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형 욱 교수
국립인천대학교 생명과학부
최근 몇 년간 축산 현장에서 가장 먼저 이상 신호를 보낸 것은 소도, 돼지도, 닭도 아니었다. 곤충 가운데 비교적 친숙하고, 사람에게 꿀과 화분을 제공하며, 무엇보다 자연계에서 화분 수정을 담당하는 꿀벌이었다.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된 꿀벌의 집단 폐사와 기후 변화에 따른 밀원식물 개화기 변화는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까지도 겨울철 봉군 폐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정 질병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붕괴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꿀벌응애를 방제하고 살비제를 투입해도 봉군이 회복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꿀벌이 감당해야 하는 환경 조건과 생태 질서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꿀벌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는 기술 이전에 상식부터 점검해야 한다.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기본적인 인식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꿀벌은 농업 생태계에서 가장 민감한 생물이며, 한 봉군에서 외역봉(일벌)은 하루에도 수 km를 비행하며 꽃, 물, 토양, 공기 등 다양한 환경 요소를 동시에 접촉한다.
특정 농가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환경 전체를 몸으로 겪기 때문에, 꿀벌의 건강 상태는 개별 농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환경과 농업 활동이 누적된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국내 꿀벌 품종·계통의 유전적 다양성과 안정성이다.
최근 국내 양봉 현장은 생산성 중심의 개량과 함께 외래 꿀벌 계통 도입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입은 국내 생태와 질병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통제되지 않은 도입이 이어질 경우 특정 계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국내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의 확보와 보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환경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꿀벌이 우점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전적 기반이 좁아질수록 꿀벌은 질병, 환경 스트레스, 기후 변화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꿀벌응애가 매개하는 바이러스 감염은 꿀벌의 면역 체계를 급격히 약화시키는데, 이때 유전적 다양성이 낮은 계통일수록 집단 붕괴 위험은 더욱 커진다. 이는 단순한 방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품종과 계통 관리의 문제다.
이러한 현상은 축산 질병의 발생 양상과도 닮았다. 가축 질병 역시 병원체 하나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기온과 습도 변화, 사육 환경 스트레스, 그리고 모기·진드기 등 매개체의 증가가 겹칠 때 집단 질병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꿀벌에서 먼저 나타난 붕괴는 동일한 환경 압력이 이미 축산 전반에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학적 경고다.
다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꿀벌은 무척추동물이며, 한 마리의 여왕벌이 평균 10마리 이상의 수벌과 교미하는 다웅성/다수교미(polyandry)를 통해 평생 산란 활동을 한다.
이를 중심으로 수만 마리의 일벌이 하나의 거대한 사회성 집단을 이룬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성 곤충을 인간이 가축으로 기르며 꿀과 화분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양봉이다. 소나 돼지와 같은 대형 척추동물과 달리, 꿀벌은 수명이 짧고 환경 의존성이 매우 높아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 반면 소나 돼지는 일정 기간 버티다가 어느 순간 질병으로 표출된다. 즉 꿀벌은 결과가 아니라 경고를 먼저 보여주는 생물이며,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인지하며 관리해야 하는 예민한 가축임은 틀림없다.
이러한 인식은 법과 제도에서도 이미 선언된 바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하며, 꿀벌 산업을 단순한 벌꿀 생산을 넘어 농업과 생태계 유지의 핵심 산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법 제정 만 5년을 앞둔 지금, 현장은 여전히 피해 복구와 응급 대응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꿀벌의 생리·생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장기적인 육종과 방역 전략으로 연결하는 구조는 아직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꿀벌 산업은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질적 전환은 단순한 개량의 문제가 아니라, AI(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꿀벌의 생리·행동·환경 적응 정보를 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과학적 디지털 정밀 육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그 핵심이 바로 과학적 디지털 정밀 육종이다. 꿀벌의 생리, 행동, 질병 저항성, 환경 적응성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강한 형질을 체계적으로 선발·증식하는 접근이다.
이는 유전자 조작이 아니라, 자연 변이를 존중하면서 과학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이다. 가축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는 정밀 육종의 개념을 이제 꿀벌에도 적용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 꿀벌의 생리·생태를 이해한 스마트양봉이 결합해야 한다. 봉군 내부의 온·습도, 활동량, 채집 패턴, 폐사 징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질병이 가시화되기 이전 단계에서 이상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는 생산성 향상을 넘어, 환경 변화와 매개체 생태를 조기에 파악하는 디지털 방역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다. 꿀벌 보호와 방역은 더 이상 치료제나 살균·살충제의 문제가 아니다. 질서의 문제이자 순서의 문제다. 자연의 균형을 먼저 지키고, 그 위에서 과학으로 이해하며, 디지털 기술로 정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꿀벌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반응한다. 꿀벌에서 시작되는 디지털 방역과 정밀 육종은 양봉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축산과 농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양봉산업법이 선언했던 취지를, 이제는 학계와 산업 그리고 거버넌스가 협력해 실질적인 전략으로 구현해야 할 시점이다.























