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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온고지신(溫故知新) <2>축산물 유통 혁신 위한 제도 구축

열악한 유통 인프라 속 등급사 신규채용부터 큰 부담
도축장 등급제, 환경개선·소비단계 냉장유통 새 전기

  • 등록 2018.03.07 10:58:40
[축산신문 기자]


윤영탁 전 본부장(축산물품질평가원)


-새 술은 새 부대에
혁신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새로운 질서에 대한 기존질서의 저항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당시의 축산물유통은 혼탁했다. 수시로 터져 나오는 물 먹인 쇠고기 유통과 밀 도축은 명절 때 방송의 단골 주요뉴스였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지 못한 시점에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은 리스크가 크게 마련이다.
마련된 등급기준을 현장에서 판정할 등급사의 채용이 필요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인력 채용승인은 대단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특히 유통업자의 반발과 미흡한 도축시설 등으로 볼 때 어찌 보면 이 제도가 무리 없이 정착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게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도 초기 필요 신규 인력으로 55명을 요구 받았을 때 만약 채용해 놓고 등급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를 실무책임자는 고민했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실제로 등급사 교육 후 현장배치가 어려워 발령을 미루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등급사를 채용하느니 기존의 조직에게 업무를 맡기자는 의견도 일부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는 일부 부도덕한 관계자의 업무처리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던 불신의 사회 환경이었다. 따라서 초기 등급이 주는 신뢰의 정도가 조기정착의 관건이었기에 누가 등급판정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당시, 혹자는 축산물 유통과 처리를 해보지도 못한 신출내기 대학생을 뽑아 아무리 교육을 한들 오랜 경험을 가진 중매인들 보다 나을 수 없어 등급의 결과가 유통지표로 이용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었다.
아무튼 우여곡절을 거쳐 1990년 12월 26일 4년제 축산관련 대학 졸업자 및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채용시험을 단행해 이듬해 2월에 53명을 육류등급사 수습기사보로 발령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3년에 47명, 1994년 31명 등 순차적으로 등급판정사를 채용해 그 인력을 늘려갔다. 대학졸업생을 대상으로 등급사를 공개 채용한 것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을 공개 채용해 집중적인 이론과 실무교육을 시켜 유통의 새로운 장을 열어보겠다는 큰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오늘날 가장 신뢰받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다.


-유통은 흐름이다. 길목을 지켜라.
지금의 축산물 유통시설과 90년대의 유통시설을 비교하면 상전벽해와 같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유통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바닥에서 도축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량을 늘리기 위해 소에 강제로 물을 먹이기도 했다. 도축장에 냉장고 시설은 있어도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상인들은 온도체 상태로 지육을 반출했다. 지육은 2등분할이 되지 않아 고기내부 열이 빨리 제거되지 못해 고기품질이 떨어졌다. 특히 돼지의 경우 여름 장마철에는 불충분한 세척과 비(非)냉장으로 인한 도축열 때문에 세균의 증식이 빨리 이루어져 정육점 도착하기도 전에 표면의 색이 변할 정도의 부패가 발생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냉장상태로 지육운반이 되지 않았고 정육점의 냉장 쇼케이스 보급도 불충분해 ‘고기는 냉장고에’ 라는 표시를 해 놓고 냉동시켜 판매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품질의 기준 표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에서 고시한 가격에 의해 판매되었기에 개량과 사양관리는 육량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말해 UR에 대비하기에는 총체적 부실상태였다.
다양한 분야를 한꺼번에 당장 개선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한 길목을 잡아 철저히 관리한다면 유입되는 것은 정리되고 정리된 것은 그대로 흘러갈 것이다.
실제 그랬다. 소·돼지의 법적 유통 길목인 도축장에서 등급제를 실시함에 따라 도축장의 냉장시설이 개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비단계에서 냉장유통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품질위주의 개량과 사양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어떤 큰일을 당하면 허둥거리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좀 냉철하게 차분히 생각해보면 일에도 우선순위가 보인다. 제일 첫 번째 우선순위는 응급조치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 분야를 개선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모든 일에는 맥이 있다. 그 맥을 잘 집어서 관리하면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고 그 맥을 중심으로 다른 곳을 정비하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당시 우리축산업 특히 소·돼지의 맥은 도축단계에서의 등급판정이었다. 그리고 소비 판매가격의 자율화와 등급표시였다고 본다.
법에 의해서 관리되는 도축단계라는 병목을 이용해 축산업 및 축산물유통의 개선을 추진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개방화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 축산의 맥은 무엇일까? 안전과 위생 그리고 방역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오늘날 그것이 주요 맥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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