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 시작하며
‘파블로프의 개’로 잘 알려진 파블로프 박사의 조건반사에서 시작된 ‘자극과 학습’은 생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행동학이나 심리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파블로프 박사가 비록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자극과 학습을 연구했으나 이후에 이를 기반으로 행동주의의 출현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행동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존 왓슨 박사는 파블로프의 연구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그는 ‘모든 행동은 환경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환경에 의한 심리적 자극과 반응을 연구했는데 그의 행동주의에서 행동은 심리적 자극과 반응의 관점으로 해석되며 무의식적 정신활동에 대한 내용은 거부했다. 다시 말해서 복잡한 행동도 자극과 반응이라는 복합체일 뿐이며, 객관적인 행동의 관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왓슨 박사는 향후에 아동과 육아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아동심리 치료 등에 대해 많은 연구와 저서를 남겼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왓슨 박사는 아무것도 본능적이지 않으며 효율적인 육아와 양육을 위해 환경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왓슨 박사의 이론은 많은 반론을 일으키기기도 했지만 향후에 신행동주의를 낳게 되며 이후에 행동주의에 반대되는 비교행동학이 등장하게 된다.
현재의 동물행동학에서 가장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비교행동학의 반대편에 서 있는 행동주의의 거장인 존 왓슨은 행동학과 심리학을 대중화한 인물이다. 비록 현대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행동치료의 선구자로서 그리고 관련한 이론의 기초연구를 수행한 학자로서의 존 왓슨 박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존 왓슨(John B. Watson, 1878~1958)
존 왓슨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가족을 버렸다. 반면에 그의 어머니는 술과 담배를 금하는 매우 종교적인 삶을 산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왓슨 박사는 어머니의 지독한(?) 종교적 강요에 반감을 느껴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게 되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왓슨은 매우 장난꾸러기였으며 학업 성적이 좋지 못했다고 한다. 가난 탓으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으며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다고 한다. 1903년 시카고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를 마치고 1908년부터 1920년까지 존스 홉킨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왓슨 박사는 심리학을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를 원했고 파블로프 박사의 연구를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왓슨 박사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생리학적 메커니즘으로 간주했으며 행동주의적 개념을 통하여 환경에 의한 행동과 반응에 중점을 두었다. 사실 행동주의 대표자 중 한 명인 스키너 박사는 조건 강화를 통하여 학습의 효과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었으나 왓슨 박사는 이와는 다르게 환경적인 영향이 행동유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이 두 명의 주장은 차이가 있는데 스키너 박사의 경우 행동유발을 위해 보상을 통한 조작적인 조건형성을 했으나, 왓슨 박사는 파블로프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조건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왓슨 박사는 늘 심리학은 의식이 아니라 행동에 집중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존 왓슨은 대학원생 시절에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두었으나, 이후에 자신의 제자이자 조수였던 로잘리 레이너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혼 소송으로 왓슨은 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교수직에서 물러난 왓슨은 광고 대행사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오히려 본인의 역량이 더욱 빛을 발한다. Mexwell house의 커피 광고에서 ‘coffee break’를 대중화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더불어 영유아의 육아에 대한 저서를 발간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레이너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아들을 본인의 행동주의에 따라 키웠으나, 이후 두 아들 모두 자살을 시도했고 한 명은 끝내 사망했다.
1935년 레이너가 35세로 사망했으며 그동안 수많은 기고를 써왔던 왓슨은 1936년부터 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중단했다. 이후 왓슨 박사는 1957년에 미국심리학회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메달을 수상했으며 다음해인 1985년 80세에 코네티컷 주의 자신의 농장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 마치며
존 왓슨과 연관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많이 알려진 ‘little albert’ 실험은 9개월 된 아기 알버트(albert)에게 흰쥐를 가지고 두려움에 대한 조건화를 실험한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알버트에게 흰쥐에 대한 두려움을 조건화시켰는데 나중에는 토끼나 모피코트를 보고도 알버트는 두려움을 느껴 울게 되었다. 이 실험의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반대로 조건화를 통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연구가 소개되면서 행동치료이론의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존 왓슨은 환경에 따라 유아들을 어떤 사람으로도 길러낼 수 있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이 일었는데 ‘환경에 의해 행동이 결정된다’는 본인의 주장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자신의 학설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아들의 자살시도와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는 누구보다 더 많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때로는 윤리적인 문제로 인하여 사회적 비판을 감수해야 했지만 광고에 심리학적 접근을 시도했으며 수많은 기고를 통하여 심리학의 대중화를 이끌기도 했다. 최근에 실시한 조사에서 20세기 가장 많이 인용되었던 심리학자로 존 왓슨이 선정되었는데 이는 행동심리학에 미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존 왓슨 박사의 행동주의적 접근방법은 한계가 있었지만 심리학과 행동학을 한 단계 발전시킨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연구자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