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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90. 한독목장의 사계절 (1)

사양관리 전문지도 받으며 목장 현장경험 체득
하절기 야간방목 중 소 탈출 소동에 `곤혹’도

  • 등록 2019.05.08 09:39:37


전 농협대학교 총장


▶ 한독낙농시범목장으로 발령을 받은 나는 축산을 전공해서 이론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목장 현장업무에 대해서는 초보자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젖소와 낙농경영에 관한 전문서적을 틈틈이 읽어가며 이론을 재정립하고, 번식, 영양, 생리, 착유, 우유의 위생, 질병 등에 관한 지식을 넓혀갔다. 인공수정, 발굽 깎기, 뿔 제거하기, 분만처리, 주사놓기 등에 관한 실무경험은 독일에서 연수를 하고 온 故 이철우 사양과장의 지도를 받았다. 당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임상수의사로 평판이 나있던 분이어서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셨고 열심히 배운 덕분에 나는 수의사 자격증은 없었지만 반은 수의사가 되어 있었다.

▶ 방목(放牧), 초록색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들, 목장의 봄은 참으로 싱그럽게 다가온다. 냉이가 파릇파릇 돋아날 때쯤이면 목초지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이어 봄비를 두어 차례 맞고 나면 풀이 부쩍 빠르게 자란다. 목초지는 푸르름을 더해가고 사료작물인 호밀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란다. 4월 초순경이 되면 호밀밭으로 첫 방목을 나간다. 전기목책(電氣木柵)으로 구획을 지어 놓고 소를 내몰면 겨우내 건초와 사일리지만 먹던 소들이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오랜만에 맛보는 청초(靑草)를 뜯는 소들은 한동안 정신없이 풀만 뜯는다. 싱그러운 풀잎이 얼마나 맛있을까. 소떼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무한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힘든 작업도 많지만 카우보이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약 2주간 호밀밭에서 방목을 하다보면 목초지(牧草地)의 풀이 방목하기에 알맞은 높이로 자라게 된다. 이제 방목지를 초지로 바꾸어 소를 내몬다. 새봄에 새 풀을 마음껏 뜯어먹은 소들은 먹은 만큼 산유량도 늘어 겨울철보다 약 30% 정도 우유생산량이 증가한다. 먹는 만큼 우유를 더 생산해주는 젖소는 참 정직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 방목이 언제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번은 야간 방목 중에 난감한 일을 경험했다. 방목지의 야간 근무자들이 깜빡 잠든 사이에 소들이 전기목책을 뚫고 목장 밖으로 뛰쳐나가 인근 동네 논밭을 쏘아 다녀서 비상이 걸렸다. 뿔뿔이 흩어진 소들을 다시 몰아들이느라고 아침 내내 전 직원이 고생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소들이 일대의 논밭을 짓밟아 놓았으므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집집마다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피해를 입은 농가에는 손해배상도 해야 했다. 물론 상사로부터 꾸지람도 들었다. 

▶ 하절기에는 야간에도 방목을 했다. 우사 안보다 초지에서 보내는 것이 소에게 훨씬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저녁나절이 되면 소들을 초지에서 우사로 몰아들여 사료를 먹이고 젖을 짠 후에 다시 초지로 몰고 나간다. 비가 오더라도 초지에서 밤을 보낸다. 여름이라도 비가 오는 밤에는 추워서 방목지 당직근무자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방목지 순찰 중에 이동식 원두막에 앉아 별빛을 받으며 풀밭에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젖소들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와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생물은 봄이 되면 생기가 넘친다. 그래서 봄을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고 하지 않는가. 봄이 되면 소는 번식기가 되므로 제때에 새끼를 배도록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낙농목장은 우유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고, 분만을 해야만 젖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 때에 송아지를 낳지 않으면 우유생산량도 줄어든다. 암소는 21일 간격으로 발정(發情)이 온다. 발정이 온 소에 인공수정을 해서 임신이 되면 283일 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분만하게 된다. 수태율(受胎率)을 높이려면 발정이 온 소를 제때에 발견해 적기(適期)에 인공수정을 해야 한다. 수정시기가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수태가 어렵기 때문에 적기를 놓치지 않는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고능력우는 영양수준이 안 맞으면 발정이 늦어질 수 있으므로 사양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젖소의 기본원리는 분만을 해야만 우유가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적기에 수태되고 안전하게 분만토록 하는 게 사양관리의 기본이다. 이런 점에서 젖소사양은 생명체를 다루는 종합 자연과학인 셈이다.

▶ 사료작물인 호밀은 가을에 파종하면 한 뼘 정도 자라서 겨울을 난다. 눈 속에서도 파랗게 견디며 겨울을 지낸 호밀은 봄이 오면 발육을 시작하는데 성장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어느새 사람 키를 넘기도록 키가 큰다. 그 때가 되면 호밀을 베어서 사일리지(silage)를 담근다. 호밀을 베어서 잘게 썰어 싸이로(silo)에 저장하면 유산균 발효가 일어나 소의 겨울먹이가 된다. 사람들이 가을에 김치를 담가서 겨울에 먹는 이치와 같다. 사일리지 작업은 일 년에 두 번 하는데, 봄에는 호밀 사일리지를, 여름에는 옥수수 사일리지를 담근다. 

▶ 봄부터 자라기 시작하는 목초는 빠르게 성장한다. 방목을 시킬 초지는 남겨놓고, 일부는 목초가 허벅지에 닿을 정도로 자라면 베어서 건초를 만든다. 건초는 수분함량이 15% 이내가 되도록 건조가 되어야만 영양가를 높게 유지할 수 있고, 저장 시 부패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건초를 만들 때는 일기예보를 잘 보고 풀 베는 날을 정해야 한다. 풀을 베어 놓고 말리는 중에 비가 오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건초가 비를 맞으면 수확량도 크게 줄어들고 영양분의 손실도 크다. 당연히 겨울철 우유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일기예보가 틀려서 갑자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을 때면 비상이 걸려 전 직원이 건초를 묶어 들이는 일에 동원된다. 트랙터 라이트까지 켜 놓고 밤새 건초를 거두어들인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옛 말이 실감난다. 목장의 봄은 이렇게 할 일이 많고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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