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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고지신(溫故知新) <5>공격적 제도 추진으로 난관 돌파

중매인 등급사업 거부로 식육 물가 비상…공급량 늘려 강행
시행초기 등급사 두셋이 1두 판정…객관성 높여 성과 극대

  • 등록 2018.03.21 10:55:24
[축산신문 기자]


윤영탁 전 본부장(축산물품질평가원)


-시작은 치밀하고 단호하게
우유부단(優柔不斷)이란 말이 있다. 어물어물하기만 하고 딱 잘라 결단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때와 순서가 있게 마련이다. 바둑을 두다보면 종종 이런 상황을 느끼게 된다. 승부수를 걸어야 할 곳에 두지 않거나 사활에서 순서가 잘못되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등급제 시범사업 시행 초기인 1992년 7월 1일은 등급제에 관한한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날 중의 하나였다.
당시의 상황은 등급사를 채용했으나 등급제를 추진하기에는 유통여건이 좋지 않아 교육이란 명분으로 거의 1년 반 가까이 지날 때였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 돌파구가 축협서울공판장에서의 시범사업 추진이었다. 문제는 중매인들의 반발이었다. 경매에 의해 시중으로 나가는 지육이 가장 많은 공판장에서 중매인들이 경매를 거부하면 서울시내에 공급되는 고기량이 줄어들게 되어 소비자 가격이 올라 민원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출하한 농가의 소·돼지가 팔리지 않아 농가의 불만이 커져 결국 등급제를 포기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어떤 결단이든 내려야만 했다. 그건 기의 싸움이다. 서울시민을 볼모로 한 중매인들의 거부를 받아들여 등급시범사업을 유예할 것인가? 아니면 강행할 것인가? 강행한다면 사전에 어떤 준비를 해 놓아야 할 것인가? 한번 유예한 것을 재추진하는 것은 가능한가?
결국 정부는 시범사업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반입되는 고기량을 늘리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결국 이러한 정부의 강력한 추진의지로 중매인들의 경매거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그 당시 소신 있게 정책을 이끌어 주신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요즘의 상황은 당시의 상황보다 어렵다. 정부가 뭔가 사업을 추진하려해도 이해 당사 조직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게 되고 그럴 경우 민원을 우려해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 등급사들이 3인 1조가 되어 등급판정을 하게 됐는데 속된말로 등급사 반 소·돼지 반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등급사가 많이 투입됐다.
그리고 경험이 많은 중매인들은 등급판정사를 무시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준다. 오랜 감(感)에 의해 외관만 보고 가격을 정한 것이 등급의 결과와 비슷하게 나온 것을 안 중매인들은 등급의 결과를 참고하게 됐고, 그들과 거래하는 정육점에서도 같은 등급일 경우 품질이 균일하다는 것을 알고 동일한 등급의 지육을 원하게 된 것이다.


-초기의 성과가 성패를 좌우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초기의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 하면 한번 불신을 갖게 되면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아예 회복불능이 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의 일인데 집 근처에 중국집이 새로 오픈했다. 그리고 오픈 이벤트로 음식을 반값에 준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실제 오픈되어 얼마간은 성황을 이뤘지만 문을 닫는 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음식이 양이나 질적으로 손님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등급제도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도 있었다. 등급판정 기준을 마련만 하고 도축장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거나, 퇴직한 관련 사업관계자로 하여금 등급을 판정하게 했다면 초기 성과의 실패로 인한 사업 존폐의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등급의 잣대가 통일되지 못한 소위 고무줄 등급판정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급판정 시행초기 두세 명의 등급사가 1두를 등급판정 하게 한 것은 오랜 등급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경험이 충분하지 못했고, 등급의 객관성을 높여 초기의 성과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누구를 위한 등급판정인가? 또는 세금의 낭비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등급의 결과에 따른 가격이 형성되고 등급사들도 경험이 축적되면서 신뢰가 쌓이고 판정에 투입되는 인력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초기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해야 된다. 중국집 예에서 보았듯 오픈 초기 손님을 끌기 위한 급함에 값과 품질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차라리 초기부터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세웠다면 본 궤도에 오르기 까지 시간은 더 걸렸을지 몰라도 문을 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등급의 경우는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비해 정부는 이런 정책을 실시합니다.’ 라는 일회성 성과 위주의 홍보용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정 우리 축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가에 대한 고민의 소산이었다. 그것은 빠름이 아니라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장기적 안목이 있었기에 초기 성과가 신뢰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했다. 일본 속담에 ‘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지지마라’라는 말이 있다. 그 속담에 함의 되어 있는 뜻은 무섭기까지 하다.
초기의 성과는 중요하다. 그러나 초기의 성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충분한 준비와 철저한 이행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아니한 만 못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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