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기자]

검역본부, 국제기준·국내실태 반영 수의용 그룹 마련
항생제는 가축의 세균성 질병을 치료해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이 늘어날수록 항생제 내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항생제 내성은 축산분야를 넘어 사람·동물·환경이 함께 대응해야 하는 공중보건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 항생제는 ‘필요할 때 쓰는 약’이라는 인식을 넘어 ‘어떤 항생제를 얼마나 신중하게 관리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전부터 항생제 내성 문제를 국가 차원의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람 의학에서 중요한 항생제를 HPCIA, CIA, HIA, IA 등으로 분류해 이에 따른 위험관리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도 동물에서 사용하는 항생제를 VCIA, VHIA, VIA로 나누어 관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공중보건상 중요도가 높은 항생제부터 우선 관리해야 한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연합은 항생제를 A, B, C, D그룹으로 구분해 그룹별로 사용 제한과 신중 사용 원칙 등의 관리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사람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항생제는 동물에서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사용형태, 사용 기간, 대상 동물 규모, 위해평가 결과를 종합해 위험수준별 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 역시 식품을 통해 사람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세균과 관련해 항균물질 중요도를 구분해 평가와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기구와 선진국은 이미 ‘중요도 분류-위험평가-위해관리’로 이어지는 체계를 갖추고 항생제 내성에 대응하고 있다.
국내 수의용 항생제는 축산현장의 사용 실태와 내성 수준, 축종별 특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체계적인 그룹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우리나라 축산업은 돼지, 소, 닭 등 주요 식용동물의 사육 비중이 크다. 국내 항생제 사용 양상은 축종, 제형, 투여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아울러 국내 가축과 축산물에서 항생제 내성은 전반적으로 높다. 특히 사람의 심각한 질병 치료에 사용하는 플로르퀴놀론계, 3·4세대 세팜계 항생제 내성이 최근 증가 추세에 있다.
동물 항생제 내성은 질병 치료 항생제 제한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성균과 내성유전자는 축산식품과 사육환경, 사람과 동물의 접촉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사람 치료에 필요한 중요한 항생제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축산분야 항생제 내성 관리는 가축질병 관리 차원을 넘어 국민 건강 보호와 식품안전 확보, 지속가능한 축산업 기반 유지라는 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추진된 한국형 수의항생제 내성 중요도 그룹 개발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미국,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등의 기준과 사례를 비교·분석했다. 또한 국내 허가 항생제의 사용 현황과 판매량, 투여방법, 축종별 특성, 축산물 소비량, 국제기구 분류체계, 국내 내성률 자료를 반영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내성 위험도 점수화 알고리즘을 마련했다.
즉, 국제기준을 참고하되 국내 축산현장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한국형 수의항생제 내성 위험도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책적 가치가 크다.
개발된 한국형 수의항생제 내성 중요도 그룹은 항생물질 계열별로 5개 그룹으로 구분된다.
가장 우선 관리가 필요한 1그룹에는 풀루오르퀴놀론계, 3·4세대 세펨계, 폴리믹신계(콜리스틴)이 포함됐다.
이들 계열은 WHO에서 최고 우선 중요 항생제로 분류되거나 WOAH에서도 높은 중요도를 부여받는 항생제다. 사람과 동물 모두의 건강 측면에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항생물질들이다.
2그룹에는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마크로라이드계, 기타퀴놀론, 안사마이신 등이 있다.
3그룹에는 페니콜계, 페니실린류, 설파계, 테트라사이클린계, 아미노사이클리톨계 등이 자리했다.
4그룹은 바시트라신, 플레우로물티린계, 린코사미드계, 스트렙토그라민계, 1·2세대 세펌, 5그룹은 오르소마시인계, 노보비오신, 아이노포어계 등이 들어갔다.
개발된 한국형 중요도 그룹은 단순한 학술적 분류가 아니라 향후 정책과 현장 실천을 연결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정부, 생산자단체, 수의사, 산업계가 같은 기준 아래 소통할 수 있어 정책 수용성과 현장 적용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항생제 관리의 핵심은 일률적 제한이 아니라 위험도에 따른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관리다.
중요도가 높은 항생제일수록 ‘효과가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복적이거나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축산현장에서 지양되어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수의사의 판단을 바탕으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신중하게 사용하고, 가능한 경우 대체 가능한 치료수단을 먼저 검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아울러 적정 용법·용량 준수, 휴약기간 준수, 차단방역 강화, 백신 활용, 사양관리 개선은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생산성과 동물복지를 함께 높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관리수단이다.
앞으로 내성 위험이 높은 항생제에 대해서는 사용 제한 강화, 모니터링 확대, 허가관리 보완, 현장 교육 강화 등 맞춤형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항생제는 치료 접근성을 고려한 합리적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이것이야말로 축산업의 현실성과 공중보건의 안전성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해법이다.
항생제 내성 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한국형 수의항생제 내성 중요도 그룹 개발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성과를 제도와 현장에 연결해 실제로 작동하는 관리체계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사람과 동물의 건강을 함께 지키는 길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신중한 항생제 사용과 체계적인 내성 관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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