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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 농업자금으로 탄생했는데…

낙성대에서...


이 상 호(본지 발행인)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산업은 조선산업일 것 같다. 지난해 전 세계 선박발주량의 절반이상을 국내 조선업체들이 따냈고 드릴십을 비롯한 해양플랜트나 천연가스운반선은 거의 싹쓸이할 정도로 한국조선의 경쟁력은 발군이다. 일본도 손을 든 한국 조선업의 성공은 ‘산업의 쌀’ 철을 생산해온 포스코(포철)가 그 토대였다. 철강산업을 일으키지 못한 나라가 공업국이 된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포스코! 막강한 경쟁력으로 인해 전 세계가 ‘교과서’로 여기는 글로벌 기업이다. 포스코 덕을 본 산업이 어찌 조선업뿐이겠는가. 공업입국의 견인차였던 포스코는 5천년이나 대물림해온 가난을 떨치게 해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지난해 말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이 작고했을 때 온 나라가 고인의 추모열기로 뒤덮였던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포스코가 우리 농어업의 희생을 밑천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영원한 철강왕 박태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밀어붙이던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제철사업추진위원장에 임명된 그는 1968년 자본금 140억원의 포철을 출범시킨다. 막상 출범은 했지만 제철소를 짓고 운영할 기술도 없고, 천문학적 액수인 건설자금도 없는 그로서는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여기서 인간 박태준의 헌신과 창조성이 빛을 발한다. 박태준은 고심 끝에 건설자금을 차관으로 조달하기로 하고 1969년 미국으로 날아 간다. 하지만 국제제철차관단의 “NO”라는 답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은행이 저개발 후진국이 종합제철소를 짓는 건 시기상조라는 보고서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궁하면 통하는 걸까. 귀국길에 중간경유지인 하와이에서 울분을 씹고 있던 그의 머리에 사용처가 농어업분야로 한정된 대일청구권자금 1억달러가 떠올랐다. 그 즉시 박 대통령에게 국제전화로 이를 보고하고 재가를 받은 후 일본의 정·재계 인사들을 설득한다. 농어업지원에 쓰려던 조상들의 피 값 1억달러가 이렇게 해서 포철건설에 쓰여 졌다.

그랬다. 민족의 염원이 이루어진 환희의 이면에는 농어업의 이러한 희생이 있었다. 누구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 고립무원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왜 그랬냐고 따질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적어도 농어업의 희생에 대한 적절한 대접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 후의 공업화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와 포스코로 상징되는 공업화의 과실을 누리고 있는 재계의 태도는 대접은커녕 그러한 희생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듯하다. 짐으로 여기며, 모르는 척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대기업들은 고도성장기엔 공업화의 바람에 편승했고, 이제는 FTA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재계가 공업화의 희생양이자 FTA 피해산업인 농업분야를 위해 한 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자신들의 이익엔 전방위 로비를 펼치는 그들이 농업을 위해서는 그 흔한 재단하나 만드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근로자들의 저임금유지를 위한 저곡가정책처럼 농업의 희생으로 길이 닦인 공업화의 수혜자인 재계가 이제 와 농업을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이 참으로 화가 나지만, 이 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은 정부가 이를 망각하고, 농업분야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의 다리만 긁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다.

우리 농업의 신세가 젊은 시절 동생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했지만 이제는 잊혀 진채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없는 집’ 장남 신세와 너무나 닮은 현실이 자꾸만 슬픈 환영(幻影)으로 다가 온다. 이런 감상이 제발 ‘오버’ 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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