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강 석 교수(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조류질병학)
코로나19 팬데믹에 설상가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발생까지 덮쳐 가금 농가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사실, 지난해 아프리카-유럽/중동-시베리아로 이동하는 철새 사이에서 조류인플루엔자(H5N8) 이동 양상이 심상찮았다. 2019/2020 동절기 동안 이들 철새 이동 중간지점인 동유럽을 중심으로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유럽 가금 산업이 쑥대밭이 되었다.
그 철새가 가진 바이러스는 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으로 이동할까 긴장했다.
지난해 여름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상황은 시월이 되면서 불행하게도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10월 21일 천안 봉강천 철새 분변에서 처음 바이러스가 검출되었을 때 진짜 올 것이 왔다는 우려가 나왔다. 야생조류 검출 건이 무려 207건(2021년 2월 24일 기준)으로 철새 오염이 가장 심했던 2016/2017년 동절기 때보다 318% 증가했으며, 검출지역도 전국에서 폭넓게 나타났다.
그냥 철새가 지나치는 곳마다 바이러스를 쏟아 부었다 싶을 정도로 가히 공포 수준이었다.
방역 당국의 농장 유입 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새의 심각한 오염은 결국 지난해 11월 26일 정읍 오리 농장의 HPAI 발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방역 당국은 ‘발생농장 3km 반경 살처분’이라는 고강도 방역 조치로 대응했다.
2016/2017년(야생조류 65건, 농장 383개 농장)과 비교했을 때 야생조류 검출 건수는 약 3.2배 늘었지만, 농장 발생 건수(103건)는 약 3.7배 줄었다. 그러나 고강도 방역 조치로 전국 8개 시·도 약 2천900만 수 가금류 살처분(3월 5일 기준) 특히 산란계 피해(1천580여만 수)가 집중되면서 계란 가격 폭등과 계란 수입(약 6천400만 개)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반대로, 고강도 방역 조치가 없었다면 방역 실패(농장 대량 발생)로 정반대의 대가를 치뤘을 가능성이 있었다. 철새 오염이 극심한 상황에서 방역 당국이 현행 방식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피해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앞으로도 철새 오염은 자주 반복될 듯하다.
과거와 달리, 2010년 이후 동절기 조류인플루엔자 발생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만큼, 동절기 조류인플루엔자 유행 때마다 백신 접종 이슈가 등장하고 있다. 거기에 찬반 논쟁도 뜨겁다.
당장의 농장피해 감소나 편의성을 생각하면, 백신 도입정책이 유리할 것 같지만 다면적 측면에서 신중해야 한다. 필자의 판단은 백신 도입은 오리와 육계에는 백신 효과가 작용하지 않고 산란계(종계 포함)에 작용하는 절름발이 예방 효과이고, 무증상 감염개체(트로이 목마)의 존재로 질병 상재화로 갈 위험이 크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아 부정적이다.
그리고 질병 상재로 늘 인체감염의 노출 위험을 가지며, 최악의 경우 단 한 건이라도 그러한 사례가 발생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은 치명타가 될 것이기에,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면 살처분 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비상재 지역에서 백신도입을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월이 되면서 조류인플루엔자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는 경향이다. 이번 동절기 발생에서도 어김없이 철새 오염으로 인한 농가 발생을 원천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이제는 가금류 살처분 대상을 최소화하면서 농장 간 전염을 차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더 정교한 방역 정책 개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상적인 방향이지만 쉽지 않은 접근 전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유입 철새의 생태 반경과 바이러스 오염도를 감시·예측하고, KAHIS 빅 데이터와 실시간 차량관제 시스템 등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평상시 농장 간 역학적 동선 자료를 지속적으로 세밀하게 업데이트하여, 위험지역 농장 간 확산예측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인적자원과 장시간이 소요될 것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긴급 상황시 살처분 범위와 대상을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정책적 결정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