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변화에 잘 적응한 돌고래는 살아남았지만 적응하지 못한 공룡은 결국 사라졌다. 이를 우리 유가공산업에 비춰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대는 변화하는데 언제까지 음용유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 치즈를 중심으로 한 유제품에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면서 낙농산업을 발전을 위한 대책인 것이다.
음용유 중심서 기능성 요구르트·치즈 등으로 소비 다변화
노령층·1인 가구 겨냥한 맞춤형 제품 개발로 소비층 확장
정부 지원·산업계 혁신적 노력 통해 유제품 자급률 높여야
국립순천대 배인휴 명예교수
에코드림치즈연구소장
▲2024년, 유가공산업이 남긴 발자취
다사다난했던 2024년, 유가공 산업계에는 전환과 변화를 예고하는 몇 가지 신호들이 나타났다.
첫째, 음용유 시장과 헤어질 결심이다. 지난 2024년 11월, 남양유업은 4개 집유조합 대상 원유계약 물량의 30% 감축을 통보(조합원유 공급계약량 감축 협조 요청의 건)했다. 이는 업계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둘째, 아예 국산 원유가공을 벗어나는 변신을 통해 유제품 수입, 수입 원자재 보세가공 수출업체로 가는 길을 모색한다. 이는 유업계가 기업의 본질인 이윤추구를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전환하려는 절박한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2026년 이후 전개되는 무관세 수입 유제품 범람에 대한 대응책이나 대체 유제품 출현 노력에 대해 무반응,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에 대한 도전이나 응전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서기가 더 쉽고 빠르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넷째, 그동안 버팀목 같았던 유제품을 미래 식량자원으로 보호하려는 강고한 안보 의식, 애국애족의 이념이 매우 취약해졌다. 경영 전반에 드리운 위기의식이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유가공 산업계의 이상 신호는 올해 원유가를 동결했던 원유생산자단체와 지난 2024년 7월 30일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대책’을 야심 차게 밝힌 정부의 자세와는 극명하게 대조적이었다.
▲‘마시는 유제품'에서 ‘먹는 유제품'으로
사실, 우리나라 유가공산업은 태생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갖고 출발했다. 그런데도 산업화 시기에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일정 규모를 유지하며 성장해왔다. 그 소비에 있어서 태생적 한계를 낳는 대표적인 문제는 유당불내증이다. 한국인 70% 이상이 이 증상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유의 약 80%를 마시는 우유(음용유)로 소비하도록 가공해 왔다. 음용유 중심의 유가공산업구조도 이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현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오늘날까지 음용유 중심의 가공 체계가 고착됐다. 전략적으로 서울우유조합, 한곳에서만 음용유 생산을 전문으로 하게 하고 추후 시작되는 유업체들은 역할을 분담, 제품의 다양화를 꾀하고 음용유 가공은 지양시켰어야만 했다. 하지만 연이어 설립된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동원F&B 등 굴지의 대형 유업체들까지 서울우유의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며 음용유를 주력상품으로 삼았다. 이미 이들의 주요 생산설비가 음용유 위주로 설정되어, 인제 와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인의 유당불내증이라는 생리적 음용유 소비한계, 소비자 식생활 서구화와 유제품 소비 다양화, 노령화, 저출산과 아동인구 감소는 음용유 소비급감이라는 위험 신호를 수십 년간 깜빡였음에도 우리 유가공산업 열차는 줄기차게 앞만 보고 달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2025년 우리 유가공산업 앞에 놓인 거대한 파고를 이러한 태생적 한계를 끌어안은 채로 넘어야 하는 이중고가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다. 2025년의 유업계가 맞닥뜨린 세 가지 주요 파고는 첫째, 음용유 소비 부진, 둘째, 2026년부터 시작되는 무관세 수입 유제품의 쓰나미 셋째, 소비자 기호 변화에 따른 국산 유제품 부재가 그것이다.
