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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축산과 농업 그리고 농촌의 미래!><16>지붕개폐우사 발전의 모티브

휴식-채식장 분리지붕 첫 시도…월등한 생산성 효과 체감

  • 등록 2016.11.30 10:34:39
[축산신문 기자]

 

문홍기 명장(장흥축협조합장)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낫으로 베던 일을 경운기모아가 대신하게 됐다. 경운기모아로 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가 조금 말라 건조해지면 경운기에 실어서 계류식 우사와 야외운동장 채식장으로 옮김으로써 초지의 방목만이 아니고도 다두사육이 가능해졌다.
그 당시에는 한우축사의 모두가 계류식 우사로 출발되었고, 설계나 허가의 개념이 없이 소규모로 지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불편함 속에서 어떻게 했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불편함도 모른 채 당연하고 편리한 시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이러한 일속에서도 즐거웠던 것은 높은 축산소득 덕이었다.
젖소 초유떼기 숫송아지가 150만원 까지 거래되었다. 30여년전 육질의 개념이 없던 때였음으로 빨리 자라는 젖소송아지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런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우유 소비가 확대되어 가면서 낙농은 계속 상승세를 타면서 번창하자 목장을 신축해야 했을 정도다.
이때 외국의 후리스톨 유우사와 헤링본 착유실을 접하게 되었다. 계류식 우사의 단점인 운동성 부족과 많은 노동력 투하량, 그리고 번식효율을 개선하고, 자유채식과 스크레파에 의한 축분처리의 장점 등 참으로 대단히 발전된 설계였다.
이 후리스톨 유우사가 후일 지붕개폐 깔짚우사의 모델로 발전되었다. 이 당시의 한우축사는 축협중앙회 안성시범사육장의 중앙동산식 우사였다.
휴식장과 채식장 거리를 35m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 사이에 높다란 황토흙 동산을 두어 한우 암소의 번식에 운동성이 매우 이상적이면서 액비화 방식으로 설계된 우사였기에 새로운 깔짚방식의 한우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액비화 방식일 때는 축협안성목장의 시범사육장은 무깔짚 우사로 전국의 한우농가들의 견학장이 되었고, 농가들에게 자연환경을 이용한 쾌적한 사육시설의 개념을 심어주었지만 깔짚을 사용하는 퇴비화방식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축협중앙회 컨설팅부에 계셨던 유재일 부장님의 지도로 국내 최초로 휴식장과 채식장 개념으로 분리된 후리스톨 유우사를 설계하고 국산 스크레파를 국내 최초 설치했다.
그 당시 국내에 유우사는 양면고정지붕 계류식 우사였으며 양면고정 스레트 지붕의 후리스톨 유우사가 처음으로 대규모 목장에 설치되기 시작하는 단계였으며 한 지붕안에 채식장이 한쪽으로 설치되는 형태였다. 그러나 햇빛과 바람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휴식장과 채식장을 두 지붕으로 분리하여 최초로 신축된 필자의 목장은 다른 목장과 비교하여 여름철 폭염기에 환기성과 쾌적성이 훨씬 좋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또한 필자의 목장은 축사의 쾌적성이 뒷받침되어 한여름 폭염에도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가 훨씬 적었다. 더구나 필자의 젖소들은 최고 수준의 고능력우로 산유량과 유지율 등이 월등했기에 폭염의 스트레스로 인한 유량감소가 보통젖소에 비해 커야함에도 다른 목장처럼 크게 떨어지지 않고 2배 수준의 산유량을 유지하며 월등했으나 마치 자랑을 하는 것 같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한여름 고온다습할 때 다른 목장에는 국산 소형선풍기를 천정에 설치하였으나 필자의 목장에서는 김 공장에서 교체된 중고품대형선풍기를 다수 설치하여 쾌적도를 올려줌으로써 스트레스를 경감시켰다. 여기서의 확신이 지붕개폐우사로 발전하게 된 동기였다.
또한 휴식장과 채식장의 스레트 밑에는 스티로폼 단열재를 사용하여 여름철 단열성이 우수했고 휴식장과 채식장 사이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매우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었다.
어느 날 회진면 바닷가 쪽으로 출장을 나갔는데 김(해태)공장에서 낡은 선풍기를 신형으로 교체하면서 많은 대형 일본산 중고품 선풍기가 나와 있었다. 이 선풍기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작은 국산선풍기보다는 몇 배의 크기였으며 풍량과 풍속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대단한 효과를 냈다.
이 대형선풍기는 채식장 쪽에서 45도각으로 후리스톨 바닥을 향하여 설치하여 소의 입김과 체열, 바닥의 가스 등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고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줌으로써 전체 우사내부를 시원하게 하는 기능을 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많은 농가들의 견학이 있었고 나중에는 국내산 대형 선풍기의 개발로 이어졌다. 
학교 졸업 후 흙벽을 쌓고 초가지붕을 쌔미 모니터식 산란계사로 신축하여 하이라인 산란계를 사육했는데 그 때 쌔미 모니터식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의 쾌적성을 체험했다.
비가 몰아치면 쌔미 모니터식의 공간을 돌림문을 돌려서 막았던 그 때의 생각이 채식장과 휴식장 분리와 지붕개폐의 밑거름이 된 것이었다.
채식장과 휴식장이 분리된 후리스톨 유우사의 시공도 이때부터 환기와 단열성을 생각하며 시설을 했으나 축사를 짓는 기술자가 없어 철공소의 용접기술자로 하여금 짓도록 했다. 그 당시는 칼라C형강도 개발되지 않아 일반철재C형강을 사용했으나 축사의 환기성이 좋은 나머지 녹아내리지 않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정부정책이 바뀌어져 축분을 액비화하여 밭에 뿌려 왔던 것을 액비를 살포하지 못하게 되었다.
휴식장과 채식장 개념으로 그 사이에 비가 내리면 빗물과 섞여 액비화 할 수 있게 지어졌던 후리스톨 우사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벽에 부딪혀 그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축분의 처리 위반단속이 철저했고 엄격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벌금을 물지 않는 농가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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