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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현실 결정하는 GOK의 실체

  • 등록 2019.09.04 10:52:01


김동균 이사장(前 상지대 교수, 강원도농산어촌미래연구소)


의학계에서는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 GOK라는 말이 있다. ‘God only knows’의 약자이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사람이 살고 죽는 일에는 항상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는 곧 죽을 사람인데 뜻 밖에 건강을 회복하면서 오래 살아남는 이가 있는가하면, 여러 바이탈사인(vital sign, 호흡, 혈압, 맥박 등 건강의 척도가 되는 1차적 반응)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환자가 밤사이에 절명해 버리는 일이 큰 병원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의학계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많은 영역의 일들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다’라고 기대했던 일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현실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크게는 국가 간 외교관계도 나타난다.
작년만 해도 남북 정상회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긴장관계가 완화되고 조만간 평화기류가 찾아올 것을 기대했으나 지난해 가을 트럼프가 하노이 정상회담의 판을 깬 후 다시 국면이 꼬이더니 판문점 깜짝쇼를 벌이면서 잘 풀리려나 싶었는데 또다시 반전상황을 보게 되었다. 그 전 같으면 난리법석을 떨법한 미사일 쇼가 반복되어도 우리나 미국은 어정쩡한 반응만 보이면서 판을 깨지 않으려는 정성(?)을 들이고 있다. 핵을 코앞에 둔 우리의 입장은 더 절실하지만, 이 문제야말로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일본의 무역조치로 연일 이 문제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극과 극으로 치달아,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지 현재의 눈으로 볼 때 더더욱 오리무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국(時局)에서 축산인은 무엇을 어찌해야 하나? 자주 언급해 왔지만, 한국의 축산software는 세계 정상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 말엽부터 불어 닥친 세계적인 무역자유화바람과 국가 간 농업보호정책의 견제, 수요공급의 조절문제 등으로 국내 식탁의 상당 부분이 수입축산물에게 잠식당하면서, 식량자급화 문제는 ‘비교우위론’에 밀려 이미 논쟁거리도 되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축산물자급률 방어의 중요성을 논하던 관련기관들의 목소리도 잦아들면서 이제는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를 설득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과거에는 걱정거리가 아니었던 현상들이 잠시 염려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가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흐름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냉철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필연의 결과이다. 즉, 이러한 현상들이 ‘말도 안되는 일’로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관념적 상상이 실상(實相)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내면서 실상이 닥쳤을 때 그것을 보고 놀라는 일을 자주 접하면서 살고 있기에 ‘GOK’를 말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현상도 우연으로 나타난 것은 없으며,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필연의 결과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한국 축산’의 좌표는, 당연한 결과물이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행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가변적이다. 뜻밖의 변수를 맞이하여 크게 흥할 수도 있지만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다가 때를 놓쳐 빠르게 소멸될 수도 있다. 불행을 막으려면 현실을 ‘바르게 보아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바르게 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업계라는 거대한 대상을 윤곽에서부터 현장의 세세한 문제들까지 하나의 눈으로 꿰뚫어 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명산의 전체모습과 그 산 계곡의 나무와 풀을 모두 식별해내야 하는 일처럼 어렵다. 이것을 해 보자고 여러 기관이 존재하며, 관측결과와 예상이 수시로 제공되지만 그것을 현실에 반영하는 과정에 또 굴절이 작용한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처음 가보는 도시와 같다. 그러므로 직접 가보아야 실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행자에게 목적지의 지명이 있듯이 한국축산의 미래상에도 목표가 있다. 그런데 설정한 목표와 현실이 불합치 되었을 때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소리는 ‘정부가 하라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살 길이다’라는 말이었다. 이 상황은 ‘현실 바로보기와 미래 예측의 어려움’을 나타내는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목표를 바르게 설정하려면 거시적, 미시적 관점을 병행시켜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미래는 융·복합적 현상이 보편화될 것이지만, 인간은 생물체의 울타리를 뛰어 넘을 수 없다. 수명의 한계가 있고, 살아 있는 한 먹고 배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류에게도 먹이의 형태와 분량의 변화가 올 것이다. 그럼에도 멸종되지 않는 한 영양생리의 기본 틀은 깨지지 않을 것이고, 선호해 오던 음식물의 기반에도 큰 변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축산업은 존속·확대되며, 생산방법은 반드시 변한다. 
미시적으로는, 지구자원의 한계와 생태계변화를 인식하여 생명산업은 ‘분자 순환적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하고, 자원경제를 고려하여 원자재 효율증진의 key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축산업도 에너지관리 효과를 생각한다면 동물자원 생산의 재료가 무엇인지 근원적 해석이 필요하다. 즉, 동물은 에너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일 뿐이며, 에너지 생산자는 오직 식물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터 잡혀야 하며, 동시에 식물자원의 생산, 보존(가공), 및 동물이용의 과정을 철저히 파 헤쳐, 전환과정마다 파생되는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돈 되는 쪽’에만 관심이 몰려 있고, 시간 걸리고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원천적 해석 작업에는 무심하니 ‘바로 보기’가 제대로 되겠는가? 정책 관련자들이 현란한 표면적 변화에 집착하는 한, 한국축산의 미래는 소멸의 길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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