▲외산 유제품 무관세 수입 ‘눈앞’
첫째, ‘요구르트를 주목하자.’ 요구르트는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와 무관하게 꾸준히 소비되는 효자상품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에서 요구르트가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국제 유가공산업지(Dairy Industry International)는 지난 2024년 5월 30일 자 보도에서 시장조사기관 Technavio Research의 결과를 인용하여 세계 요구르트 시장규모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66억 달러로 성장하며 예측 기간에 6.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Technavio Research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뇨병, 비만, 알레르기와 같은 건강 문제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은 항산화 성분,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아사이베리, 구기자, 노니, 석류, 포도와 같은 슈퍼 과일이 함유된 그릭요구르트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잡지가 중국의 메이저 유업체인 율리(Yili group) 연구소를 탐방하여 미래 중국 요구르트 시장 경향을 인터뷰한 기사(지난 2024년 2월 19일 자)는 1. 더 건강하고 영양가 풍부한 요구르트 제조 흐름에 따라 종래의 음료 수준을 넘어 단백질과 칼슘 보충제를 강화하고, 식이섬유, 비타민까지 첨가된 제품 요구 2. 요구르트는 무엇보다 맛있어야 한다고 요구 3. 면역력 증강, 소화용이, 수면 및 신체 능력과 관련된 기능성 요구르트 등판 요구 4. 2024년부터 고단백 저탄수화물(high Protein, Low Sugar), 그리고 높은 원유 함유를 특징으로 하는 많은 요구르트 제품들의 신규등장 5. 요구르트 미래 경향과 변신은 특정 식물기반(아사이베리, 구기자, 노니, 석류, 포도 등) 기능성 강화 요구르트로 바뀌어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런 점에서 미래의 우리나라 유제품 시장 판도를 바꿀 유력 주자가 바로 요구르트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언제까지 치즈 시장을 수입품 치즈에 내어 줄 건가’ 미국 농무부(USDA) 해외농업청 서울사무소는 지난 2024년 10월 24일, 2025년도 한국 유가공산업 전반에 걸친 분석보고서 ‘한국 치즈 소비 전망 Dairy and Products Annual Report Number:KS2024-2025’에서 “한국 치즈 시장수요 증가에 따라 2025년 치즈 수입량이 15만 톤에 이를 것이며, 치즈 소비는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에서의 치즈 소비 증대는 미래에도 여전할 것이며 미국 치즈가 진출해서 시장규모를 확대하기 좋은 시장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1925년에 설립되어 미국 최대 유업체로 군림하던 Dean Foods가 2019년에 몰락했을 때 미네소타 대학교 응용경제학과 마린 보지크 교수는 “그것은 일종의 경보 신호입니다. 미국의 낙농업은 중요한 변곡점을 맞고 있습니다”라고 진단했다. Dean Foods가 몰락한 것은 식물기반 음료 출현이나 아침 식사에 시리얼 선호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진화된 소비자 입맛을 맞추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유제품인 버터와 치즈의 1인당 소비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5년부터라도 국산 치즈 진흥을 위한 제대로 된 용도별차등제의 개선이 요청된다. 적어도 일본의 ‘가공원료유보급금제도’수준으로라도 지원 제도를 진보시켜야 한다. 더불어 희망 유업체들이 대량 생산 설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국산 치즈 생산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부터 수입품 치즈 구축(驅逐) 작전에 돌입해 보는 것이 어떤가.
셋째, ‘우유·유제품 소비 관련 고정관념을 깨자.’ 한국에서 우유. 유제품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하나 있다. ‘우유·유제품은 영유아, 청소년 섭취용 식품’이라는 것이다. 구랍 12일 통계청이 밝힌 ‘시도별 2022~2052 장래가구추계’에서 65세 이상 노인가구 비중은 2022년 24.1%에서 30년 뒤인 2052년엔 50.6%로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1인 가구 역시 꾸준히 증가해 1천만 가구에 육박할 전망으로 특히, 고령 1인 가구 복지 지원을 위한 정책지원 준비가 긴박해졌다. 2022년 정부가 발표한 고독사 현황 조사에서 2017년부터 5년간 고독사는 연평균 8.8%씩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우유·유제품 보급 강화를 통해 노령층의 복지 수준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령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우유·유제품을 공급하는 것은 영양 지원뿐만 아니라 고독사 예방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긴급한 과제다.
