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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낙성대에서>한우고기 빠진 전주의 육회비빔밥

‘맛고을’ 전주 대표 향토음식 비빔밥
들어가는 쇠고기가 한우가 아니라면
전통과 문화의 고장 상징성 무의미

  • 등록 2018.04.06 14:32:33

이상호 본지 발행인

필자는 음식에 특별히 조예가 깊지도 않고, 미식가(美食家)도 아니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맛집’을 고집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가족회식이나 친구들 모임에서 뜻하지 않게 맛집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필자가 맛 집을 선택하는 데는 거창한 원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기준은 있다. 기본적으로 이동거리가 짧고 가성비(價性比)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는 음식에 그 지역의 전통과 문화가 스며있느냐를 본다.
예를 들어 전주에 가면 대체로 비빔밥을 먹고 오는 편이다. 비빔밥이야 말로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맛고을’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황금빛 놋그릇에 담긴 고슬고슬한 쌀밥에 색색의 나물과 육회를 얹어 나오는 전주비빔밥은 입과 눈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가성비도 그만이다.
그런데 며칠 전, 전주의 한 비빔밥집에서 낭패를 경험했다. 지인과 함께 단골식당에서 호기롭게 육회비빔밥을 두 그릇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동석한 지인이 “육회가 한우고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무슨 소리냐며 힐난조로 말하고는 메뉴판을 봤다. 아뿔싸! 육회비빔밥에 들어가는 육회는 물론이고 일반비빔밥에 얹는 익힌 고기 역시 한우고기가 아니었다.
지인은 필자가 가자고 한 식당이니 당연히 한우고기를 쓰는 줄 알았던 모양인데 잠시 잠깐이지만 그때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될 수밖에 없었다. 20년 넘는 단골식당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고 배신감마저 치밀어 올랐다.
메뉴판에 원산지 표시가 있었으니 식당주인이 속인 것도 아니고 한우고기를 쓰지 않는다고 법으로 제재하거나 도덕적으로 크게 지탄받을 일도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20년 이상 드나들면서도 면밀히 살피지 못한 채 으레 한우고기일거라 믿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손님까지 안내한 필자에게 있을 터. 그날 다른 집은 어떨까 싶어 확인 차 가보려고도 했지만 점심을 두 번 먹기도 어려운데다 지인까지 동행한 터라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 후 전주에 사는 친구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했더니 자신도 육회가 당연히 한우고기일거라 믿었단다.
육회비빕밥을 8천원에 제공하는 순천소재 한우고기브랜드식당의 사례를 생각하면 1만3천원을 받으면서도 한우를 외면한 그 식당의 행태는 백보 천보를 양보해도 야속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전주비빔밥은 전통과 문화의 고장 전주를 상징하는 향토음식이다. 전주시가 내놓는 각종 관광안내책자의 먹거리 편 첫 머리는 언제나 비빔밥이다. 그걸 믿기에 비빔밥을 먹겠다는 오직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전통은 그야말로 전통다워야 한다. 다소 불편하다고, 좀 비싸다고 외면해서는 찬란한 전통을 이어갈 수 없다. 전통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우리 후손들은 조상들의 숨결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는가. 전주를 대표하는 육회비빔밥과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한우는 궁합을 따질 것도 없다.
전 국민이 전주가 전통과 문화의 고장임을 인정하고 비빔밥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든 전주의 맛이자 상징인 비빔밥에서 한우가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봄소식처럼 반가운 전주비빔밥의 화답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