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윤재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장
농촌의 미래를 다시 묻다: 기본사회라는 새로운 상상
2025년 2월 새정부 출범 이후 민주연구원은 ‘기본사회 사례집’을 발간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사회’란 단순한 소득 보전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누구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재설계하자는 제안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이러한 ‘기본적 삶’을 고르게 보장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이 질문은 특히 농촌에서 더욱 절실하다. 올해 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농가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2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지역 소멸’과 ‘농촌 위기’가 더 이상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라 통계로 확인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농촌을 어떻게 유지하고, 누가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서, ‘기본사회’라는 개념은 농촌의 미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위기의 농촌, 농업은 중요하지만 농촌은 관심 밖
농촌 소멸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국민들의 농업·농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나타나 우려를 더한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농업인과 도시민 모두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농업정책과 농촌 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2023년 36.7%에서 2025년 26.2%로 크게 낮아졌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위해 추가 세금 부담에 찬성하는 응답 역시 같은 기간 감소했다.
이는 농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농촌의 현실에는 거리감을 두고 있는 인식 구조를 보여준다. 식량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생산되는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 셈이다. 농업과 농촌이 분리된 채 이해되는 이 간극은 정책의 지속성과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만든다.
더 나아가 농업과 농촌은 식량 시스템의 핵심 축인 동시에 기후변화의 피해자이자 배출의 원인이 되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다. 단순한 보호나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중심에 놓여야 할 영역이다. 이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농촌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기본사회 성장모델, 삶의 토대에서 출발
기본사회 성장모델의 핵심은 성장의 출발점을 바꾸는 데 있다. 관건은 어떻게 농촌에서 사람들이 정주하며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느냐이다. 기존의 성장 논리가 생산성과 효율, 경쟁을 앞세웠다면, 기본사회는 소득·교육·의료·교통·돌봄과 같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성장의 토대로 삼는다. 삶이 안정되어야 개인의 역량이 축적되고, 그 축적된 역량이 사회 전체의 혁신과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농촌기본소득과 농민기본소득은 분명 의미 있는 정책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만으로 농촌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교육, 의료, 교통, 돌봄과 같은 기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함께 확보될 때 농촌은 비로소 ‘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른바 보편적 기본서비스란 현금 지원이 아니라, 돌봄이나 의료, 재취업처럼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제공하는 서비스 체계를 뜻한다.
어린이집과 병원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농촌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의료와 돌봄 문제다. 병원이 멀고 응급 상황에 취약하며, 돌봄의 부담이 가족에게 집중되는 구조는 농촌 이탈을 가속화해 왔다. ‘기본사회 사례집’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의료와 돌봄을 지역 중심으로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대형 병원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일차 의료와 지역 기반 돌봄을 강화하고, 의료생활협동조합이나 지역 주치의, 통합돌봄과 같은 제도를 통해 ‘가까운 곳에서 진료받고 서로 돌보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공동체의 기능이 회복될 때, 농촌은 더 이상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전환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설치보다 중요한 것은 ‘유지’와 ‘참여’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농촌에서 기본사회를 실현하는 데 있어 핵심은 제도를 새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이미 마련된 제도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느냐에 있다.
서울대 평창캠퍼스의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평창에는 기본사회 성장모델에 필요한 요소들이 비교적 충실히 갖춰져 있었다. 일자리를 위한 연구기관과 대학, 교육을 위한 어린이집,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원, 문화생활을 위한 공연과 전시 공간까지 물리적 기반, 즉 하드웨어는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이집은 특정 집단만 이용하는 공간이 되었고, 의료원은 책임 있는 운영 주체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문화 공간 역시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다. 문제는 시설 자체가 아니라 운영과 연결의 부재였다. 정권 변화와 함께 행정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지역 주민과 행정이 함께 고민하며 제도를 가꾸는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제도는 위에서 내려왔지만, 지역이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구조는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운영과 협력, 그리고 주민 참여다. 정권과 무관하게 지역이 스스로 필요를 논의하고, 행정과 주민이 함께 제도를 조정해 나갈 수 있을 때 정책은 비로소 지속성을 갖는다. 기본사회는 중앙정부의 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방정부, 지역 공동체, 협동조합, 시민사회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