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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단>믿음, 그 허와 실

  • 등록 2019.08.15 20:22:39


김동균 이사장(전 상지대교수, 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믿음은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한 큰 원동력 중의 하나이다. 특히, 종교인들에게는 삶의 최우선 덕목에 두어야 할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생활에 믿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고 나면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위험스러운 물건’임을 알게 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터키 동남부에서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발굴되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게 된 과정을 안내했던 세계 모든 나라의 역사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소위 ‘고대문명설’에 관해서는 그 동안 너무도 다양하고도 황당할 정도의 이설(異說)들이 있어왔지만 이번의 발견처럼 방대하고도 정교하며,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세계 교육계는 ‘인류 문명은 약 1만년 전 농경이 시작되면서 정주문화(定住文化)가 형성되었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 종교, 문화, 국가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이번의 발견으로, 문명발전의 출발점을 농경에서 종교로 바꾸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즉, 적어도 1만1천500년 전에 10만㎡이 넘는 신전을 무거운 석재로 정교하게 제작하려면, 적어도 수 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한 일이며, 그러자면 그들을 먹여야하기 때문에 농경이 뒤따르게 되었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 유적을 분석한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확성을 지니고 있어서 정설로 제기되고 있는 수메르문명(기원전 4,000~5,500년경에 형성된 문명)이, 기록으로 남겨진 인류의 가장 오래된 근거라는 종전의 ‘믿음’을 뒤집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전에는 ‘믿는 마음’ 또는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를 신뢰하고 복종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현상이 없었다면, 종교나 학술이나 국가가 형성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약속이나 모든 거래조차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삶의 바탕이자 현실의 질서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믿음이라는 중요한 현상 뒷면에는 항상 ‘허구와 환상’이 시시때때로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언젠가 언급하였듯이, 수 만년간 공존해 오던 ‘네안델탈인’이 멸종하고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한 인류로 남겨지게 된 결정적인 능력의 차이는 ‘가짜를 진짜처럼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지적(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음미해 볼만 하다. 즉 현생인류에게는 이러한 신비로운 정신적 기능이 있어서 생태계의 승자가 된 것이다. 
믿음과 속임은 정반대 개념인 것 같아 보이는데 이들은 붙어 다닌다. 우리에게 내재된 이 속성은 작게는 개인 간의 다툼을 가져오고, 크게는 권력의 바뀜이나 국가 간 전쟁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그리고 수 많은 형태의 ‘변형된 믿음’과 속설을 남기면서 진화되고 있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 미묘한 존재인지는 필설로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의외로, 매우 단순한 면도 가지고 있어서 반복되는 정보에는 집단적 속임을 쉽게 당하기도 한다. 여러 사람들의 인식은 ‘집단의식’을 형성하며, 이것의 힘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여 사이비 종교도 만들고 집단자살도 유도한다. 이 속성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온 곳은 종교와 정치분야이지만 경제분야에는 더 신속하고 절박하게 작용한다. 가축의 시세는 얼마나 오랫동안 축산인을 울리고 웃겼던가? 그리고, 권력자가 지닌 특이한 발상은 이 땅위에 얼마나 많은 전쟁과 나라의 흥망을 남겼던가? 일반인들에게는 황당무계한 듯 보이는 사이비 종교의 교리는 신도들에게는 진리이자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 현재의 현상은 그 교리와 딱 맞아떨어지는 결과로 여겨진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요물의 정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믿어주어야 한다. 특히, 과학의 반복적인 결과를 믿어야 그 다음의 진보된 진리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은 더욱 합리적인 미래를 향한 공익적 시도로 작용한다.  얼마 전, 축산 현장의 발전을 위해 진솔하게 애쓰는 과학자의 독백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전문가의 활동에 대한 지원체계가 정착되지 못했음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축산업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오는 과정에 전문가들의 현장 서비스에 대한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았으나 현장에서는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과학자들 중에는 조건을 따지지 않고 봉사해 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그에 대한 보상체계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불신’때문인가 아니면 ‘공짜를 바라는’ 수혜자의 이기심 때문인가?
축산업이 현대화되던 초기에는 원로 교수들의 역할이 컸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기능은 농촌지도사나 각 지역 농협조직이 담당하다가 오늘날에는 개인자격의 전문가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은 현장지원업무 자체가 본업이고 급료를 받아 문제가 없으나, 개인자격 전문가들은 일정한 틀도 없이 고기잡이 배처럼 막연한 출항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타덤에 오른 몇 사람을 제외하면, 현장 컨설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생활은 ‘외줄낚기 참치잡이’와 흡사하다.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한국 축산의 흐름도 양축농가의 지속적인 감소, 호당 규모의 증가, 소득규모의 증가가 이어져왔으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부터는 수입이라는 비상대책으로 식단이 채워졌다. 이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관계, 산업현장, 학계가 머리를 맞대어보지만 기술접목의 경계선은 현장지원 전문가들의 몫이다. 반복된 경험으로 제공하는 기술지원이 주는 시행착오적 예방 가치가 정당한 대가를 받는 시대가 성숙된 시대라고 본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했다가 겪은 곤혹이 업계의 장애로 반복되지 않을 때 국가 산업도 건실하게 지속될 것이다. 마무리하자면, 참다운 유토피아란 모든 인류가 성숙된 지성을 갖추어 기존의 물질적 집착, 정신적 편견과 기만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고급가치를 추구하며 지내는 시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