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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벽난로에 불을 지피며

  • 등록 2018.01.10 11:01:23


윤 여 임 대표(조란목장)


뉘엿뉘엿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가면 목장에서는 저녁 착유가 시작되고 지붕 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행복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십 여 년 전에 참나무 숲에 터를 다져 집을 지으면서 쟁여둔 장작이 수월찮아 겨울 한 철 난방은 물론 한겨울의 시골정취를 돋우는 데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한 낮 햇살이 기울기 시작하면 마당의 갈잎과 숲속의 삭정이를 모아들이고 장작을 들여다 벽난로에 불 지필 준비를 한다. 맨 아래에 삭정이와 갈잎을 놓고 얼기설기 장작을 쌓은 뒤 갈잎에 불을 붙이면 바싹 마른 삭정이의 불이 활활 타오르며 장작에 옮겨 붙기 시작한다. 통나무장작에 서서히 옮겨 붙은 불은 장작만 알맞게 넣어주면 온 저녁 후끈하게 집안을 데우는데 그만이다.
장작은 단단하고 묵직한 참나무 장작이 불땀이 좋아 오래 타는 것은 물론 재도 적게 남는다. 반면 소나무 장작은 가뿐하고 물러 불땀도 약해 후루룩 타버리는데다 송진 그을음도 심하고 재도 많이 남아 쓸모가 적다. 외관이 수려하고 사철 푸른 소나무는 고급 정원수로도 손색이 없어 몸값이 녹록치 않으나 짐승에게 알곡하나 남겨줄 수 없으니 제 한 몸 푸른 것으로 족해야 하는 운명이다. 만화방창 호시절이 끝나갈 즈음 느지막이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참나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진 못하지만 여름내 그늘을 드리우고 새들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가을이 되어 상수리가 익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실컷 줍고 남은 것은 겨우내 한 데 짐승의 식량이 되고 마지막 장작까지 두루 쓸모가 있으니 만물의 질서는 고루 공정한 모양이다. 
불을 지피면서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를 생각하게 된다. 통나무장작이 없으면 지속적인 난방은 어렵지만 홀로 불붙을 수 없다는 사실, 삭정이와 갈잎, 자잘한 나무들이 힘을 합쳐 불을 붙여 놔야 비로소 활활 타오르며 난로 속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느끼시는가? 크고 우뚝하고 빛나는 것들을 떠받치는 작고 볼품은 없지만 꼭 필요한 것들로 인해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화려하게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서 농축산업의 자리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제 축산의 거대한 기둥의 기초를 이루는 생산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생산자의 지나친 자괴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17년도 경기도 축산예산안의 경우 2천350억 원으로 전년대비 670억원이 증가해서 무척 반가운 상황이었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그리 반가워만 할 상황은 아니었다. 증액부분 중 425억 원이 반려동물 테마파크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농림축산관련 많은 예산이 외연을 확장하고 품목이 다양해지는데 생산에 직접 관련 된 예산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식량분야가 전년대비 300억 원이 감소한 것 또한 그 예다. 이는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다국적 식재료의 유입 탓에 국내산 농축산물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진 데다 6차 산업화로의 변화를 추동하는 여러 가지 상황들, 농·식품 관련 모든 분야의 융·복합,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 사정을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품질과 저가격을 동시에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모순된 가치체계의 혼재 속에서 농축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효율과 생산성만이 강조되어 온 철학부재의 산물이기도 하다. 어떻게 자연의 섭리 속에서 생명을 다루며 영위해 가야 하는 축산업에서 효율과 생산성만을 추구할 것인가. 목장주의 노령화와 만만치 않은 인력난을 겪는 농장의 형편, 해를 거듭할수록 강화되는 낙농업 지속여건 중 무허가축사 적법화 관련 법적규제조치는 너무 가파르기 조차하다. 이를 법의 테두리로 끌어올리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수 십 년 동안 운영해 온 목장이 뜬금없이 생긴 교육시설과의 거리 제한이라는 지자체 조례에 걸려 졸지에 범법자가 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납유기준량 확보, 설비투자와 관련된 부채는 농가경영 여건을 악화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적정량의 원유생산량 못지않게 적정 농가 수 유지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은 매우 필요하다. 낙농가가 제살을 깎아가며 자리를 잡은 납유기준량 제도는 지금의 구도에서는 날이 갈수록 기준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거래를 하면 할수록 기준량이 줄어드는 상황이므로), 생산이 줄어들어도 크게 아쉬울 것도 없는 산업구조 속에서 낙농업 존립을 위한 기반은 점점 허약해지고 있다. 국토의 자궁이며 국민들의 마음의 고향인 농촌, 국가의 기간산업인 농축산업의 중요성과 그것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인 배려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절실해 지는 시점이다.
숲을 위해서는 소나무도 필요하고 참나무도 필요하다. 그러나 수려한 소나무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가 닿아 있는데 참나무가 왜 중요한지, 삭정이와 갈잎은 왜 장작 못지않게 중요한지 국민에게 알리는 일은 지속 가능한 축산업의 반석을 세우는 일이며 국가의 백년대계가 되어야 한다. 굴뚝 없는 기업이 고부가가치 기업으로 등장하고 생산보다는 유통,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의 효율성, 즉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점점 세계를 움직여가는 힘으로 각광받는 세태지만 엄연하게 토지, 노동, 자본의 삼박자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축산업의 특성은 변할 수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먹을거리의 기초는 이를 넘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세상의 속도와 똑같이 나아가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책의 일률성도 중요하지만 두부모판에서 두부 자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허가축사 적법화 유예기간 만료가 예정된 2018년 황금개띠해는 다른 어느 해보다 축산 현장의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간을 유예해 달라는 농가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목으로 선 참나무에 바람이 지나가며 겨울은 깊어간다. 눈보라 속에서도 강추위 속에서도 언 손으로 젖을 짜는 낙농가들의 노고가 단란한 가정의 식탁위에서 우유로 피어난다는 사실은 여전히 감동이다. 평생을 그래왔던 것처럼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는 대한민국이라는 장작에 불을 지피는 삭정이로서 불쏘시개 노릇을 기꺼이 하려고 한다. 올해 환갑을 맞이하는 58년 개띠인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글을 다듬는데 뉴스 한 꼭지가 지나간다. 드론 택배를 일상화하기 위한 도로명 주소 정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뉴스다. 아무리 기술의 승리처럼 그 장점을 부각시켜도 결국은 택배 일자리가 줄겠구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걱정도 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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