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미국의 축산단체 중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단체는 전국육우생산자협회(NCA : National Cattlemen’s Association)이다. 1990년 5월,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시에서 3일간의 일정으로 이 협회의 연차총회가 열렸다. 연차총회는 전국의 육우 목장주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는 가장 큰 집회로 약 3천여 명이 참석한다. 워싱턴 주재 육우생산자협회 부회장 Tom Cook씨의 초청을 받은 나는 총회기간 중 무역분과위원회(Foreign Trade Committee)에서 우리 축협중앙회장의 기조연설을 제안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나는 명의식 회장의 기조연설 계획을 본부에 보고하고 바쁘더라도 미국에 와 주실 것을 건의했다. 이어 본부의 승인을 받자 곧바로 일정준비와 연설문 작성에 들어갔다.
▶ 연설문의 요지는 이랬다. “미국육우생산자협회의 단결된 모습이 감명 깊다. 한국에서도 한우를 기르는 농가는 많이 있지만, 농가당 사육규모가 10두밖에 되지 않는 영세한 농가들이다. 이제 무역자유화가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우리 농가들은 쇠고기수입으로 생활근거를 잃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도 쇠고기수입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한우산업이 붕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입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간의 전통적인 혈맹관계를 감안하여 미국 업계의 배려를 기대한다. 우리는 win-win하는 상생의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이다.” 육우생산자협회 총회에서 명의식 회장은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 명의식 회장이 기조연설을 하던 날 저녁, 육우산업이 비교적 크고 관심이 많은 주요 주(州)의 협회장들 10여 명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물론 미국산 안심스테이크가 주 메뉴로 나왔고 적포도주가 건배주로 나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친해지려면 함께 식사를 함께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약간 취기가 돌며 유쾌한 대화가 오갔고 간간히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명 회장은 한국에서 준비해온 선물을 하나씩 증정하고 ‘우리는 서로 진정한 친구’라고 마지막 건배를 했다. 정말 뜻 깊은 하루였다. 축협중앙회장이 민간외교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이었다.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명의식 회장은 “남 소장 수고했어”라고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불과 두 달 전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된 뒤이기도 해서, 모처럼 모든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육우협회가 이렇게 전국대회를 개최하는 목적은 지역 및 회원 상호 간의 소통을 통한 공감대 형성,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수립, 대외 농정활동 방안 등을 협의하고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회원들이 집결하여 대내외적으로 세(勢)를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다. 회원들은 미국 각지에서 개최지로 집결하는데 자신들이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
▶ NCA는 미국최대의 축산단체로서 육우를 사육하는 목장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활발한 농정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육우협회(NCA)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회원들은 지역의 유지이며 자산도 많아서 정치자금 헌금도 많이 한다. 본부는 콜로라도주 덴버(Denver)에 있으며 워싱턴 D.C에는 로비사무소를 두고 농정활동을 펴고 있으며 정책담당 부회장이 워싱턴사무소 운영을 담당한다.
▶ 미국의 육우사육농가는 다른 품목 농가와 비교할 때 경영규모가 크며,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지도적 위치에 있는 목장주들이 많다. 대부분의 대규모 육우사육농가들은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들과 교분을 두텁게 유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활동이나 선거운동 시에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므로 이들의 의견은 신중히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관리들도 정책시행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수집하여 농촌현장의 반응과 여론을 수시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목장주들의 단체인 육우협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 공동대응함으로써 공동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 미국육우생산자협회에는 농업정책위원회, 무역분과위원회 등 14개의 분과위원회를 두어 협회의 의사결정에 활용하고 있다. 쇠고기무역과 관련된 정책에 대하여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의회에 건의하는 일은 무역위원회에서 수행한다. 협회는 정책제안을 접수하면 임원과 담당직원이 이를 검토하여 해당 분과위원회에 상정한다. 분과위원회를 통과하면 결의위원회(Resolution Committee)로 회부하여 채택여부를 심의한다. 동 위원회는 제안을 원안대로 접수하거나 수정할 권한이 있으며, 물론 기각할 수도 있다. 결의위원회는 통상 제안의 명료성과 일관성을 검토하는 한편, 다른 정책과의 중복여부, 현존하는 정책과의 합치여부도 검토한다.
▶ 결의위원회에서 채택된 정책제안은 연차총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표결로 통과여부가 결정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것이 관례다. 이렇게 결정된 협회의 정책은 2/3 이상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수정할 수 있으며, 수정결의안은 다시 표결해서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채택된다. 협회의 정책은 개정이나 폐기 결정이 되지 않는 한 5년간 유효하며, 5년 후에 다시 채택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된다. 이사회에서는 긴급을 요할시 잠정정책을 결정하여 발표할 수 있으나, 차기 총회에서 해당 상임위의 승인을 받은 후 총회의 사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일이 회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결정되고 시행된다는 점이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