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주)다비육종 윤희진 회장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양돈, 나아가 축산업계의 거두다. “현장을 떠난 사람에게 들을 이야기가 뭐 있겠느냐”며 고사하는 윤희진 회장에게 부탁을 거듭한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양돈 환경 악화일로에 ‘숨막힐 지경’
업계, 관세 문제 생각할 겨를 없었을 것
생산기반 확대 노력·홍보 변화 고무적
시설 표준화 미흡·규모 확대 치중 아쉬움
생산-유통 ‘한배’…상생기반 구축돼야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가끔 농장도 들여다 보고, 업계 분들도 만나고 나름 바쁘다.(웃음) 무엇보다 일가재단 통일장학회에 관심이 많다. 여기서 지원하는 탈북자학교 학생들의 경우 졸업생을 포함해 50명 정도 되는데 기초가 부실, 적응이 어렵다 보니 학업·취업·창업 등 이른바 ‘3업’을 챙길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축산분야에서 많이 도와준다. 이제 나이를 먹으니 건강도 챙겨야 한다.”
-너무 일찍 경영일선에서 떠나셨다는 시각도 있다.
“회사 뿐 만이 아니다, 도드람양돈농협과 돼지콜레라비상대책본부(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를 출범시킨 주인공이지만 정상궤도에 오른 뒤 ‘완장’을 내려놨다. 어느 자리든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이유가 있다기 보단 개성인 것 같다며 결론을 내리는 윤희진 회장에게 2022년 새해는 유난히 의미가 깊다. 양돈과 인연을 맺은 지 꼭 50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1973년 삼성그룹 용인자연농원의 양돈사업 책임자가 되며, 일본에서 돼지 614두를 처음 들여왔다. 한국 기업양돈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자부심도 크다”며 잠시 생각에 잠긴 윤 회장.
“서울대 농대 동기생 가운데 농장 취업은 나와 양계 분야의 다른 한명을 포함해 두명 뿐 이었다”는 그는 “지금와서는 잘했다는 생각이다. 다른 쪽에서도 잘됐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EU산과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관세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양돈업계는 무감각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국내 산업 환경 자체가 워낙 급박하다 보니 돼지고기 수입까지 관심이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각종 환경·건축규제에, 인력 및 후계자 확보, 동물복지, 탄소저감 압박까지 당장 생존자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나 외부에 대한 평가를 자제해 온 윤희진 회장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숨이 막힐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양돈업계도 준비를 많이 해왔을 텐데.
“우루과이라운드로 시작해 WTO와 FTA를 거치며 위기감이 상당했고, 실제로 지난 20년(2000~2020년)간 돼지고기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다만 국내 양돈산업도 많은 성장을 했다. 양돈업계가 부단히 노력했고, 정부도 투자를 많이했다.”
윤희진 회장은 일일이 자료를 찾아 수기해 둔 메모장에서 다양한 통계를 확인해 가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지난 20년간 수입이 230% 늘었지만 820만두 수준이었던 국내 돼지사육두수 역시 1천100만두로 증가한 자료도 여기에 포함됐다.
-높이 평가하는 양돈업계의 노력이 있으시다면.
“사실 TV에서 한돈 광고를 수시로 보게 될 시대가 올 지 누가 알았겠나. 최근엔 프로스포츠 경기에서도 한돈 브랜드를 자주 접하고 있다.”
윤희진 회장은 국내 농축산업계 최초로 의무자조금을 도입한 것이나, 농장 HACCP 인증이 처음 시작된 사례만으로도 변화를 향한 양돈산업의 의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생산과 홍보 부문에선 양돈업계가 선방했다는 시각인 것이다. 물론 국내 양돈업계에 ‘운’도 따랐다.
“2003년 미국 광우병 파동과 일본 원전사태 등으로 대체 소비가 일어났다”는 윤희진 회장은 “우리 국민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이 16.5kg에서 27kg으로 62%나 증가했다. OECD 보다 더 먹게 되다 보니 자급률(86.4%→75.2%)이 떨어지긴 했지만 국내 산업에 미친 타격은 당초 우려 보단 적었던 같다”고 평가했다.
돼지고기 수출 노력과 함께 협동조합 중심의 수평계열화 확대 속에 생산자단체와 기업, 협동조합 사이에 갈등이 해소되고 협력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추세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생산성은 아직도 격차가 크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 다산성 모돈의 도입과 함께 국내에서도 PSY30두가 넘는 농장이 속속 출현하고 있지만 생산성 상하위 농장들의 수준이 큰 차이를 보이며 국내 전체적으론 나아지지 않았다.”
윤희진 회장은 그 요인을 꼼꼼히 지목했다.
