 팔고 두엄을 밟혀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닭은 달걀을 내어 먹으려고 마당이나 뜰에 풀어놓고 길렀다. 1970년도 축산의 실태를 보면 한우는 112만 호에서 128만 두를 사육해 호당 평균 1.1 두를 사육하는 영세규모였다. 젖소는 3천 호에서 2만 4천 두를 사육해 호당 평균 8두, 돼지는 88만 4천 호에서 113만 두를 사육 호당 평균 1.3두, 닭은 133만 호에서 2천 363만 마리를 사육해 호당 평균 18마리에 불과한 형편이었으니 당시 농촌경제에서 축산의 비중은 보잘것 없었다. 단지 농사를 짓는데 일소로 쓰인 한우의 역할만큼은 농촌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던 때였다. 

1960년대 후반 들어 가난한 농촌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축산진흥시책을 추진했다. 쌀농사 등 경종농업 만으로는 농업소득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정부의 농정전환이었다. 이 길만이 가난한 농촌을 잘 살도록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낙농 진흥을 위해서 서독의 원조로 1969년 안성에 한독낙농시범목장을 설립하고 이어서 뉴질랜드와 차관사업으로 평택에 한뉴낙농목장을 개장해 우량 젖소와 기술 보급을 통한 낙농발전을 선도토록 했다. 초지조성을 장려하고 축사시설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가축개량사업에 박차를 가해 한우의 몸집이 두 배나 커졌고 육질도 향상됐다. 젖소 개량도 추진해 착유우 두당 산유량이 배로 늘었다. 정부의 축산진흥정책으로 사료산업, 도축·가공산업, 축산물유통·외식산업, 기자재산업, 동물약품산업 등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해 국가 경제에서 축산업과 관련 산업의 비중이 커졌다. 시기적절한 축산진흥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억대 농부 축산인 속출…농촌 성공사례로

농촌에 가보면 농사를 지으면서 축산을 시작해서 부자가 된 농업인이 많다. 작물이나 과수 재배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꿈에 그리던 억대 농부가 되었고 그중 어떤 축산인들은 그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축산인으로 성장했다. 농업 분야에 축산업이 도입되고 성장함으로써 거둘 수 있었던 결실이었다. 필자는 1976년부터 약 5년간 한독낙농시범목장에 근무할 때 해마다 젖소 육성우 50여 마리씩을 분양했다. 한 농가에 2~3마리씩 분양했는데 그때 분양받은 농가들이 지금은 착유우만 100여 마리 이상을 기르는 대규모의 선도 낙농가로 성장했다. 축산업으로 성공한 농촌의 모범 사례다. 

축산진흥정책 중에 축산단지 조성사업이 있었다. 지역의 여건을 고려해 한우번식단지, 낙농단지, 양돈단지, 산란계단지 등이 전국에 조성되었고 이런 곳을 중심으로 축산이 발전함으로써 지역경제도 활성화되었다. 


협동조합, 지역경제 구심체 역할

가축 사육두수가 늘어나자 협동조합의 사료, 기자재 등 축산자재사업과 유통사업이 확대되고 가축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민간 사료회사의 지역대리점이 늘어나고 농가에 대한 축산기술 서비스가 향상되었다. 가축병원과 동물약품판매점이 늘어나고 인공수정사업도 활발해졌다. 현대적이고 위생적인 시설을 갖춘 도축·공판장이 늘어나고 주위에 육가공업체들이 따라서 늘어났다. 이렇게 축산업은 농가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연관산업이 발전하면서 농촌 지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2010년 안동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축산인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자재와 가축의 이동이 통제됨으로써 지역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극심한 타격을 입었던 사례에서 우리는 축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농촌경제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그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1970년 농업생산액은 7천891억 원이었고 이 중 축산생산액은 1천177억 원으로 그 비중이 14.9%에 불과했으나 1990년에는 농업생산액 17조7천281억 원 중 축산생산액 3조9천214억 원으로 비중이 22.1%까지 커졌다. 2019년에는 농업생산액 49조6천799억 원에 축산생산액 19조7천706억 원으로 비중이 39.8%를 차지할 만큼 크게 성장했다. 이제 축산업은 농업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농가소득 면에서 보더라도 축산농가의 소득은 다른 경종농가의 소득보다 높다. 2019년도 쌀생산 농가의 연평균 소득은 3천24만 원인데 비해 축산농가의 소득은 7천546만 원으로 2.3배나 되고, 과수농가의 소득 3천527만 원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런 통계를 통해서 우리는 축산업이 농가소득을 올리고 농촌경제를 살리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농촌경제 측면에서 축산업의 장점 중 하나는 현금의 순환이 빠르다는 것이다. 일부 채소를 제외하고는 벼농사를 포함해 대부분의 작물 재배 시 일 년에 한 번만 수확할 수 있으므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기간이 장기간 소요되는 데 비해 축산은 생산주기와 순환이 빠르다. 한우의 경우 한 마리를 놓고 보면 번식·비육기간이 길기는 하지만 여러 마리를 사육하면 매월 출하가 가능하므로 규칙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낙농의 경우는 유대(乳代)가 2주 간격으로 결제되므로 한 달에 두 번 유대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현금이 빨리 돈다. 양돈의 경우 6개월 만에 규격돈(110kg)을 출하할 수 있고 다두사육을 하므로 역시 정기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산란계는 매일 산란하는 계란을 매일 유통시키므로 말할 것도 없고 육계도 입식 후 40일이면 출하 가능하므로 회전이 빠르다. 회전이 빠르기로는 오리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듯 생산·출하주기가 빠른 것이 축산업의 장점이므로 농촌경제의 활력소가 되고 원동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축산 부정적 이미지 개선, 생존과제

지금까지 기술한 바와 같이 농업과 농촌경제에 미치는 축산업의 역할이 크고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반축산(反畜産, 안티축산)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이런 정서가 빠르게 퍼져가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반축산 정서’를 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으로 돌리고 그들을 탓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축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백번 인정하더라도 “냄새가 나서 싫다” “환경을 해쳐서 싫다” “질병이 너무 많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딱히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먼저 ‘냄새 없는 축산’ ‘친환경 축산’ ‘청정축산’의 실현에 매진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을 먼저 한 연후에야 축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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