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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에서>가정의례법의 추억과 김영란법

 

이상호 본지 발행인

 

"김영란법 취지 좋지만 한우산업 생존권 위협"
"FTA 시대 농어민 시름 감안 보완대책 반드시 마련돼야"

 

필자는 가정의례법과 관련한 추억이 하나 있다.
중3 때로 기억되는데 코흘리개였던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친척 결혼식에 간 적이 있다. 결혼식이 끝나면 불고기를 먹는다는 말을 들은 터라 군말 없이 따라 나선 우리는 식이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지루했던 동생이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빨리 고기 먹으러 가자고 떼를 쓰는 바람에 주위의 시선이 우리 모자에게 쏠렸다. 그때 당황해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일이 있은 뒤 결혼식 피로연이 금지대상이며 발각되면 처벌 받는다는 걸 알았다.
당시엔 청첩장이나 답례품도 금지사항이었다.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제정(1973년)되면서 혼례와 상례 등 가정의례는 공권력의 규제를 받게 됐다. 법이 시행되면서 여기저기서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졌고 온갖 편법이 판을 쳤다. 하객들은 혼주가 비공식적으로 정해 놓은 식당으로 알음알음 눈치껏 찾아가야 했으며 청첩장은 일반편지로 바뀌었고 일부에선 식대를 하객 손에 쥐어 주는 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정의례법은 편법만 양산했고 실효성 있는 단속도 불가능했다. 대놓고 말을 못했을 뿐이지 국민들의 정서적 반발이 워낙 거셌다. 이 법은 우여곡절 끝에 민관합동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의 건의로 1998년 공식 폐지됐다.
요즘 최대의 이슈인 김영란법을 가정의례법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전통적 관습을 규제한 가정의례법과 달리 김영란법은 부정청탁방지라는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법이란 점에서 명분도 있고 여론도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맹점은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법적용대상자는 5만원이상의 선물이나 3만원이상의 식사대접은 금지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 가정의례법 당시와 비슷한 기상천외의 편법이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3만원 이상의 식사대접을 하고 식당주인에게 인원수를 늘리도록 부탁하는 ‘묘안’을 찾으려 할지 모를 일이다.
일종의 ‘물타기’겠지만 사립학교 교원과 유치원, 언론종사자까지 포함 줄잡아 300만 명이 이 법의 적용을 받도록 한 것도 문제다. 김영란법은 한우와 굴비, 전복을 생산하는 농어민들이 매출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품목은 5만원 미만의 선물꾸러미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이 기준이 일반적 선물관행의 잣대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농어민 살자고 부정부패를 방치하자는 게 아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해당산업과 종사자들의 심각한 생존권위협은 충분히 재고해볼 사유가 된다. 김영란법은  FTA의 가장 큰 피해산업이 농축산업계라는 엄연한 사실이 감안되어야 한다. “FTA에 만신창이가 되고 이젠 김영란법에 죽는다”는 농민들의 아우성은 결코 엄살이 아니다. 법 취지를 살리면서도 한우 등 농축산물은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는 게 지나친 요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 나라 농축산업은 미래가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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