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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9> 한우의 경제가축화 가능성에 관한 조사

  • 등록 2015.10.14 10:36:39

김강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64년 한우농가 118만 호 1백35만두 사육…경제가축 가능성 타진
퇴근후 도서관으로…역사적 기록 찾아 종합 정리

 

본인은 농촌진흥청 시험국 연구기획과에 근무하면서 제1차(1962~1966), 제2차(1968~1972) 정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한우의 경제가축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예측했다.
1964년 말 현재 전체농가 220만호 중 한우 사육농가 118만호, 사육두수 1백35만두(호당 1.1두)의 경제가축 가능성에 대한 방향검토가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910년대의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1930~1940년대의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 사업보고서와 1945년 해방이후의 축산시험장 연구사업보고서가 그것이다. 한우의 경제가축화 가능성을 조사 분석 정리하여 1967년 농사시험연구총서 제12호 한우에 관한 연구 총서로 발간했다.
한우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 하였으며 축우의 최고 유적은 김해패구에서 발견된 골각기와 수골중에 야생우가 아닌 가축우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고문에 발표되었다.
이전부터 축우가 원시농경에 사용되었다는 고증을 찾을 수 있고 역사에 나타난 고구려시대에 만들어진 평남 용강군 소재의 벽화에 우차도가 있어서 당시 축우가 물자운반이나 교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우에 관한 최고기록으로 신라 22대 자중왕 3년(AD 503) 고사통에 기록된 것을 보면 왕은 여러 고을에 명하여 우경(牛耕)을 권장했다고 되어 있다. 그 후에도 역대의 왕조는 소에 대한 정책을 농사의 중요한 기본정책으로 삼아왔다.
한우 사육에 관한 최고기록은 고려 예종(睿宗)13년 당시 전목사(典牧司)가 정한 각 목감장(牧鑑場)의 축우사료식(畜牛飼料式)에 권장하는 기록이 있고, 이조시대에 와서도 농업에 관한 고서중에 소 사육 및 병치로 등 10종의 고서에서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연대별 한우사육두수를 보면 1915년 기준 1백35만3천두에서 1940년에는 1백74만두였다는 통계자료를 볼 수 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당시 남북이 갈라지기 전 1944년의 남한에서 사육된 한우는 59만7천두, 그 이후 6.25 한국전쟁중인 1950년에는 39만2천660두로 줄었다가 1960년에는 1백만1만두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되던 1962년 1백25만2천두 그 이후 국민소득 증가에 따라 소고기 수요가 증가되었다.
◆한우의 발육능력
 1916~1921년까지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사업보고 한우의 발육에 관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수소의 생시체중은 24.4kg, 3개월 체중 67.3kg, 6개월 체중 104.6kg, 12개월 체중 173kg로 외국 육우에 비해 발육이 현저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1965년 축산시험장 한우의 품종보존 및 한우의 능력조사 보고에서도 수소 생시체중 24.8kg, 2개월 56.5kg, 6개월 109.3kg, 12개월 158.3kg로 1910년대와 1960년대의 한우체중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한우의 역용능력
 1960년대 이전까지는 논밭의 경운과 생산된 농산물 및 농업생산자재의 운반으로 우차(牛車)를 100% 이용하였기에 역용능력으로 경운용 쟁기를 끄는 견인력(牽引力), 집을 운반 할 수 있는 부중력(負重力) 등을 1934년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최대 견인력은 체중의 70% 내외, 부중력은 체중에 280% 내외로 한우의 역용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조사보고 하였다.
◆비육(산육)능력
 1922~1939년까지 조선총독부 농사시험장 사업보고 한우의 육용능력에 관한 조사연구보고에 의하면 연령대별 비육기간에 따른 일당 평균 증체량은 629g이며, 성별 및 연령대별 도체율 조사결과를 보면 평균 55.1%로 발표한 자료도 있다.
해방이후 1965년 축산시험장에서 4~5세를 기준으로 한 연령별, 비육기간별 비육시험결과 일당 증체량은 750~690g로 비육기간별로 차이가 없으나 도체율에 있어서는 비육일수가 길수록 높아지는 경향이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 조사에서는 90일 비육이 4천454원으로 제일 높은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본 시험의 90일, 120일의 일당 증체량이 840g과 708g에 비해 1972년 축시 비육시험의 일당 증체량은 1천30g과 1천g으로 비교할 때 과소평가된 비육능력으로 볼 수 있다.
◆발육과 비육
1965년 축산시험장 사업보고서에 의한 수소의 생시체중은 23.6kg, 3개월은 65.1kg, 6개월 117kg이다.
이상과 같이 한우송아지의 생시체중은 일본화우, 미국앵거스, 헤어포드와 큰 차이가 없으나 일반성장, 비육시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발육 및 비육능력개선 없이는 경제가축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며, 농민의 한우사육의 경제적 필요성이 상실되었을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목표달성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쇠고기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축산을 전공한 농촌진흥청 연구기획을 담당하는 연구관으로서 축산분야의 당면한 큰 연구과제로 제기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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