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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111. 농협 사료사업의 역사

사료산업 발전, 한국축산 발전 선도
1963년 부산에 농협 최초 배합사료 공장 건립

  • 등록 2019.07.30 18:51:29


전 농협대학교 총장


▶ 과거 복합영농 형태의 부업축산이 전부였던 시절에 가축의 먹이를 보면, 소의 경우 볏짚, 풀, 건초 등을 잘게 썬 여물이나 콩깍지, 고구마줄기 등 농산부산물에 쌀겨, 보릿겨 등 강피류(糠皮類)를 넣고 쇠죽을 쑤어서 먹였고 농사철에 가끔씩 원기를 돋우기 위해서 콩을 삶아 먹이는 게 전부였다. 조사료로는 여름에는 들에서 풀을 뜯기거나 쇠꼴(생풀)을 베어다 먹였고 겨울에는 볏짚을 먹이며 깔짚으로 깔아줘서 두엄을 생산했다. 소는 농사용이 주목적이었다. 

▶ 돼지의 경우는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殘飯]을 쌀겨나 보릿겨에 섞고 뜨물을 부어서 액상(液狀)으로 먹였다. 돼지는 한 배에 여러 마리를 분만하는 다산성 가축으로 새끼 돼지를 장에 내다 팔거나 비육해서 팔면 부수입이 생겼다. 애경사 등 큰 일이 있을 때는 돼지를 잡았다. 두엄을 밟혀내는 데는 돼지가 으뜸이었다. 

▶ 닭은 밖에 놓아 먹여 땅속을 헤집어서 벌레나 곤충을 잡아먹거나 떨어진 이삭을 쪼아 먹도록 했고, 저녁이 되면 닭장 안으로 몰아넣을 때 싸라기나 잡곡 등을 뿌려주면서 ‘구구구구’ 하고 불러들였다. 닭장 안에 매달아 놓은 산란둥지에서 알을 꺼내, 모아서 장에 내다 팔거나 선물도 하고 반찬으로 계란찜을 해먹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암탉을 잡아서 대접했다.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이렇듯 부업양축 시절에는 배합사료가 없었다.

▶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배합사료 시장규모는 2018년도 생산량 약 2천만 톤, 매출액 약 9조2천억 원에 이를 만큼 성장했다. 축산관련 산업 중에서는 가장 비중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축산물 생산비의 40~60%를 사료비가 차지하고 사료의 품질이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료산업의 발전이 한국 축산의 발전을 선도했다는 사실이다. 

  사료산업은 규모가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해서 가격, 품질 등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선진 기술을 빠르게 도입했다. 사료생산 설비가 현대화 됐고 분쇄기술, 배합기술, 가공기술 등이 발전되었다. 사료산업 발전과 함께 농가 사양기술도 동반해서 발전했는데 농장에 사료를 판매하기 위해 농가에 대한 사양관리 지도서비스가 병행되었기 때문이다. 축종 중에서 가장 먼저 발전된 분야는 양계(산란계)사료로 산란계산업이 가장 먼저 규모화, 산업화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뒤를 이어 양돈, 낙농, 한우사료 등으로 전문화가 진행되었다. 

▶ 우리나라 최초의 배합사료공장은 1946년에 용산구 서빙고동에 중앙사료공사(민간사료)가 설립되어 경찰기마대의 말과 우마차를 끄는 말이나 소의 사료를 공급했다. 이 공장은 1947년 농림부의 지정을 받아 정부관리 양곡부산물과 아까시잎, 칡잎 등 녹사료를 원료로 한 혼합사료를 생산 공급하였다.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던 이 공장은 휴전 후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옮겨 양계사료를 생산, 공급하기 시작했으나 시설은  보잘 것 없는 낙후된 수준이었다.

▶ UN군에 계란 군납을 담당했던 서울축산업협동조합은 1957년에 중구 충무로 5가에서 양계용 배합사료를 생산하여 군납 계약농가에 공급하기도 했다. 당시 각 지역에서는 사료상(飼料商)들이 양축가의 주문에 따라 창고에서 원조물자인 옥수수가루와 탈지분유 그리고 국내산 원료(강피류, 어분, 박류, 패분, 골분 등)를 삽으로 혼합하여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배합사료공장의 필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조홍래 등, 1998)

▶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정부는 축산장려 9개년 계획(1949~1957)을 수립 발표했으나 1950년 6.25 발발로 사업추진이 중단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정부는 다시 축산부흥 5개년 계획(1953~1957)을 수립 추진했다. 이 계획의 골자는 ①가축의 증식을 위한 도축 제한과 우량종축의 생산 보급 ②가축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축의 방역 및 위생 강화 ③사료대책으로써 가축사료의 절대량을 확보하고 유휴지 개발을 통한 사료 증산 등이었다.

▶ 1953년 조선농회(朝鮮農會)는 부산 비료배합소에서 정부관리 양곡부산물(쌀겨, 보릿겨 등)과 아까시잎, 칡잎 등 녹사료(綠飼料)를 원료로 한 혼합사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생산시설은 원료 저장창고와 소형분쇄기 및 배합기가 전부였고, 일부 작업은 삽을 이용하는 아주 원시적인 배합시설이었다. 당시 부산 비료배합소는 생선의 기름을 짜고 남은 어박(魚粕)과 화학비료(유안, 과인산석회 등)를 혼합한 유기질 비료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 시설이 사료배합에 활용된 것이다.

  1954년 1월 가축보호법이 제정, 시행되어 6.25 전쟁으로 격감했던 가축두수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특히 새로운 품종의 닭과 돼지가 많이 수입되어 농후사료 의존형 가축의 증식이 두드러졌고 배합사료의 필요성이 더욱 인식되기 시작했다.   

▶ 1958년 10월 11일 구 농협중앙회가 설립되고, 1959년에는 조선농회가 운영하던 부산 비료배합소를 인수해 사료를 생산했다. 그러다 1961년 8월 15일 종합농협이 탄생하면서 다시 이 사업을 인수하게 되었다. 1963년 5월 27일, 농협중앙회는 부산 비료배합소 자리에 완전배합사료 1일 생산능력 30톤, 가완전배합사료(혼합사료) 1일 생산능력 100톤을 갖춘 농협 최초의 배합사료공장을 건설하고 본격적인 배합사료 생산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생산된 가완전배합사료(假完全配合飼料)는 사료용 곡류 95%에 어분과 깻묵류 등을 5% 정도 혼합해 생산한 일종의 혼합사료로서, 지금의 완전배합사료와는 그 품질에서 큰 차이가 났다. 이후 이 공장에서는 완전배합사료 생산량을 점차 늘려가게 되었으며, 농협사료 최초의 완전배합사료를 생산 공급하는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