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곽 춘 욱 고문(건지·벤코코리아)
전북대 겸임교수
1960년대까지 2∼3%를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연평균 인구 성장률(총인구 기준)은 197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가파르게 낮아졌다. 최근까지도 계속 감소(2020년 0.14%)해 우리나라 인구수는 2023년 말 기준 5천175만여명(세계 인구순위 제 29위)으로 인구 5천만명 이상의 나라에 턱걸이했다. 더구나 출생아 수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다 하니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대열에 합류했다는 보도가 엊그제 같은데 마치 선진국이 되려면 인구수가 감소하는 것과 맞물려야 하는 것인 양 동시에 이루어져 참으로 기이하다. 혹시 우리나라도 서양이 걸어온 길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든다.
주지하다시피 서양이 동양에 비해 이미 개인주의가 발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서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일례로 우리가 ‘우리 엄마’, 또는 ‘우리 학교’라고 호칭하는 것에 비해 그들은 ‘My mother’, ‘My school’로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다. 그만큼 서양이 개인주의에 치중되어 있다면, 동양은 집단주의에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양에서 시작된 동물복지가 이제 동양으로 넘어와 우리나라에도 정부 차원에서 동물복지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생산현장에서는 적극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분명 동물복지의 길로 나아가야 함에도 동력(動力)이 약해 동물복지의 보급속도가 떨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한쪽 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두 눈을 가진 사람은 병신취급을 받는다’는 속담이 있듯, 움직이지 않는 다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간혹 다수로 뭉쳐서 의견을 개진하거나 행동하는 국민성이 남달리 높은 경향이 있는데 좋게 해석하면 동양의 집단주의에 강한 문화라고 할 수 있으나, 또 한편에서는 지나칠 정도의 유행성 감성주의(感性主義)에 젖어 있지는 않나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어떠한 정책이나 산업은 반드시 ‘바른 길’로 나아가야만 그 집단은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이에는 반드시 다수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다수도 처음에는 소수에서 시작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원(圓)이 선(線)의 집합체이고, 선 또한 점(點)의 집합체이듯이 모든 시작은 작은 소수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복지 또한 과거에는 모자람의 궁핍으로 인하여 질(質)보다는 양(量)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 질적으로 평안함을 추구하며 나아가야 할 때이다. 즉, 내가 먼저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전환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로움을 가질 때이다. 과거 관심 밖에 있었던 반려동물이 성큼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동물복지도 이젠 우리의 삶 속에 공존할 때가 되었다. 이것은 선진국에 들어선 우리나라에서 공익(共益)의 가치이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익을 지향(指向)하는 공존(共存)의 시대로의 전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가치이기도 하다.
실제 동물복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보면 생산자, 소비자 모두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동물복지 조건을 갖추려면 생산자 입장에서는 소유한 자본력에 비하여 적지 않은 금전적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니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정부도 기존 방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더 진취적인 정책을 입안하여 하루라도 빨리 전체적인 동물복지가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2년여 후로 다가온 동물복지의 실행시기가 임박하여 최근 정부와 의사들 간에 겪고 있는 의료분쟁처럼 몰아치기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도래할 수 있다.
우리가 번성하는 길은 ‘나’ 먼저 바른 길을 찾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긍정(Positive)의 영향’을 미치도록 나아가는 것이다. 말만이 아닌 행동 즉,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우리’가 모두 안타까운 미래를 만나게 된다. 아울러 동물복지는 어느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거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라는 자부심은 어느 한편에서 ‘빨리빨리’라는 우리의 대표어(代表語) 만큼이나 생각도 ‘빨리’, 행동도 ‘빨리’ 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즉시 한다’, ‘바르게 한다’, ‘끝까지 한다’라는 행동강령이 조직문화로 정착되기를 희망했던 필자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것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완전하게 선진국으로 정착되는 길은 이러한 기조가 일회성이 아닌 생활화로 정착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좋은 것은 ‘내가 먼저’, ‘싫은 것은 네가 먼저’가 아니라 과거 IMF의 위기가 닥쳤을 때 전 국민이 ‘금 모으기’에 동참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로 뭉쳤을 때 무궁화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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