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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相生畜産’ / 5. 잘못된 농업관의 교훈

공업 치중한 영국, 주곡 수입의존…1차대전 시 식량난 폭탄
논에 사료작물 재배사업 순기능 커 안성맞춤

  • 등록 2018.05.16 11:06:56

[축산신문]


전 농협대학교 총장


▶ 잘못된 농업관은 농업만 쇠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일찍이 산업혁명을 일으켜 선진공업국의 기틀을 다졌던 영국은 공업생산만 믿고, 1846년 곡물법을 폐지해 식량조달을 해외에 의존했다가 큰 시련을 겪었다. 당시 영국 의회는 자신들의 공업생산력을 과신한 나머지, 공업을 진흥시켜 번 돈으로 식량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오는 것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비교우위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은 주곡인 밀의 자급률이 19%까지 하락한 상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맞았고, 부족한 식량을 수입하기가 어렵게 되자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온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업투자를 확대해, 1978년에는 곡물자급률이 77%로 회복되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곡물을 수출하는 나라로 변모했다.


▶ 필리핀은 세계에서 쌀 생산량이 많은 나라 중의 하나였다. 기후조건이 유리해 연간 3모작까지 경작이 가능한 쌀 수출 국가였다. 우리나라가 필리핀에 벼 육종연구소를 설치해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육종해낸 것도 필리핀의 연중 따뜻한 기후를 이용한 성과였다. 당시만 해도 필리핀은 벼 육종과 재배기술이 우리나라보다 앞서있던 나라였다. 그러나 필리핀은 산업화과정에서 벼 재배를 등한시한 결과 쌀 생산농가는 소득이 떨어지자 몰락해 갔고, 급기야는 수출은 고사하고 자국민이 먹을 쌀조차 생산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제는 쌀 생산기반이 무너져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다.


▶ 반면에 일본은 쌀 자급을 중요한 농정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경제발전 초기단계부터 농업투자를 통해 쌀 생산기반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일본은 1960년대 중반부터 계속 쌀 자급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쌀 소비감소로 재고가 늘어나자 1970년대부터 쌀 생산조절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래 식량부족사태 등 유사시를 대비해 논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벼 대신에 밀이나 메밀 등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하고, 참여농가에게는 보조금을 주고 있다. 이러한 논의 전작(轉作)을 통해 밀의 자급률도 7%까지 끌어올렸다. UR이후 일본은 주식(主食)인 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쌀농사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곡물의 자급률은 23%대에 불과하지만 쌀 자급률은 100%를 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듯 쌀을 자급할 수 있었던 것은 쌀 생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생산기반을 확충해왔기에 가능했다. 또한 벼 재배 농민의 소득안정을 위해서 도입한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금제도(고정직불금과 변동직불금이 있음)는 쌀 생산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벼를 재배해서 얻는 소득은 ha당  약 700만원으로 매우 낮으므로 소득보전제도가 없었더라면 쌀 생산기반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간에는 “쌀 직불금으로 너무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그러니 쌀이 넘쳐나 재고가 쌓이고 보관비용만 늘어난다. 쌀 생산을 줄여야 한다. 쌀값이 높으니 농민들만 배부르고 서민들은 손해다.”며 쌀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만약 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없었다면 쌀이 부족해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가. 배고픔의 서러움이 어떤 줄 짐작이라도 한다면, 이제라도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축산업의 중요성을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정부는 2015년 말 ‘중장기 쌀수급안정대책’을 발표했는데 그 주요 골자를 보면 생산감축 방안으로서 벼 재배면적 축소, 논에 대체작물 재배 확대, 사료용 벼 재배 활성화 등이고, 소비확대 방안으로 저소득층 쌀 판매가격 인하, 쌀막걸리 장려, 일부 재고 쌀의 사료용 전환사용 등이다. 발표 내용 중 쌀의 사료화를 놓고 “사람이 먹는 쌀을 어떻게 가축에게 먹이느냐”는 부정적인 여론도 많이 있었으나 이는 생산조절을 통해서 해결할 일이다.


▶ 그런데 생산 감축대책 중, 대체작물로 무엇을 재배할 것인지가 문제다. 만약 농가들이 어떤 특정작물을 많이 선택해서 집중화되면 재배면적이 급격히 늘어나 생산과잉으로 인한 가격폭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체작물 재배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논에 사료작물을 재배하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벼를 수확한 뒤에 월동작물로 호맥을 심어서 봄에 조사료로 이용하자는 ‘답리작사료작물재배’를 권장한 때가 있었으나, 모내기 시기가 빨라지면서 호맥의 수확기와 겹쳐 한계에 부딪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논에 주작물(主作物)로 사료작물을 재배하는 것이므로 그때와는 다르다. 봄에 사료용 옥수수를 파종하고 8월경에 옥수수 사일리지를 생산해 겨울 조사료로 활용하고, 가을에 호맥을 파종해 월동 후 봄에 호맥 사일리지를 생산하면 된다. 재배할 작목은 지역여건에 맞도록 수단그라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유채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 우리나라의 연간 조사료(건초 및 사일리지) 수입량이 자그마치 90~100만 톤에 이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쌀 생산량을 줄이고, 대신에 조사료 생산량을 늘리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료작물 재배 시 가축분뇨를 유기질 비료로 사용하면 화학비료 사용을 줄이면서 가축분뇨의 자원화를 저절로 실현할 수 있으니 이 효과까지 더하면 일석삼조(一石三鳥)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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