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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축산과 농업 그리고 농촌의 미래!><30> 27산 소 키우는 노부부

“7남매 키워 준 밑천…소와 남은 여생 함께할 것”

  • 등록 2017.01.25 11:32:56
[축산신문 기자]

 

문홍기 명장(장흥축협조합장)

 

두 사람의 수의사 감정 후 3일후에 쌍태송아지가 유산되었다. 임신감정은 안정화를 시킨 상태에서 놀라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한우계류식 우사는 소의 본능적인 활동을 억제시킴으로써 운동부족으로 인한 배란지연이 많았는데 풀사료 위주가 아닌 배합사료 급여량이 높은 농가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특히 계류식우사는 묶어진 상태라 승가현상이 발현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배합사료를 처음으로 접하는 농가에 지도가 필요했었다. 이 때부터 소 사양관리와 송아지 육성의 전문화된 지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개량과 번식, 송아지 육성과 질병관리에 전문화된 지도로 농가들이 철저하게 임하도록 했다면 한우사업은 지금 일본과 대등하게 발전하게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에는 한우는 별로 질병이 없었음으로 질병의 감염이나 확산은 생각도 못했고 근친문제의 개념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다.
한우번식의 전문적인 지도를 인공수정 출장을 다니면서 농가마다 하다 보니 농가들과는 아주 밀접하게 되었다. 장동면 만년리에 32산을 한 암소가 있었다. 이 소는 앞마을에서 만년리로 시집을 올 때 옆집의 소를 먼저 사왔다고 한다. 결혼했던 그 해에 사왔으니 년도는 정확하게 기억되었고 32산으로 계산되었다.
소와 같이 시집 와서 소와 같이 늙어가는 세월을 이야기 했다. 이 소는 그 집을 다두사육 목장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 소는 매년 분만간격이 좋았으나 다두사육 체제에 들어가면서 영양공급이 떨어지자 급격하게 노쇠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자연초를 베어다 주는 풀사료의 미량요소와 영양밸런스가 깨어지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다두사육이 되면서 조사료는 볏짚과 보릿짚으로 대체되면서 영양의 흐름에 따라 번식이 되는 전문적인 기술지도가 필요했지만 농가경험에 의존해 오고 있었다.
필자는 어릴적 소가 자연방목 상태에서 황토를 먹는 것을 보고 황토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쇠죽을 쒀주면서 소가 소금을 얼마나 좋아하는 것과 후일 번식사양에 미네랄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장평면 축내리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이 때는 대부분 경운기로 논갈이를 하는 농가가 많고 소는 송아지 생산으로 경제성이 높은 때였다.
쟁기질 일소에 임신감정을 요청해서 검진을 해보니 임신은 되어 있었으나 뿔의 나이테를 보니 하도 많고 달아져서 셀 수가 없어서 물어보았더니 옛날을 되짚어 계산을 했다.
7남매를 낳았는데 막둥이가 모레 장가를 가는데 막둥이가 두 살 먹었을 때 쟁기질 일소를 사와서 매년 꼬박꼬박 새끼를 낳았으니까 27산을 했다고 한다.
“아니 소는 경제동물인데 새끼를 서너배(3~4번)낳으면 팔고 젊은 소로 교체를 하면 쟁기질도 잘하고 송아지도 잘 낳고 자주 교체하면 돈도 더 벌 텐데 무슨 소를 이렇게 기르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외분은 교대로 한 서린 젊은 날을 이야기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이 소로 남의 논을 쟁기질을 해서 7남매를 가르쳤고 송아지를 팔아서 시집장가를 다 보냈다고 한다.
젊을 때는 주인도 힘이 셌고 소도 힘이 셌지만 소와 함께 늙어가니 힘의 밸런스가 서로 맞았다고 한다. 또한 쟁기질을 하다가 돌에 걸렸을 때도 소가 잘 알고 곧바로 멈추어 쟁기의 버습이 깨지는 일이 없고, 쟁기질 후 소를 놔두면 다른 소처럼 벼를 뜯어 먹는 일도 없고, 길가의 풀만 뜯다가 혼자 스스로 집으로 돌아와 마치 사람처럼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이제는 소가 아니고 그냥 한집 식구와 같다고 했다.
“그래도 경제동물인데 경제성을 보고 키워야지 이왕 매일 풀을 베어다 주는 소 기르는 노력을 하면서 수익성을 생각하고 기를 것”을 이야기하자 자식을 다 결혼시키는 마당에 함께 살아온 정을 이야기 하며 “앞으로 자식이 모두 떠나고 나면 소와 여생을 살 것”이라고 했다. 송아지는 모두 건강했고 27년간 송아지를 판매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 도중에 앞집에 사시는 연로하신 분이 소를 가져와 임신감정을 부탁했다. 이 소 역시 임신은 되었지만 뿔의 나이테가 사뭇 많고 달아져 있었다. 이 소의 나이를 물으니 처음 감정했던 소보다 2년을 먼저 사온 소라고 했다.
소와 함께 살아온 농경문화에 엮어진 사연들은 비슷했고, 공통사항은 소와 함께 고생하고 살아온 정 때문이었다. 이제는 자식들은 다 떠나고 소와 함께 내외가 살고 있다고 했다.
 감동을 하지않을 수 없었고 못하는 술을 계속 권하는 데로 잔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한 농촌생활에서 소에 의지하여 함께 살아온 한많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함께 같이 출장 갔던 친구와 감격해 하자 그러면 정말 보여 줄 것이 있다고 하면서 마을 가운데로 친구와 나를 데리고 갔다. 그 집에는 마당 가운데에 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마치 일본 도사견처럼 온몸이 온통 주름살 투성이 였다.
풀을 씹고 있는 입에 이빨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이라면 90세도 훨씬 넘은 100세에 가까운 극노인이었고 누워서 연한 풀을 한가로이 씹고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 소는 아주 늙어서 주름투성이며 거친 볏짚이나 보릿짚은 먹을 수 없고 오직 부드러운 풀만 먹는다고 했다.
이제 너무 늙어 새끼를 못 낳은지도 오래되었고, 쟁기질은 더 더욱 늙어서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가족으로 생각하고 보살피고 있었다.
이들은 한 평생을 소와 함께 살아온 사연들이 비슷했다. 소로 아들·딸 잘 가르치고, 시집·장가보내는 비용으로 쓰였던 것도 비슷했다. 이는 한결같이 송아지가 질병 없이, 아무런 탈 없이 잘 커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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