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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생명체 유감론

  • 등록 2019.04.26 10:49:22


김 동 균 이사장(전 상지대교수, 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거대한 흐름을 유지한 채 흘러(?)가고 있다. 삼라만상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원칙은 차별 없이 적용되고 있지만 나타나는 결과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시간은 단 한 순간조차 되돌려주지 않으며, 공간은 아무리 작은 틈새가 있어도 닿지 않는 것은 충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장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람의 의식이 만들어 낸 허상이며, 심지어 무한공간인 것으로 여겨졌던 우주의 형체조차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설명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많은 천체 중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지구라는 행성 말고는 생명체가 확실히 입증된 곳은 없다.
살아있는 물건은 ‘자신의 형체를 스스로 유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러자면 다른 생명체를 끊임없이 (희생시켜) 섭취하고 배출하는 현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 일상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어떠한 생명체도 물질의 드나듦 없이 형체를 유지하는 것은 없으며, 심지어 미생물에게도 먹을 에너지는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인간에게 식량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러나 이것을 얻기 위한 현장의 노력이 얼마나 처절하고 치열한 것인지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실제로는, 격랑 속에서 사투하는 어부의 고통과 땡볕에서 등줄기를 혹사시키는 농부의 통증으로 도시사람들의 행복한 식도락이 유지되고 있다.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향기로운 음식물들은 수많은 수고로움을 거쳐 찾아온다는 점을 잊은 채 맛에 취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에 존재하는 1천만~1천500만종의 생명체가 살아 있는 현상은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가? 우주에서 바라볼 때 이 현상은 거의 무(無)에 가깝다. 은하 1천억 개 이상, 은하 한 개당 1천억 이상의 행성(별)으로 구성된 대운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의 위대한 태양은 어두운 뒷골목에 켜진 작은 가로등에 불과하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그 열로 살아가고 있다. 지구 100만배에 달하는 태양이 발산하는 에너지 중 200억분의 1이 우리의 행성을 스쳐 지나간다. 그 중 1/3은 지구표면에 닿지도 못한 채 반사되며, 도착한 열마저 대부분이 바다와 육지표면 및 공기 데우기에 사용되고, 바람을 일으키는 일에 1%가 소비되며 0.023%가 생명에너지로 쓰인다. 생명계로 유입된 태양에너지는 식물과 미생물에 의해 유통 가능한 화학에너지로 전환되어 이놈이 돌아다니면서 생태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곤충을 비롯한 동물계는 단 1칼로리의 태양열도 축적할 능력이 없으며, 오직 에너지의 소비자일 뿐인데 우리는 가축에게나 자신에게 ‘생산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산다. 우리는 태양에너지의 극히 작은 분량으로 움직이고 있는 1천여만종 생명체의 한 종류일 뿐이며, 그나마 모든 생명에너지는 죽음의 순간부터 신속히 분해되어 허공과 땅으로 되돌려지고 다시 이용되면서 생태계가 순환되고 있다.
자칭 제일 똑똑한 생명체인 인류사회의 구조는 필설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눈앞의 사정만 보자면, 축산물을 비롯한 생명자원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노력과 수고에 비하여 넉넉히 보상받고 있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동식물을 다루는 농민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내일은 좋아지겠지’하는 희망을 가지고 일생을 지내다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사람의 수가 많기 때문에 몇 몇 잘 풀린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장례식을 치르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축산인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사연도 찾아올 수 있다. 평생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오던 농장이나 목장을 다른 용도로 쓸 것이기 때문에 옮기라는 주문을 받기도 하는데 일반 상품처럼 가축을 다른 곳으로 옮겨 경영하라는 명령과 함께 기한으로 3개월을 통지받는다. 즉, 가게의 짐을 옮기듯 점포 구하는 기간과, 짐을 운반하는 시간, 점포에 물건을 다시 진열하는 시간, 그리고 매상을 시작하는 시간으로 석 달이면 넉넉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법을 정한 이들은 머리 좋기로 소문 난 법조인들인데 인간사회는 이들이 정한 기준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동물생명은 옮기기 전·후는 물론이고 운송기간 중 멀미로 인해 죽기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시킨 후 식욕회복, 체중회복, 성장재개 및 새로운 시설환경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존재이다. 게다가 점포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판매가 가능한 물건도 아니다. 농장의 이전은, 장소의 물색과 건축허가를 거쳐 축사를 지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규정된 시간을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생물들은 더 태어나기도 하고 죽거나 도태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무원의 눈에는 오직 사건 접수 당시에 종이에 쓰여진 숫자만 들어오기 때문에 보상금에는 그러한 점이 고려되지 않는다. 이에 불복한 농민들은 결국 자구책으로 법절차를 밟아 ‘울며겨자먹기’로 소액 인상된 보상금을 받던가 아니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소송조차도 농민이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
양심적인 사또나리(판사)를 만나면 상황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전문가에게 ‘법원지정감정’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인용하지만, 많은 경우에, 피고(보상하는 측)라는 존재들이 ‘국가, 도청, 시·군청, OO공사, OO기업’ 등이어서 감정인은 수십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집단을 대상으로 감정서를 써야 한다. 그나마 경험이 일천한 재판장들은 기라성 같은 선배 법조인으로 구성된 주체들의 변론에 휘말려 ‘말도 안 되는’ 법규를 인용하여 농민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법체계는 식량산업 종사자들의 영구폐업을 부채질해왔다. 요컨대, 생명체로 태어나 사는 것, 그리고 그 생명체를 다루면서 생겨나는 사건들 모두 유감스러운 일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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