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조용환 기자]
납유량은 조합원 평균, 유질은 4월 8만(cell/ml)으로 개선
며느리는 배인휴 지도교수 아래에서 박사학위 취득한 재원
무일푼 낙농지도자가 근면·성실함을 바탕으로 집안을 이끌고, 자립한데 이어 아들내외에게 빠르면 내년, 늦어도 2025년 대물림 할 예정이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화제의 현장은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전영로 882(주원리) 소재 옥영목장<대표 장귀영(68세)>이다.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셋째아들로 창수면 주원리에서 태어난 장귀영 대표는 창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68년 부모를 따라 창수면 신흥리 보장산(해발 554.2m)자락에서 화전을 일구었다. 당시 신흥리 주민은 70가구에 달했으나 정부가 1974년 모두 이주시키고 지금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은 통제됐다.
장귀영 대표는 생활전선에 일찍이 뛰어 들었다. 인천에서 목장을 하며 운영하던 정육점에서 점원생활을 했다. 김영란씨(64세)와 결혼하고, 1녀<장미자(46세)> 1남<장진철(44세)>을 두었다. 당시 저축한 150만원은 1979년 젖소송아지를 마리당 20만원씩 주고 다섯 마리를 구입하여 창수면 고소성리 742번지에서 기르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옥영목장의 시초다.
장귀영 대표는 “80년대 초 시골에서는 한 달에 10만원 벌기가 힘 들었다”면서 “당시 현대건설에서 중동지역에 근무할 잡부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하여 난생처음 듣는 예멘이라는 나라를 가게 됐다”고 회상했다.
예멘현장에 도착하자 이력서를 다시 쓰라는 권유를 받은 장 대표는 인천 정육점에 근무했다는 경력을 추가했더니 현대건설 인사담당자가 주방업무를 맡게 하여 300명의 식사를 매일 세끼씩 만들었다. 주방업무는 다섯명이 했는데 장 대표는 고기와 야채를 써는 것을 1980년 5월30일부터 이듬해 5월 31일까지 1년 동안 담당했다. 집으로 매달 송금한 돈은 1년에 520달러에 달한다. 당시 1달러는 720원 전후로 환화 약 375만원이다.
송아지는 성우가 되어 장귀영 대표는 1981년 서울우유협동조합에 정조합원으로 가입(조합원번호 5596)했다. 창수면 1호 조합원이라고 귀띔했다.
장귀영·김영란 부부는 고소성리 목장이 비좁아 현재 목장이 위치한 창수면 전영로 882로 파평윤씨 종중산인 종현산 북동방향 자락 1천여평을 임대했다. 파평윤씨 종중 땅은 작은 계곡으로 다락 논 11개가 있었다 한다. 계곡 초입을 메워서 50평 규모 우사와 그 곁에 살림집을 만들었다. 젖소 두수가 해마다 늘면서 이어지은 비가림 시설까지 합하면 현재 400평 정도다. 2007년에는 천광산업 4두 복열 8두 동시 착유시설을 놓았다.
그런데 2010년 경기북부지역에 구제역이 휩쓸어 옥영목장도 애지중지 키운 젖소 50마리를 정부와 지자체에서 권유하는 대로 매몰 처분했다.
“당시의 아픔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끝을 흐린 장귀영 대표는 “그렇지만 재입식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아들과 함께 축대를 쌓아 축분장을 새로 만들고, 비가림시설을 보수하던 정신과 마음은 새로웠다”고 설명했다.
산자락을 이용한 트렌치사일로는 목장 초기에 사일리지를 담았으나 구입사료로 전환하면서 천장을 덮어 창고로 활용한다. 외부와의 온도차가 3∼5℃ 낮아 시원했다.
장귀영 대표는 6남매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노부모를 모시다시피하고, 어려운 살림에서 동생들을 출가시키는 등 집안의 애경사를 도맡았다. 따라서 목장규모를 늘릴 수 없었으나 처와 자식들이 열심히 따라주어 파주 적성에 소재했던 홍익목장에서 정리하는 혈통이 확실하고 능력이 우수한 젖소 35두를 2010년 10월 재입식 했다.
장귀영·김영란 부부는 5년 전에는 창수면 옥수로 327길 218(주원리) 밭을 평당 30만원씩 4억5천만원을 투입하여 1천500평을 구입했다. 이 가운데 200평을 대지로 전환하여 3년 전에는 4억6천만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농가형 주택을 지었다. 2층에 올라가면 북동쪽 창문을 통해 포천8경의 하나인 ‘청옥병’이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고양낙농영농조합에서 생산하는 TMR사료와 서울우유 D마트 건초를 10년간 이용하는데 요즘은 연맥과 톨페스큐를 주로 급여한다.
