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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북한 출신 수의사 조충희 씨의 북한축산 바로보기<8>북한 축산농민의 일상-1

사회주의적 협동화로 여가시간의 분배 가능

  • 등록 2018.07.06 10:36:09

[축산신문]


(북방연구회 연구위원)


북한주민들의 일상을 보는 견해를 논할 때 직업의 환경이 그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사람들이 직업이나 직종의 차이로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북한축산농민들의 일상이 왜,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축산업이라는 경제 형태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먹는 문제의 해결에 있고 따라서 축산농민들의 일상은 축산업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정책적으로 ‘이밥에 고깃국’을 먹자는 슬로건을 내 걸고 인간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인 ‘의·식·주’의 개념을 ‘식·의·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북한의 농촌 환경에서 개인축산업자, 축산농민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는 북한주민들의 일상으로부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특히 북한 축산과 축산 시장에 대한 향후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북한의 사회변화와 축산업자
해방 후 개인 농업경리시기 대부분의 축산농민들은 오늘날에 비해 이익률이나 생산성에 훨씬 덜 민감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보다는 남는 곡식을 먹이고 축산물을 소비하고 분뇨를 거름으로 쓰는 흔한 영농 시스템의 일부로 가축을 길렀다.
북한지역에서 ‘토지개혁’은 지주(地主)의 토지를 몰수해 국유화하거나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땅은 밭갈이 하는 농민에게”라는 슬로건으로 실시된 토지개혁은 가축의 사육과 축산물 판매로 유지하던 축산농민들의 생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농사는 가족 단위의 소농경영 방식 위주로 되었고 농촌에는 리 단위 인민위원회와 그 아래의 인민반, 당 세포조직과 농업근로자동맹, 민주청년동맹들의 하부조직 등을 통해 국가와 당의 통치가 관철되는 질서가 형성되었다.
수백 년 동안 반복되던 매일의 일과에서 변화가 진행되었다. 매일매일 변함없는 방식으로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던 하루일과의 변화는 축산농민들의 생활 리듬을 바꾸어 놓았다. 즉 생산노동을 수행하는 시간과 여가시간의 구조 생산현장과 가정생활 등 기타 영역에서 시간의 분배와 그 비중에서 현저한 변화를 가져왔다.
생존을 위해 가축을 돌보고 사료를 생산하고 도살과 판매, 새로운 가축의 구입 등 생산노동으로만 일관되어 있던 그들의 일상에서 여가에 대한 관심과 여가를 향유할 시간적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점은 축산농민들의 하루일과에서 개인정서 생활에 대한 시간의 분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협동화에 의한 축산업 집약화와 일상 변화
사회주의 농업정책의 두 번째 과정은 ‘농업협동화’이다. 협동화조직과 공동축산을 위한 공식적 통제 정책 때문에 농부들이 겪는 사회적, 재정적, 심리적 어려움은 농업부문의 사회주의 정책과 소유권의 변화로부터 진행된다.
농민은 수세기에 걸쳐 가족의 범위 내에서 독자적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가장 단순한 용구나 역우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기의 농산물을 소유하는 것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현상은 축산업에 종사하는 축산농민들인 경우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농민들은 집단경영이 소규모 경영보다 훨씬 더 생산력이 높다는 것을 강요당하면서 지난 수세기 동안 내려오던 생각과 관습이 낡은 것이 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야 했다.
 6.25 전쟁으로 북한 농업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실제로 농업총생산액은 전쟁 전에 비해 약 76%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북한은 전쟁으로 인한 농촌경리의 복구를 위해서도 개인 경리부분을 집단경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농업을 협동농장으로 개편하기 시작한다. 즉 북한에서 협동화는 사회주의 일반원칙과 더불어서 6.25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의 시행으로 인해 토지와 가축, 소농기구 등 사적소유화는 철폐되거나 약화되었다. 집약 영농이 자리를 잡으면서 농업의 모습도 변했다. 정부는 여전히 국내 식량생산을 늘리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선전했지만 축산농민들은 대대적인 농업의 확대보다 선택적 재배와 높은 효율성을 지향했다.
소규모 개인농업은 수지가 맞지 않아 영세해갔다. 국영농장들은 날로 커져 갔고, 화학비료, 상업용 사료, 신품종 종자와 가축, 육종, 기계화 영농 등이 협동농장들에 보급되면서 개인과 협동농업 간 생산량 격차 크게 늘어났다.
축산부문 역시 전통 품종대신 신품종을 도입했다. 협동화의 영향은 사회 구석구석에 미쳤다. 마찬가지로 통합과 집단주의 통제 방법은 수많은 농촌 주민들의 일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