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서동휘 기자]
“사실상 한판 6천원 못박아”…가격 억제·할인 종용
산지-소매가 차이 20%…1구당 최소비용도 못건져
평시 38% 수준 감안시 ‘울며 겨자먹기식’ 납품
부자재 인상따른 원가 상승에도 판매가 반영 못해
지난 겨울 고병원성 국내 AI 발생으로 인한 계란 수급부족과 가격상승에 쏠렸던 정부와 언론·소비자들의 지나칠 정도로 뜨거웠던 관심은 지난 8월 중순이후 농가들이 재입식을 통해 유통되는 계란의 물량이 평시에 근접해져 가격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하락세로 돌아서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시장에 계란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부랴부랴 미국 등지에서 계란 수입을 추진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빗나간 물가정책…계란시장 혼선
살처분 피해농가들은 계란 생산량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기쁨도 잠시, 공급이 정상궤도에 오르자마자 하락하는 계란 가격에 울상이다. 재입식 당시 천정부지로 오른 중추 값 등 계란 생산을 위한 모든 물가가 지난 1년사이 급등해 계란 가격이 더 이상 하락한다면 피해복구는커녕 손해를 입을 처지기 때문이다.
또한 계란 유통상인들은 계란 가격이 높았을 당시, 정부가 지속적으로 유통상인과 대형마트 등에 가격개입을 해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산지 계란시세가 지속적으로 올라 계란 매입비용이 막대하게 늘어났지만 실제 판매가격에는 반영치 못했다는 것. 일부 중·소 유통업체들은 이미 업을 포기하려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일선현장의 실정이다.
경기도의 한 계란유통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물가상승의 주범을 계란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간 계란 가격 인상을 제어하기 위해 대형할인점과 유통종사자들에게 다양한 방법을 총 동원해 압박을 가해 파산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며 “정부가 대형할인점과 유통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계란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요청을 수차례 했다. 아니 아직도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까지 나서 담합의 소지가 보이면 엄벌한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그간 계란 가격이 고공행진을 했다지만 정작 상인들은 마진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가 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계란을 납품 했다”고 토로했다.
매출은 늘었는데, 적자만 늘어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계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을 때, 정부는 농할쿠폰(농수산물할인쿠폰)을 남발, 오히려 계란의 소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정부의 정책이 시장을 교란시켜 계란시장이 왜곡돼 버렸던 것”이라면서 “과거를 돌아봤을 때 통상 계란 한판의 가격이 7천원 중반선을 넘기면 자연스럽게 가정 소비가 줄어들어 공급량이 크게 증가치 않는다 하더라도 계란가격이 정상을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강제로 시장에 개입, 할인과 가격억제를 하는 탓에 상대적으로 타 농축산물보다 가격이 저렴해진 계란으로의 소비 쏠림이 발생, 지속적인 계란가격의 상승을 초래해 계란 가격이 장기간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부매장에서는 계란 매출은 전년도의 두배 이상인데 실적은 평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시장질서 자체가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손실 장기화
실제로 올해 현재까지 계란의 소매가와 산지가의 차이는 20% 수준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계란 1구당 40여원. 유통과정에서 운송, 재포장, 보관 등에 소요되는 최소비용이 1구당 평균 50원인 것을 감안하면 유통업계는 연중 내내 손해를 봤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9~’20년 AI가 발생하지 않았을 당시의 소매가와 산지가의 차이(당시 판당 2천63원)는 38%, 1구당 금액으로 계산하면 올해보다 1구당 21원이 높다. 전년도가 평시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올 한해 유통업계의 손실이 얼마나 큰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식용란선별포장업협회 전만중 회장은 “지난 겨울부터 현재까지 계란 유통업 종사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그나마 생산과 유통을 함께 하고 있는 업장의 경우, 손실을 다른쪽(생산)에서 메운다고 하지만 순수 유통만을 하는 업장의 손해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시장(산지)에서 형성된 가격이 실제 상품에 반영이 되는 것이 시장경제인데 정부가 무리한 개입을 통해 시장질서를 왜곡시켜 유통업계의 비용손실만 발생시켰다”고 지적 했다.
가격 인상 압박기조 이어져
당초 지난 11월 산지 계란가격의 약세가 점쳐졌지만 11월 8일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며 이에 따라 유통업계가 계란 재고를 확보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더욱이 일선 마트의 11월 초 할인행사가 겹쳐 강보합세(30구당 4천548원)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소비자가격은 30구당 5천900원 선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인천지역의 한 계란유통 상인은 “계란 가격이 6~7월 보다는 안정됐다지만, 현재도 산지시세와 소매가격의 차이가 구당 40원 수준이다. 계란 한판을 판매할 때마다 수익은 고사하고 400~500원씩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의 계란 가격인상 압박기조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방문해 ‘민생현장 관련 간담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지난 겨울 발생했던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가 가셨기 때문에 계란 30구가 6천원이 넘지 않는 수준에서 안정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계란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같은 홍 부총리의 행보가 정부의 계란 가격 인상 압박의 단적인 모습”이라며 “정부가 계란 한판이 6천원이 넘으면 안된다고 못 박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이어 “평년과 대비해 유류비 및 각종 부자재의 인상과 코로나 19로 인한 인력난이 겹쳐 유통원가가가 급상승한 가운데, 오르는 산지시세를 판매가에 반영도 못해 실제로 느끼는 피해는 더욱 크다”며 “대형할인점이 정부의 압박에 마진을 축소했고, 이에 공급하는 유통업자들은 제값을 받기는커녕 적자를 보면서 납품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지난 겨울 AI발생 이후 국내 생산기반(살처분 농가)을 조기에 정상화시키지 않고 가격인하 효과도 미미했던 계란수입과 유통업체에 가격 인상 자제 압박, 할인쿠폰 행사 진행 등으로 시장을 교란시켜 유통업계를 불황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부의 계란 가격 안정화 정책으로 계란 생산농가에 이어 유통업체들까지도 피해를 입은 상황이지만, 올 겨울 다시 AI가 발생하자 정부는 업계 종사자들의 피해와는 별개로 또다시 계란 가격의 상승 추이에만 요주의 하고 있는 분위기라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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