국가와 사회적 지원 차원에서 학교급식 우유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노령층 우유·유제품 보급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유가공산업도 이를 외면하지 말고 동참함으로써 우유·유제품 소비 저변 확대에 나서야 한다. 우유·유제품은 노령층 섭취용 식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5년 기점으로 한 산업 혁신 로드맵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한 돌고래는 살아남았지만, 적응하지 못한 공룡은 결국 사라졌다. 이 시대는 영유아 감소와 대체 음료 출현에 따른 음용유 소비 감소, 소비자 입맛의 변화라는 유가공산업 미래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때이다.
유가공산업의 주체들은 이 시대적 변화에 맞서 생존을 위한 절박한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그들이 다음과 같은 큰 틀을 짜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2025년을 원년 삼는 로드맵이 엿보인다.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론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왜냐하면 늦었다는 것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유가공산업은 이제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보충과 부족을 메꾸면 될 것이라는 땜질식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절박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지연된 혁신이다. 우리 유가공산업은 리모델링 차원의 위기 극복 전략이 필요하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판을 다시 짜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유가공산업이 2025년에 시급하게 판을 새로 짜는 리모델링의 핵심을 이렇게 잡자.
첫째, 우유 소비역사 바꾸기이다. 2025년을 오랫동안 굳어 있었던 ‘마시는 유제품’ 위주의 역사에서 ‘먹는 유제품’ 중심의 새로운 역사로 소비 경향의 방향을 전환하는 원년이 되게 하는 것이 긴박하다. 원유가 주로 음용유로 가공되는 체제(87%, 흰 우유만 67%)로부터 연착륙이든 신속한 탈피든 바꾸어 나가는 것이 정답이다.
둘째, 쌀은 더 이상 밥이 아니다. 10년 전, 2013년의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7.2kg이고, 우유는 71.6kg, 육류는 42.7kg으로 총 114.3kg이 소비되었고, 이 수치는 쌀 소비량보다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쌀 56.4kg 대비 우유 81.9kg. 육류 62.3kg, 모두 144.2kg이 소비되어 결국 10년 전부터 ‘쌀=밥’이라는 등식은 깨져 있었다. 이제 ‘주식은 곧 쌀밥’ 구조가 변경된 시점에 유가공산업은 분명한 자세를 곧추세우자. 획기적으로 국산 버터와 치즈 생산 소비를 늘려나갈 긴급전략을 마련해야겠다. 왜냐하면 우리 시장이 이미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해답은 바로 가까이 있다. 우리 원유가격이 세계 최고로 높다는 인식에 묶여서 수입품 치즈가 우리 시장을 점령하듯 접수하도록 거의 앉아서 방관해 왔다. 이런 자세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대응할 수 있는 자산과 방책을 올곧게 챙겨서 공세적 전략으로 전환하여 나서자. 전쟁에서는 ‘공격이 가장 확실한 방어’라는 말은 진리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치즈 산업화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가가 그동안 철강, 전자, 자동차, 조선 산업을 세계적인 선두그룹으로 육성하며 국가 경제 성장의 주력 분야로 발전시킨 선례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이와 같은 의지를 치즈 산업에 적용해 준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를테면 2023년도 수입 치즈는 13만8천956톤이었으며, 이를 원유로 환산하면 130만톤에 달한다. 그 절반인 75만톤 중 음용유 가공량을 고려하여 그 절반인 35만톤을 국산 치즈로 대체해 이러한 원유량을 치즈 제조에 소화해 준다면 우리나라 낙농, 유가공산업의 해묵은 온갖 문제나 장애가 의외로 수월하게 해소될 수 있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2030년 국내 원유생산량을 200만 톤 수준으로 유지하고, 현행 44%인 유제품 자급률을 48%까지 끌어올릴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대책'과도 어김없이 맞닿아 있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