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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뒤죽박죽 인물史⑧ 동물복지 화두 던진 우드 거쉬


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 시작하며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던 중 책장 깊숙한 곳에서 예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먼지가 쌓여진 채로 방치되어 온 책은 지나온 오랜 세월을 얘기하는 듯 표지의 군데군데 색이 바랬다. ‘The behaviour of domestic animals’, 그 책의 이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Hafez 교수로 1962년에 처음 출판된 책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3차 개정판으로 1975년 출판본이다. 내가 태어난 해에 출판된 책이니 꽤 오래된 책이기도 하지만 한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나로 하여금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은 설렘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파트별로 제목과 원고를 집필한 저자들을 살펴보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대가들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에 한껏 빠져들었다. 그 와중에 Wood-Gush 교수가 집필한 ‘농장동물들의 사회적 스트레스와 복지문제’라는 장(章)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드 거쉬 교수는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정신적인 스승으로 여겨지는데 국제응용행동학회에서는 우드 거쉬 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Wood-Gush memorial lecture’가 진행된다. 국제응용행동학회는 규모가 크지 않은 비교적 조그만 학회지만 로렌츠(Lorenz) 교수나 우드 거쉬(Wood-Gush) 교수 등 동물행동학의 거장들이 활동하던 유서 깊은 학회로 늘 젊은 학자들이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등용문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동물행동학의 기라성(綺羅星) 같은 대가들이 참석할 뿐만 아니라 동물행동 관련 세계적인 연구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학회로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참석을 고대한다. 2019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개최된 국제응용행동학회의 Wood-Gush memorial lecture에서는 옌센(Jensen) 교수가 기조발표를 했다. 기조발표에 앞서 다시 한 번 우드 거쉬 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사가 낭독되었으며 참석자들 모두는 숙연해졌다. 

한쪽 팔을 잃은 불편한 몸으로 동물행동학의 발전과 동물복지의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위대한 학자인 우드 거쉬 교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우드 거쉬(D.G.M. Wood-Gush, 1922~1992)

David Grainger Marcus Wood-Gush 교수는 1922년 11월 20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치안판사였던 영국계 아버지를 둔 젊은 우드 거쉬는 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폭격기의 항해 승무원으로 복무했다. 그러던 중 1944년 휴가를 나온 우드 거쉬는 당시 폭격기 조종사였던 동료와 함께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는데 경미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치료로 인하여 왼쪽 팔을 잃게 되었다. 이후로 평생을 잃어버린 왼쪽 팔에서 느껴지는 환상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런 아픔을 뒤로하고 전쟁은 끝이 났다. 청년의 우드 거쉬는 1948년에 대학을 졸업했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문제와 인종차별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고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에 진학하여 1952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취득 후 가금류 연구센터에서 연구를 시작했으며 1953년에는 부인 Eola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자녀를 두게 된다. 평소 동물의 행동에 관심이 많았던 우드 거쉬 박사는 이후 25년간을 가금류 연구센터에서 동물행동에 관하여 연구했는데 집약축산의 조건과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에 대해 매우 우려했다. 1964년 Ruth harrison의 ‘Animal Machines’라는 책이 발간되면서 영국 사회에서 집약축산의 문제점들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는데 이때 가축 스트레스 등에 관한 박사의 연구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1978년 에든버러 대학으로 이직하여 그곳에서 응용동물행동을 가르쳤다. 다양한 축종들을 이용하여 연구를 했으나 특히 돼지의 야생성에 대한 연구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연구들을 기초로 스위스 출신의 Alex Stolba와 함께 가족단위로 돼지들이 생활할 수 있는 사육 시스템을 고안했다. 이 새로운 사육 시스템은 비용이 크게 들지 않으면서 암퇘지들이 새끼돼지들을 돌보면서 잘 키울 수 있도록 했는데 전 세계의 수의사들과 양돈농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1981년에는 에든버러 대학의 명예교수로 임명됨과 동시에 에든버러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동물행동연구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창립멤버였던 국제응용행동학회의 회장직을 수행했다. 우드 거쉬 교수는 70세를 갓 넘긴 1992년 12월 1일, 회의 참석을 위해 런던의 한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던 도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그는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까지 동물행동연구와 학회의 발전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마치며

우드 거쉬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면서 여러 나라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 투어를 했는데 늘 응용동물행동 및 동물복지에 대한 대학원 과정 개설을 당부했으며 그 중요성에 대한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우드 거쉬 교수가 집필한 ‘농장동물들의 사회적 스트레스와 복지문제’라는 장(章)에는 2명의 공동저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Ian Duncan 박사와 David Fraser 박사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Ian Duncan 교수는 캐나다 구엘프 대학에서 동물복지 철학을 가르치셨고 David Fraser 교수는 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 대학에서 여전히 후학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우드 거쉬 교수를 포함한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변변치 못한 지식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식으로 동물복지를 떠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새로운 화두(話頭)를 쫓게 한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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