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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서>축협의 길, 축산경제의 길

  • 등록 2018.06.11 10:55:23


이 상 호 본지 발행인


한우농가 급감추세 이대로 방치하면
축협·축산경제 터전 잃는 결과 초래
영세농가, 장인정신 무장 프로 육성
사활 걸어야만 조직미래 담보 가능





본격적인 여름날씨를 선보였던 지난 일요일. 모처럼 집에서 쉬는 참인데 30년 지기 K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척혼사 참석차 서울에 왔으니 오후에 얼굴이나 보자고 해서 용산에 있는 아귀찜 식당에서 만났다.
예식장 뷔페음식이 영 개운치가 않다며 매운 아귀찜을 안주로 소주를 털어 넣던 K씨가 평소와 달리 한숨까지 내쉬며 하소연을 했다. 얘긴즉슨 축협(그는 규모가 큰 축협의 상임이사로 일한다) 덕분에 두 남매 대학공부에 결혼까지 시키고 나름 노후준비까지 했지만 막상 은퇴를 하려니 후배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앞선다는 것이다. 축산이나 축협을 보면 가뭄에 수량이 줄어드는 저수지가 연상되는데 중앙회나 일선축협이 이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우리는 그런 대화로 두 시간을 넘게 보낸 후 헤어졌다.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KTX 플랫폼으로 사라지는 K씨의 뒷모습에 30여 년 전 소 값 파동 때 밤새 통음하며 눈물까지 보이던 그의 얼굴이 겹쳐졌다. 이날 그의 말은 지난날에 대한 축협인으로서의 회한(悔恨)과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K씨의 말처럼 축협과 축산경제는 지금 누가 봐도 위기를 맞고 있으며 그 위기의 본질은 축산환경의 변화에 있다. 한국축산은 생산농가가 무려 1백만을 헤아릴 때가 있었다. 이를 토대로 축협은 축산업과 함께 숨 가쁜 성장가도를 달려 왔으나 개방의 물결 속에서 축산농가는 불과 30여년 만에 10만을 밑도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이뤄졌다. K씨는 천지개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협동조합의 시스템은 그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한 때 수만호에 달하던 낙농과 양돈, 양계는 이제 3~5천호 수준으로 줄어 축협과 축산경제의 컨트롤범위를 사실상 벗어났다. 이렇게 보면 축협과 축산경제를 지탱하는 건 한우산업 뿐인데 이 역시 최근 10년간 경영체수가 반 토막이 날 정도로 대형화추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우산업의 급속한 규모화는 축협과 축산경제의 지반(地盤)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축협과 축산경제의 장래를 담보할 ‘기회의 강’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선축협과 축산경제가 규모화 추세에 밀려 갈 곳을 잃은 영세한 한우농가의 의지처나 허브(Heb ·중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규모화추세를 넋 놓고 지켜만 볼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본 화우산업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화우산업을 지탱하는 근간은 100두 미만의 영세농가다. 이들은 규모는 영세하지만 하나같이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정예(精銳) 중의 정예다. 아침에 눈뜨면 우사로 달려가 등을 긁고 마사지를 하며 소와 스킨십을 하는 그야말로 장인(匠人)들이다. 세계 최고의 쇠고기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이들이 우리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화우산업의 근간이며 중추(中樞)다.
축협과 축산경제가 영세농가를 그런 프로로 육성한다면 한우산업에도 기회가 된다. 교육과 실질적인 서비스, 사업을 통해 영세농가들이 갖지 못한 경쟁력을 보완해주는 것이다. 이걸 해낸다면 축협과 축산경제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엔 터전이 없어지는 결과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른 새벽 기회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길을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축협과 축산경제에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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