장귀영 대표는 “청주시 주성대학에서 자동차학을 전공한 아들이 십 수 년전 목장유가공기술이 붐을 탔던 당시 지명도가 높았던 배인휴 교수(순천대)로부터 유가공교육을 받았다”면서 “며느리<최희영(46세)>도 그때 만났다”고 덧붙였다. 며느리 최희영씨는 배인휴 지도교수 아래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임실치즈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재원이다.
국립순천대학교 배인휴 명예교수는 “제자(최희영)는 1학년 때부터 유가공실험실에 들어와 학사는 물론 석·박사 학위까지 모두 취득할 정도로 치즈에 관한한 나의 정신과 기술을 이어 받았다. 독일과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유가공기술과 경험까지 풍부하게 쌓은 제자”라고 평했다.
농협 젖소개량사업소에서 지난 4월 4일 검정한 젖소두수는 모두 52두다. 이 중 착유우 30두의 305일 보정 실제유량은 1만1천340kg다. 유지율 4.2%, 체세포수 8만1천(cell/ml)으로 체세포수는 전달보다 1만6천(cell/ml) 줄었다. 물론 ‘서울우유 나100%’ 원료로 낸다. 유량이 높고, 산차가 짧아도 50만(cell/ml)이상 개체는 과감히 도태를 시킨다.
하루 평균 납유량은 서울우유협동조합 3월말 현재 1천447명의 조합원이 내는 1천260리터 전후로 낸다.
농협 젖소개량사업소가 지난해 옥영목장에서 실시한 4월 52두의 305일 보정 두당평균유량 1만1천101kg와 체세포 13만3천개(cell/ml)는 ▲5월=1만1천299kg(11만) ▲6월=1만1천728kg(13만2천) ▲7월=1만1천872kg(10만7천) ▲8월=1만1천810kg(17만6천) ▲9월=1만1천581kg(15만9천) ▲10월=1만1천534kg(20만4천) ▲11월=1만1천403kg(11만6천) ▲12월=1만1천473kg(11만8천) ▲1월=1만1천431kg(9만8천) ▲2월=1만1천393kg(9만5천) ▲3월=1만1천358kg(9만7천) ▲4월 4일=1만1천340kg(8만1천)등으로 평균 1만1천486kg, 12만5천(cell/ml)으로 우수하다.
특히 ‘옥영 76호’는 4산차인데 305일 보정 실제유량이 1만5천459kg이며, 체세포수도 10만(cell/ml)으로 낮고, 2산차 ‘옥영 91호’도 305일 보정 유량이 1만5천452kg으로 초고능력우들이다.
또 ▲옥영 95호=1만3천863kg ▲옥영 118호=1만3천632kg ▲옥영 113호=1만3천34kg 등도 1만3천kg 이상 고능력우다.
이밖에 ▲옥영 116호=1만2천992kg ▲옥영 109호=1만2천951kg ▲옥영 105호=1만2천667kg ▲옥영 74호=1만2천635kg ▲옥영 107호=1만2천166kg ▲옥영 134호=1만2천134kg ▲옥영 133호=1만2천68kg 등 1만2천kg 이상 고능력우들이 즐비하다.
장귀영 대표는 “지역젖소검정회장을 10년 정도 맡다보니 지역에서 열리는 ‘포천홀스타인엑스포’에 육성우를 몇 번 출품한바 있으나 입상은 한바 없다”면서 “그러나 품평회의 목적이 다른 목장의 젖소와 비교, 평가하는 것인 만큼 올해도 주관사에서 권하는 ‘옥영 130호’를 출품할 계획”이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초창기 바께스 착유를 할 때 20kg 들이 다섯 개(100kg)를 내던 목장이 엄청 부러웠다. 당시는 트랙터를 구입하고 싶어도 보증을 서주는 사람이나 담보 잡기가 힘들었다”는 장귀영 대표는 “요즘은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올리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이율도 신용도에 따라 높낮이가 손쉬운 보증보험제도는 아주 잘된 제도”라고 평했다.
“목장 부지가 협소하지만 지난해 축사적법화를 갖추고, 태어나는 수송아지는 전량 판매한다”고 거듭 강조한 장귀영 대표는 서울우유협동조합 18대·19대에 이어 22대·23대 등 4대에 걸쳐 대의원을 지냈다. 또 한때 38명에 달했던 창수낙우회 회장이 되고, 최근 22명으로 정예화 될 때까지 20년이 넘도록 지역낙농 발전과 서울우유조합 발전에 한몫을 톡톡히 한 낙농지도자다.
무일푼에서 커다란 성벽을 쌓아온 옥영목장은 유가공을 공부한 아들내외가 현재 전남 순천에 거주하지만 목장유가공체험학습장을 구상하고 있어 미래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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