우선 좀처럼 진척이 없는 국내 양돈산업의 구조개선을 꼽았다. 축산단지와 시설현대화사업 등에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됐지만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시설표준화 마저 실현되지 못한 것에 깊은 아쉬움을 표출했다. 분리사육의 장점에도 불구, 모돈장만 늘다 보니 비육장 부족사태와 함께 시설이 열악한 농장까지 쟁탈전이 벌어지는 악순환의 현실을 설명할 땐 시종 차분하던 목소리 ‘톤’ 이 조금씩 높아지기도 했다.
“종돈 수입과정에서 해외질병이 유입, 국내 양돈현장의 MSY가 20년전 수준을 맴돌고 있는 마당에 종돈업계가 분열돼 있는 것도 문제”라는 윤 회장은 “한돈 차별화와 함께 제대로 된 국내 양돈산업의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대외적 산업 환경도 악화일로인데.
“과거엔 정부도 축산 진흥에 관심이 많았고 정책적·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며 농업 가운데 생산액 1~2위를 다툴 정도로 (양돈산업이)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몰려고만 하고 규제를 많이 한다. 그만큼 귀찮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거다.”
윤희진 회장은 지난 2010년 안동발 구제역 발생을 그 전환점으로 분석했다. 당시 무려 330만두에 달하는 돼지 살처분 과정에서 국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살처분 뉴스를 접할 수 밖에 없었고 통행제한이라는 불편함과 함께 침출수 파동까지 이어지며 국내 산업 이미지가 곤두박질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농장경영 여건이나 시장상황도 다를바 없다.
“외국인근로자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산 돼지고기에 대한 충성도가 크게 떨어진 것도 불안하기만 하다. 온라인시장이 확대되며 소비자들의 구매기준이 가격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희진 회장은 이전까지 가정과 군대, 학교가 지탱해 온 국내산 시장이 점차 무너져 가고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 관세도 없고, 돼지고기의 품질과 맛도 뚜렷히 내세울게 없는 국내 양돈업계의 냉정한 현실자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문제점도 집어봐야 할 듯하다.
“국내 양돈산업 시스템의 경쟁력을 따져봐야 한다. 협동조합이 양돈산업을 주도하는 덴마크가 좋은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윤희진 회장은 수백개에 달하던 협동조합이 10년 단위로 절반씩 줄며 지금은 사실상 1개로 통합된 덴마크의 사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NGO로서의 역할과 함께 마케팅보드(자조금), 품질관리, 유통, 수출기능까지 모두 갖춘 ‘통합 양돈조합’ 의 출현을 내심 기대하는 모습이다. 강력한 생산자 조직을 통해 친환경적 생산과 균일한 품질관리를 강조하며 10배 이상의 제품가격에도 시장에서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우선 소비자 니즈를 충족하는 품질을 위해선 청정화와 위생이 전제돼야 한다. 이유후 폐사율이 평균 15%에 이르는 국내 현실에 품질개선이 쉽겠나. 돼지가 약해지고 질병도 많아졌다.”
위탁 계약시 폐사율 기준이 불과 1% 수준이었음에도 대부분 비육농가들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뒷걸음질도 한참을 나갔다는 게 윤희진 회장의 지적이다.
“생산과 유통이 ‘한배를 탄 상생 파트너’라는 인식의 전환도 절실하다. 특히 양돈농가 입장에선 내 돼지가 어디서, 어떻게 팔리는 정도는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속가능한 양돈을 위한 당부가 있으시다면.
“식량산업인 축산업을 ‘비교우위론’만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정부는 물론 양돈산업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윤희진 회장은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국방’ 수준의 돼지 질병유입 차단 및 종돈수입 최소화 대책과 함께 장기적인 시각에서 양돈의 광역적인 권역화 방안을 검토과제로 꼽았다.
자유로운 진출입 기반구축을 통해 양돈업 구조개선을 도모하는 한편 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청사진 제시도 윤희진 회장이 지목한 현안 과제다. 손세희 신임 회장 취임과 함께 ‘정책연구소’를 추진하고 있는 대한한돈협회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윤희진 회장은 “축산과 전공자가 돼지를 보고 도망가는 웃지못할 현실은 사라져야 한다”며 대학교육의 체질개선과 함께 아버지 농장이 아닌 다른 사업체 경험을 2세 양돈인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남의 밥’을 먹어봐야 시야가 넓어지고, 인내의 경영도 가능해 진다는 의미다.
-ESG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대표적 기부천사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예나 지금이나 직원들을 아낀다.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없어도 직원들의 개발과 복지에 최선을 다해왔다. ‘큰 회사’ 보다는 ‘좋은 회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크다.”
GWP 선정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오른 것은 물론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다비육종은 그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남을 돕는 건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ESG경영은 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윤희진 회장. “지난 50년간 돼지 덕분에 만족한 삶을 살았다”는 그는 “생각해 보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분들이 국내 양돈산업을 발전시켜 왔던 것 같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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