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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112>34년간의 농업계 관직을 떠나던 날

‘1급 차장’ 구설수 부담에 장관 만류 속 퇴임 승낙 받아
농진청장 성대한 퇴임식 지시…공직 영예의 마감

  • 등록 2017.11.22 10:52:01
[축산신문 기자]


김 강 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1992년 2월 19일 김영삼 대통령 정부 출범 시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한 허신행 장관님의 농정 슬로건이 ‘기술농업, 고품농업, 수출농업’ 3대 목표였다. 신임 허신행 농림수산부 장관의 3대 농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시 농촌진흥청 이동우 청장이 충남지사로 떠난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의 역할이 절대 필요했다.
이에 본인을 청장으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께 내신한 상황을 눈치 챈 본인은 당시 청와대 내에서 막강한 파워가 있는 이ㅇㅇ정무수석이 조선일보 편집국장출신이고, 그 뒤에는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 이란 것을 알고 평소 방우영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본인이 청탁 아닌 청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자초지경을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나도 김 박사를 더 윗자리에서 일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잘되었다. 내가 이야기 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청장으로 발령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의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과의 관계는 대 언론사 회장의 비선을 통한 사회실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방우영 회장을 비롯한 동대문 상인대표까지 포함한 각계 각층의 대표자 5~6명을 1조로 해 분기별로 대중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세상 돌아가는 대화를 함께 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농림수산부 장관에는 본인이 아니고 얼토당토도 아닌 이판석 경상북도지사가 청장이 되었다.
본인은 역대 정부에서 지역차별 등을 운운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별로 관심 없게 생각하던 차에 본인 스스로가 지역차별을 당하고 보니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이판석 청장이 차장인 나를 위로하면서 자기도 연말까지만 있을 것이니 도와달라는 이야기와 허신행 장관님도 자기의 농정 슬로건인 기술, 고품, 수출농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차장 자리에 그대로 있어달라는 당부도 있고 해서 우선 신임 이판석 청장이 업무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5~6개월 차장직에 그대로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농림수산부 이ㅇㅇ 농산국장이 차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본인에게 이야기해 준 국장이 있어 어느 날 허신행 장관님을 독대할 기회가 있어 신임 청장이 업무파악도 한 것 같고 해서 차장직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화를 내면서 “나도, 청장도 그대로 있으면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시면서 화를 내시기에 농림수산부 이OO 국장이 차장으로 승진해서 온다는 소문은 장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본인은 청장, 장관의 뜻대로 그대로 있겠다고 생각했다.
장관의 농정슬로건인 기술, 고품, 수출농업 실현을 위한 사업계획을 매일같이 시험장 연구소 연구관, 지도국 및 지도관과 같이 사업계획을 구상 검토하고 있는데 5월말경 이ㅇㅇ국장이 차장으로 오도록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해 장관님과 독대한 자리에서 “지난번 장관님의 뜻에 따라 5~6개월 기술, 고품, 수출농업 실천을 위한 시험연구 및 지도사업을 총 정비하고 있는데 이ㅇㅇ국장이 차장으로 온다고 하니 30여년 대과없이 나름대로 공직생활을 했는데 말년에 쫓겨 나갔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이어서 “장관님은 저와 함께 일하고 싶으시겠지만 전 정부의 1급 자리를 5년이상 한 사람을 고향선배이기 때문에 봐주는 게 아니냐면서 장관님의 뜻과는 다르게 더 높은 곳(청와대)에서 바꾸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장관님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때서야 윗선에서 이야기가 아니고 농림수산부에 출입하는 속칭 관변(정부기관) 기자가 지난 정부의 1급 공무원을 그대로 두어서야 되겠냐 하는 이야기는 있었으나 다른데서는 전혀 이야기가 없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장관님은 저를 데리고 일하고자 하지만 더 윗선에서 지난 정부의 1급 공무원을 그대로 두고 있어서야라고 할 때 어찌하겠습니까. 시기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그만두는 것이 장관님이나 저의 입장에서 좋을 것 같으니 놓아주십시오. 대신 저보다 능력이 있는 당시 조재형 작물시험장장(1급대우)을 차장으로 하고 농림부 ㅇㅇ국장을 작물시험장장으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려 그러기로 했다.
“김 차장, 차장 그만두면 무엇 하겠소”하기에 “지방대학에 강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 그동안 경험한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자리로 소일하고자 합니다” 했더니, 장관님께서는 대학 강의는 김 차장 아니고도 얼마든지 할 사람이 있으니 그동안 연구하고 기술행정에서 경험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우리나라 농업 및 축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장자리 퇴임을 승낙 받았다.
농촌진흥청 발족 이래 청장이 연 60세로 퇴임하는 것도 본인 책임이고, 또 이판석 청장이 퇴임식을 성대히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은 직원이 본인에게 상의하기에 검소하게 하자고 제의했으나 가족은 물론 각 시험장 연구소 연구관급 이상, 각도 농촌진흥원 시험 도시 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공직생활을 마치는 퇴임식을 했다.
이 자리에는 85세의 노령으로 자식의 자랑스런 퇴임식에 참석한 아버지께서 “못난 자식의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해 주신 청장님과 직원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는 말씀이 지금도 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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