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을 넘기면서 양측이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이란과 전쟁을 벌여 세상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군사 및 핵 관련 시설을 단번에 초토화하고 이란의 최고지도부를 포함한 정권 수뇌부 강경파들을 모조리 제거해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예상과 달리 장기전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파상 공격에 맞서 이란은 인접 국가들에 있는 미군 시설과 미국대사관은 물론 에너지 시설들에 대한 공격도 감행하고 있다. 전쟁에 개입하기를 꺼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은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어 자칫 중동 전체가 화염에 휩싸일 위기에 처했다. 개전 즉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버렸고 예멘에서 활동하는 친이란 후티 무장단체도 참전하면서 홍해마저 봉쇄될 위험에 처했다. 화약고인 이란의 뇌관을 터뜨림으로 인해 원유를 비롯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은 물론 헬륨, 나프타, 요소 등의 공급망이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들 가격은 폭등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중동산 원유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가장 큰 국가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름을 실은 유조선들은 한 달 이상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해 원유 공급 차질로 비상이 걸렸다. 국내 비축 재고로 견딜 수 있는 기간은 계산상으로는 2개월 남짓이다.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우회로를 통한 원유 확보,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 중남미, 아프리카 등으로부터의 수입도 모색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다. 원유 자원안보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하고 비축유 스와프 제도, 석유 최고가격제, 공공기관 차량 2부제 등을 시행함은 물론 추가경정예산도 마련한 상태다.
이란 전쟁으로 인한 원유 공급망 위기는 사료원료 시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 차례의 애그플레이션과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사료원료에서 공급망 위기를 겪었던 적이 있다.
사료원료 시장의 공급망은 원유 시장과 달리 전쟁이나 팬데믹과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물류 시스템 마비,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국의 생산량 급감과 수출 통제 등에 의해 쉽게 훼손될 수 있다.
과거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이 생산 악화로 곡물 수출을 통제해 애그플레이션을 초래했으며 우리나라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공급망 위기 때마다 중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대안들이 나왔으며 식량 안보라는 큰 틀 속에서 사료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계획도 세웠으나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춰놓지 못했다. 시장이 불안해졌을 때만 잠시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가 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다시 가라앉히는 일만 반복해 왔다.
국제곡물 조기경보시스템은 구축되어 있으나 수출국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 속수무책이다. 해외자원개발을 통해 사료원료들을 사전에 확보해 비상시 반입하는 정책도 펼치고 있으나 여러 제약적인 조건으로 인해 해외에서 대규모 영농을 통한 원료 조달은 쉽지 않은 상태다. 가장 안정적인 것은 원유처럼 비축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지만 정부가 굳은 의지로 추진해야만 가능하며 민간 기업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기란 어렵다.
현시점에서 고려할 만한 것은 공급망 다변화 정책이다. 원유를 대부분 중동에서 사들이고 있는 것처럼 주요 사료원료도 일부 국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옥수수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대두박은 브라질에서, 밀은 미국, 호주, 동유럽 국가에서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료원료의 수급을 순전히 민간에게만 맡겨놓고 있으며 필요한 물량을 선도구매로 수입해서 단기간 보관했다가 사용하는 구조여서 공급망이 흔들리면 고스란히 그 충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원유 시장과 달리 비상시에는 긴급 구매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공급받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문제다. 항해 기간이 20일 정도인 미국 북서부 지역을 제외하면 미국 걸프나 남미, 동유럽에서 도입하기 위해서는 항해일수만 40일이 넘게 걸린다. 옥수수, 밀, 대두박 같은 주요 사료원료의 현행 구매 형태는 원산지를 다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어 문제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국제 공개경쟁입찰 방식과 원산지 공급자 선택으로 한 번에 6만 톤 정도의 물량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주로 세계적인 메이저 공급자들이 공급권을 가져가게 되고 원산지는 가장 저렴하게 대량으로 공급이 가능한 국가를 지정하게 되므로 원산지 쏠림 현상은 심하다.
원산지 확정 이후 해당 수출국이나 수출자가 불가항력의 사유를 들어 공급 시점에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달걀을 한 바구니 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있듯이 원산지 다변화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아야 한다. 구매가격에만 매몰되다 보면 원산지 쏠림 현상은 피할 수 없게 되므로 원산지 분산 구매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중동발 원유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료 산업의 위기는 곧 축산의 위기이며 우리 국민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라는 점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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