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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동물복지 오디세이 <3> / 夜郞自大<야랑자대> : 자기의 역량을 모르고 위세를 부림

  • 등록 2018.12.12 10:35:24

[축산신문 기자]


전중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1. 프롤로그

동물복지 축산과 인증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은 영국의 RSPCA(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동물학대방지협회)이다. RSPCA는 가축의 동물복지 인증기준을 최초로 도입한 동물보호단체로 기준에 따라 생산된 축산물에 대해 Freedom Food라는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Freedom Food라는 동명(同名)의 자회사를 통해서 일반 축산물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소비자들도 그 가격을 지불하는데 불만이 없다.

이런 동물복지 인증기준을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곳이 브리스톨 대학(University of Bristol)으로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과 더불어 영국의 3대 명문대학 중 하나이다. RSPCA와 브리스톨 대학이 협력해 동물복지 인증을 위한 사육면적 및 가축관리 등 세부내용들을 수립했으며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물론 생산자 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서 양해와 동의가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정부의 동물복지 강화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001년 영국 에섹스 주(州)에서 시작된 구제역 발생이후 영국정부는 지속가능한 축산을 위해서 동물복지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하고 정책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동물복지 축산의 활성화는 관련 제도, 사육환경 그리고 시장이 고루 갖춰져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동물복지 축산의 활성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재 우리가 이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2. 동물행동학의 대가(大家)가 나를 알아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흐리고 부슬부슬 비까지 내린다. 그리 춥지는 않지만 왠지 옷깃을 세우며 움츠러들게 되는 날씨다. 2010년 영국의 브리스톨 대학(University of Bristol)을 방문했을 때도 이처럼 낙엽과 비가 어우러져 으슬으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브리스톨 대학은 항구도시 브리스톨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은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발명된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 히드로(Heathrow) 공항에서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가야하는 크지 않은 도시이며, 거기 버스정류소에서 다시 차를 타고 약 30분 정도 이동해야 브리스톨 수의과대학에 갈 수 있다. 브리스톨 수의과대학은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동물행동학자이면서 동물복지학자인 크리스틴 니콜(Christine Nicol) 교수님과 마이크 멘들(Mike Mendl) 교수님이 연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브리스톨 대학 방문을 계획한 이유는 동물복지와 관련한 자료수집 및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동물복지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부각되지 않았으며 동물복지 인증제도도 없던 시기였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동물복지 인증기준이 필요한 시기가 올 것이라 판단해 브리스톨 대학 동물복지 연구자들과의 면담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밤늦게 도착해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브리스톨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브리스톨 방향의 버스 승강장은 따로 지명표기도 되어 있지 않아 여기저기 물어서 찾아야 했으며 그나마 버스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브리스톨행 버스는 탔고, 이제 남은 것은 버스터미널로 마중 나오기로 한 크리스틴 교수님과의 조우였다. 나는 그 분이 유명한 분이라 사진을 포함한 기본적인 정보는 확인한 상태였으나, ‘내가 만약 못 찾을 경우 그 분이 날 알아볼까? 길이 어긋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브리스톨 버스터미널 도착이 가까워 오면서 혹시라도 크리스틴 교수님을 찾지 못할까 바짝 긴장한 상태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순간 저기서 사진에서 본 모습 그대로인 크리스틴 교수님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면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인사를 나누고 크리스틴 교수님의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를 어떻게 한 번에 알아 봤을까?’ 하는 의아심이 생겼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을 한 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혹시 나에 대해 미리 알아보셨나, 내가 그 정도 잘 알려진 연구자는 아닌데’ 하면서도 은근히 자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주일간의 여정은 영국의 도축장, 양돈농장 및 산란계 농장 등 많은 현장들을 둘러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교수님들을 포함한 동물복지 연구팀들과의 미팅을 통해서 동물복지 인증과 관련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RSPCA의 동물복지 인증농장들은 지역별로 담당자들이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 농장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업무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브리스톨 버스터미널에서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훨씬 여유로워진 나는 버스가 올 때까지 브리스톨 버스터미널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에 ‘여기 많은 사람들 중에 동양인은 나 혼자네?’ 라는 생각이 불연 듯 들었다. 영국 한 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일주일 전의 그 상황이 떠올랐다. 순간 나는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아뿔싸, 내가 유명한 게 아니라 버스 안에 앉아 있는 동양인은 나 혼자였고, 그래서 크리스틴 교수님이 나를 쉽게 알아 보셨구나’ 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착각 속에서 보낸 브리스톨에서의 일주일은 행복했지만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혼자서 창피한 생각에 헛기침을 한다.

(2010년 브리스톨 대학 방문 직후 국내에서 구제역이 발생되었으며, 이로 인해 2012년부터 동물복지 인증제도가 시행되었다. 브리스톨 대학 방문 시 수집한 자료들과 전문가들의 조언들이 우리나라의 동물복지 인증제도 마련에 큰 도움이 되었다.)  


3. 에필로그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경우 동물복지 축산물의 구매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소비라는 의식이 사회전반에 퍼져 있으며, 이런 소비패턴이 결국 동물복지 축산물의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소비시장이 형성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축 사육환경의 개선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여기에 국가제도가 뒷받침 되어 생산자들과 함께 사육환경을 개선해 나아가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가축 사육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고 동물복지의 향상을 요구하지만, 가축 사육환경의 개선과 동물복지 축산물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야랑자대(夜郞自大)란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자신의 역량을 모르고 위세를 부린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착각을 경험하게 된다. 그게 개인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면 단순하게 창피함을 겪거나 혹은 금전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전반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면 개인적인 착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축산의 동물복지 향상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육환경 개선을 위한 준비가 잘 되어있는지, 사회적인 기반 조성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소비시장에서는 동물복지 축산물에 대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이상적인 얘기만 하면서 생산자들의 부도덕함을 나무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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