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정부가 ‘농식품 수급·유통구조 개혁 T/F’ 발족과 함께 돼지가격 보고제 도입을 그 선상위에 올려놓았다.
정부가 밝힌 T/F의 취지대로 라면 도매시장 가격으로 이뤄지는 현행 돼지거래 체계를 ‘불합리한 유통구조’로 판단, 육가공업체들로부터 보고받은 돼지가격을 공개함으로써 새로운 돼지거래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농산물에 대해 산지와 소비자 가격의 연동을 강조해 온 그간 정부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정부 기대와 달리 산지와 소비자 가격의 흐름이 빈번히 어긋나고 있는 돼지 시장에 대한 거부감이 이번 T/F에 반영됐다는 의미다.
중간 유통-육가공 분명한 ‘차이’
하지만 산지와 소비자가격의 상호 민감성이 일반 농산물에 비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국내 양돈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이러한 접근 방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국내에서 출하되는 돼지의 직접 수요자로서 산지와 소비시장을 연결하고 있는 육가공업계의 역할부터 원물 수준 그대로 중간 유통이 이뤄지는 일반 농산물과 차별화 된다.
공산품 정도는 아니더라도 육가공업체들은 돼지의 도축, 해체 과정을 거쳐 다양한 형태의 1차 가공 제품을 소비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다른 공산품 처럼 산지(원자재)와 소비 단계(완제품)의 수급이나, 가격 추이에 간극이 벌어져도 특별히 이상할 게 없다.
산지, 수요 보단 공급 민감
이와 함께 국내 육가공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패커’의 계열화사업 구조는 산지와 소비시장의 분리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사료에서부터 도축, 가공, 유통사업 등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이들 패커 입장에서는 오로지 육가공만 취급하는 전업 형태의 중소규모 육가공업체들과 달리 수요 보다는 공급에 더 민감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추세는 육가공업계와 함께 산지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도매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공급자, 즉 양돈농가 중심의 시장 흐름이 형성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소비단계, 철저히 수요자 중심
반면 소비 시장은 철저히 수요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물가 관리 품목인 삼겹살만 해도 수입 제품을 포함해 다양한 대체 선택지가 존재하다 보니 공급자인 육가공업계로서는 산지 가격과 관계없이 시장의 저항가격을 넘어서는 수준의 판매가격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산지와 소비지, 즉 돼지 및 돼지고기 수급과 가격이 ‘정비례’ 관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육가공산업계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 반박할 수 없는 근거 아닌가.
더구나 산지는 공급자, 소비지는 수요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금의 시장 구조는 ‘농업인과 소비자 모두 만족하는 유통구조 개혁’ 이라는 T/F의 목적 자체를 무색케 한다.
농가, 선택지 사라질 수도
물론 돼지가격 보고제 도입이 현실화 된다고 해도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산지 시장에 반영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절대 간과해선 안될 것 이 있다.
돼지가격 보고제는 정부가 돼지 도매시장 가격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는 돼지 도매시장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칫 도매시장 자체가 문을 닫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돼지를 출하해야 할 양돈농가들은 육가공업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게 되면서 급속한 계열화의 진행과 함께 미국과 같이 산지와 소비시장 모두 몇 몇 대형 패커에 의해 좌우되는 양돈산업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계열화 사업 자체를 부정하는 건 결코 아니다.
시장 논리에 따른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정부에 의한 양돈산업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질 수 밖에 없다.
‘물가’ 에 초점을 맞춘 섣부른 정책이라는 의혹만 부풀려 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을 기 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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