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다사다난했던 신축년 한 해가 이제 저물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돌이켜 보건대, 2021년은 전염병이 세상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한 해였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을 계기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인류 지속가능성의 실제적 위협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우리의 삶은 접촉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도도하게 패러다임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뉴노멀(New Normal)의 세상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2021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종말로 다가서는 데 노력한 수많은 수의사들의 사회적 역할 또한 크게 부각됐다. 대표적으로 세계 점유율 1위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P 제약회사, 세계 점유율 1위 현장 진단키트를 개발한 국내 S 회사, 코로나19 국산 백신 개발의 선두 그룹에 있는 E 회사도, 그 수장이 수의사다.
그동안 동물용 진단키트 및 동물용 백신 분야의 풍부한 현장 경험이 그러한 역할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동물 전염병 또한 축산농가의 생산성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왔다. 축산 분야에서 국가재난형 가축전염병은 그 위협이 변화무쌍하며, 현안 이슈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양돈 산업 분야의 경우 2000년대 이전에는 돼지열병(CSF) 근절이 최대의 화두였다. 정부의 강력한 백신 의무접종 정책을 통한 집단면역으로, 토착 질병이던 돼지열병은 2017년 이후 국내 양돈장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체한 전염병은 구제역(FMD)였다. 2000년 3월 경기 파주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2011년 전국 확산을 계기로 백신 의무접종 정책으로 전환했고, 2019년 1월 이후 사실상 공식 발생이 없는 상황이다(NSP 항체 양성건 제외).
이제는 그 자리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주인공으로 자리잡았다. 2019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국내 야생 멧돼지 오염으로 양돈장에서 간헐적이지만 발생해 양돈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양계 산업 분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뉴캣슬병(NS) 유행 차단이 최대의 화두였다. 토착 질병이던 뉴캣슬병은 2001년부터 백신 의무접종 정책을 실시하면서 2010년 7월 이후 국내 양계 농장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체한 전염병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다. 2003년 12월 충북 음성 한 종계 농장에서 처음 발생이 보고된 이후, 최소한 9회 이상 발생했다.
2010년 이전까지 몇 년을 주기로 국내 유입 발생하더니, 그 이후에는 거의 매년 동절기를 중심으로 가금농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번 동절기도 예외없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축산 분야의 최대 전염병 화두는 여전히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다.
이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 두 전염병은 과거의 최대 현안이었던 축산 전염병(양돈의 돼지열병과 구제역, 양계의 뉴캣슬병)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그 위험 요인의 주체가 축산업 분야 내에서 존재했다면, 지금은 위험의 주체가 축산업 내부가 아닌 축산업을 둘러싸고 외부 환경적 요소, 즉 야생 동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여러 가지 생물학적 및 물리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와 강원도 산간 지역을 중심으로 야생 멧돼지 집단에서 상재하고 있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야생멧돼지의 바이러스 오염 반경은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도 우리나라를 넘나드는 유라시아 철새에서의 바이러스 오염도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철새 도래 시기 자체가 양계 농장의 공포이다.
중요하게도 이전의 현안 전염병들과 달리, 이들 전염병의 유행을 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집단면역(백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처분 방역정책과 예찰감시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 원-헬스 차원의 방역 시스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때이고, 수의사 전문가 집단이 사회적 책임성을 가지고 현안 문제 해결에서 주도적으로 나설 환경이 만들어질 시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