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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43. 축협중앙회장의 미 무역대표 면담 비화 (1)

우리측, 대외통상 주도 미 무역대표부 수장 면담 추진 난항
필자, 현지 인적 네트워크 활용…우회적 만남 성사

  • 등록 2018.10.17 10:36:18


(전 농협대학교 총장)


▶ 한·미간에 통상마찰이 발생할 때면 의례히 전면에 나서는 부처가 바로 미 무역대표부(USTR : U.S. Trade Representatives)이다. UR협상, DDA협상, FTA협상 등 대외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쇠고기협상의 경우 쇠고기 산업의 현황, 수출입 동향, 업계의 요구 수렴, 협상기본방침 등은 미 농무부  해외농업처(FAS : Foreign Agricultural Service)가 담당하고 통상협상업무는 USTR이 주도한다. 협상단에는 농무부에서도 함께 참여하여 협상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품목에 관한 사항은 해당부처가, 협상은 USTR이 맡아서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안이거나 부처 간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정책조정과정을 거치게 된다. 통상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은 정부 내 부처 간 협의, 조정기능이 잘 작동하고 있으며 주무부처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협상에 임한다는 점이다. USTR이 주관은 하지만 결코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 USTR의 역사는 케네디 대통령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네디 대통령은 냉전시대의 이념대립 상황에서 국제통상이 외교문제로 인해 희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1963년 특별무역대표부(STR : Office of the Special Trade Representative)를 설립했다. 특별대표부는 1974년 무역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기관(각료급)으로 편제 되고 통상교섭권이 부여되었다. 그 후 카터 대통령 후반기인 1980년에 무역대표부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과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통상협상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불공정무역을 감시하고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업무도 추가되었다. 지금의 USTR은 통상정책의 개발, 부처 간 정책 조정, 대외통상에 관한 대통령 자문, 의회와 업무협의, 대외 통상협상의 대표 등을 담당한다. 1984년 개정 미 통상법에 따라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의회에 제출하는 것도 이 부처의 일이다. 해마다 의회에 보고되는 USTR의 무역장벽보고서에 어느 나라가 무역장벽 리스트에 오르는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 한국정부의 쇠고기 수입중단 조치에 대하여 미국육류협회(AMI)가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미 통상법 301조에 의한 조사청원을 한 이후, 한미 양국은 수차례 양자협상을 끝에 국영무역기구로서 축산물유통사업단(LPMO)을 설립하고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수입재개 첫해인 1990년 3천 톤을 시작으로 매년 3천 톤씩 증량, 1992년에 9천 톤까지 늘리기로 한 것이 주요 합의내용이었다.


▶ 그 이후 미국업계는 미국정부를 동원해서 쇠고기시장 추가개방을 요구해왔고 GATT협정 위반으로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약소국이 강대국과 양자협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실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한국의 축산업계를 대표하는 축협중앙회 명의식 회장이 미 무역대표 칼라 힐스(Calla Hills)를 만나서 한국 축산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직접 설명하면 쇠고기 수입개방 압력을 완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의식 회장의 미 무역대표 방문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미 무역대표를 한국 축협중앙회장이 만나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양국 대사관을 통하는 정식 외교루트로는 성사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8년간이나 미 농무장관을 지낸 John Block씨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 분이 Calla Hills와 친분이 두터우므로 주선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미국 사무소장으로 부임 후 다행스럽게도 농무장관을 역임한 후 미 전국도매협회(National Wholesale Association) 회장으로 있던 John Block씨를 알게 되었고, 자주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친분을 두텁게 해온 터였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Block씨는 당시 60세였는데, 일리노이(Illinois) 주에서 큰 양돈장과 농장을 3대째 운영하고 있었다. 1991년 봄, 나는 그 분의 초청으로 직접 일리노이 농장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올 만큼 가까웠다.


▶ 결심을 굳힌 나는 Block 회장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축협중앙회장과 미국 무역대표 면담의 필요성과 함께 나의 의도를 설명하고 면담 주선을 부탁했다. 고맙게도 그는 나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면담시간을 잡아보겠다고 했다. 이틀 후 나는 Block 회장으로부터 미 무역대표 면담시간이 정해졌으니 회장의 방문을 추진해도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고위층 간의 면담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미 간의 쇠고기 통상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통상 압력의 정도를 완화시킬 수는 있을 것으로 믿었다.


▶ 그날 바로 축협중앙회 본부 김충현 해외협력부장에게 팩시밀리를 보내고 명의식 회장의 방미일정을 잡아 추진해줄 것을 건의했다. 아울러 워싱톤 D.C를 방문하는 길에 미 농무부 매디건(Madigan) 장관과 미 의회 콜먼(Coleman) 하원의원과의 면담일정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1992년 8월 22일 명의식 회장 일행(수행원: 김충현 부장, 조문근 비서)이 워싱톤 D.C 내셔널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는 사무소 옆 워터게이트 호텔에 포토맥 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방을 예약해 놓았다. 다음날은 주미 농무관 면담 등 가벼운 일정을 소화하고, 그 다음날인 1991년 8월 26일 11시 드디어 미 무역대표(Calla Hills)와의 면담이 있는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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