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전우중 기자]
“자연과 식물생태계에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꿀벌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의 다양성에 공헌하고 있는 꿀벌이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먹이원인 꿀샘식물(밀원) 부족과 무분별하게 살포되는 농약으로 엄청난 재앙적 상황에 직면해 있음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문을 연 인천시 강화군에서 대를 이어 양봉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정양봉원의 고남섭 대표.
고 대표는 학창 시절 부모님 일손을 거들며 틈틈이 꿀벌에 대한 호기심에 매료되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꿀벌이 좋아 양봉업에 몸담기로 했다.
매년 아버님을 따라 전남 완도를 시작으로 경북 성주와 경기도 가평으로 이어지는 고단한 일상을 우직하고 올곧은 성품 하나로 이동양봉업을 올해로 44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정양봉원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리·정돈이다. 한 번쯤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탄성이 저절로 나올 만큼 정리·정돈의 끝판왕으로 불릴 정도다.
흠 하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지런히 잘 정돈된 양봉기자재를 비롯해 냉장실에 잘 보관된 꿀벌 약품, 사양액을 공급하는 자동화 시스템, 양봉장 한가운데 철길처럼 레일을 깔아 평소에 벌통 속 살피기(내검)와 벌꿀 채밀시 편리함을 한층 더했다.
고 대표는 “최근 기후변화가 자연생태계는 물론 꿀벌의 생육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꿀벌 바이러스성 질병 확산과 약제 내성에 의한 병해충 발생 빈도가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환경이 결국 꿀벌의 생육에 지장을 초래하여 꿀벌집단 폐사로 이어진 것”이라고 최근 꿀벌이 사라진 원인을 이같이 진단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여러 상황에 대해 미리 대처하기가 매우 힘든 조건이다. 난개발에 따른 먹이원도 부족할뿐더러, 이러한 환경에서 꿀벌을 보호하고 양봉산업을 국가 산업으로 발전 육성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렇다 보니 정책과 지원은 매년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정양봉원은 강화군 선원면 창리산 일대 7천여 평 규모의 야산에 붙어있는 텃밭에 200평 규모의 양봉장을 마련하고 삶의터전을 일궈왔다. 1970년대 아버지께서 육지에서 꿀벌 한 통을 구해 온 것이 오늘날 계기가 되어, 300여 벌통을 기를 수 있는 전업농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정양봉원은 꿀샘식물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양봉장 뒤편 야산에 밤나무를 비롯해 헛개나무, 산수유, 매실나무, 벚나무, 엄나무 등을 심고 가꾸고 있으며, 양봉장 주변에도 수천 그루의 야생화, 회양목과 쥐똥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어 봄철 꿀벌이 화분을 채취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고 있다.
이곳 이정양봉원도 최근 전국을 휩쓸고 간 꿀벌집단 폐사로 인한 피해를 벗어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응애를 잘 관리했는데도 총 350여 벌무리(봉군) 가운데 지난 2022년 8월 21일부터 꿀벌 개체 수가 확연히 줄어들더니, 결국 120여 벌무리만 겨울나기(월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듬해 봄에 벌을 깨워보니 100여 통에 남아 있던 꿀벌은 온데간데없고 겨우 20여 통만 남아 큰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현재는 80여 벌무리만 사육 중이다.
이어 고 대표는 “꿀벌 질병과 응애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적기 방제가 매우중요하다. 나 혼자만 방제를 잘한다고 해서 결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주변농가들까지 다 동참해야 비로소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양봉농가의 무분별한 약제 사용도 문제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체계적인 데이터와 매뉴얼이 부족한 것도 피해를 확산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 양봉농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라 생각한다. 더 좋은 환경에서 꿀벌이 자랄 수 있도록 주변 환경개선에 힘쓰겠다”며 “정부도 국내 양봉산업 미래를 위해 지속적으로 수벌 종자 육성과 여왕벌 품종 개량, 그리고 농가 지원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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