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 특별했던 양록산업, 수입개방 한파에 산업기반 흔들 우리 사슴사육의 역사는 타 축종에 비해 그리 길지 않다. 더군다나 사슴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개체가 늘어나고 본격적으로 사육두수가 많아진 것을 생각하면 국내 사슴산업은 아직 20년의 역사도 되지 않았다. 태생부터가 평범하지 않았던 우리 양록산업의 짧은 역사를 되짚어본다. -56년 남다른 태생 #귀한 몸 사슴, 아파트 한 채 가격 우리나라의 사슴사육의 역사는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과 대만으로부터 꽃사슴을 들여와 사슴을 가축으로서 사육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슴을 사육할 수 있었던 계층은 소위 사회 지도층으로 한정돼 있었다. 너무 귀했던 몸이어서 일반농가들이 사육하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후 1974년경 뉴질랜드로부터 레드디어(Red deer)와 엘크(Elk)가 들어와 양록산업의 규모가 더욱 확대됐다. 이때부터 일부 농가들 사이에서도 사슴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 때 당시 사슴 한 마리의 가격은 대도시 아파트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녹용도 당시에는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일부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 선물이나 자가 소비용으로 사용됐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이라는 것이 극히 한정돼 있어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일반인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사슴과 녹용이 모두 무척 멀리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92년 사슴 수입 개방으로 전환기 맞아 #수입개방 인한 가격 하락으로 사육수 증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사슴이 1992년 수입이 개방된 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사슴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가격이 크게 떨여졌다. 이 때 아파트 한 채 가격을 호가하던 사슴의 값은 반 값으로 떨어졌다. 사슴이 일반 농가에서도 널리 사육되기 시작했고, 농촌경제에서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농가수와 사육두수 모두 빠르게 증가했다. 녹용의 시장 거래가 점차 늘어나면서 양록이 산업으로서 구조를 차츰 갖춰가기 시작한 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양록산업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IMF라는 악재를 맞으면서 양록산업 역시 크게 흔들렸다. 가격은 다시한번 요동쳤고, 농가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001년 절편녹용 수입개방…직격탄 맞다 #수입자유화로 농가위기…폐업 줄이어 IMF에도 양록산업을 지킨 것은 농가들이었다. 하지만, 사슴에 모든 것을 걸었던 농가들에게 다시 한번 위기가 닥친다. 2001년 절편녹용 수입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양록농가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정부의 녹용 수입자유화 결정에 대한 양록농가들의 불안감을 극도로 높아졌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양록인들은 생존권 보호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산업은 극도로 불안한 시기를 겪게 된다. 양록산업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농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폐업이 속출하고, 사슴가격은 바닥을 치기 시작한다. -고품질 건강식품 생산이 양록산업의 희망 #자조금사업…소비자 홍보·농가 교육 강화 국내 양록산업의 현 상황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농가들의 이탈이 지속되고, 수입녹용의 시장 잠식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협회를 중심으로 양록인들이 산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분위기가 차츰 조성돼 가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임의 자조금 사업을 추진하면서 소비자에게 우리 녹용의 우수성을 알리고, 농가들에 대한 교육 사업도 강화되고 있다. 태생이 특별했던 양록산업. 짧은 역사 속에서도 큰 사건들을 유난히 많이 겪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양록산업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